날이 차다.
아침을 먹고 배움을 위해, 엄밀히 말하면 기말고사 준비를 위해 나를 찾아올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다.
벌써 2주째 집엘 가지 못하고 있다.
아들과 아내에게는 사정 설명을 하고 양해를 구한 터이지만 마음은 불편하다.
주변의 가난한 아이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주고자 했던 애초의 목표와 결심이 자꾸 흔들린다.
더불어 산다는 것은 말처럼 그리 쉽지 않다.
처음 생각과는 달리 나의 예전 생활로의 회귀가 바람직하지 않을까 하는 유혹이 나를 흔들고 있다.
회식이 잦은 12월.
나는 아이들을 핑계로 일이 끝남과 동시에 서둘러 나의 숙소로 돌아온다.
다른 사람들의 이해를 바라기 이전에 내가 한 발 더 움직여야 한다는 것은 알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
나와 가장 가까운 아내와 아들도 나를 이해하지 못할텐데 다른 사람들이야 오죽할까.
고등학교 졸업 이후엔 쳐다 보지도 않던 정석을 다시 공부한다는 것도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몸은 천근만근이고 성당의 주일 미사도 자주 빠지는 현실.
이미 기말고사를 치른 학생들은 표정이 밝다.
덕분에 시험을 잘 보았다는 학생들과 그 부모님들의 인사를 받으며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미궁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미리 예상 못한 바는 아니지만, 내가 공부할 분량도, 아이들을 가르치는 시간도 조금씩 요령이 생기고 더불어 약간의 여유를 갖게 되리라던 추측은 여지없이 빗나가고 있다.
모든 것이 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어수선한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