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아니 내가 다닐 때는 국민학교였다.
5월의 미술시간이면 어김없이 우리는 카네이션을 만들었다.
빨강이나 분홍 색종이로 꽃을 만들고 초록색 색종이로 꽃받침을, 그리고 흰색 도화지로 리본을 만들어 그 안에는 연필심에 침을 발라 굵고 진하게 글씨를 썼었다.
"어머니, 감사합니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그리고 부모님께 쓰는 편지.
"형, 누나들과 싸우지 않겠습니다.  부모님 말씀 잘 듣겠습니다.  앞으로는 공부 열심히 하겠습니다. 훌륭한 사람이 되겠습니다."와 같은 뻔한 레퍼토리로 편지를 써서매년 반복되는 어버이날에 카네이션과 함께 드렸다.
그때 부모님 가슴에 달아 드렸던 큼지막한 색종이 카네이션은 지금도 아련하다.
우리집에는 형제가 많아 각자 만들어 온 카네이션이 남으면 동네에 혼자 사시는 분께 달아 드리곤 했었다.  그런 까닭인지 그날은 가슴에 붉은 카네이션을 달지 않은 어르신을 찾기 어려웠다.  가난했지만 마음만은 넉넉했던 시절이었다.
올해도 어김없이 어버이날이 찾아왔건만 나는 업무와 행사 등을 핑계로 찾아 뵙지 못한 채 아침에 전화만 한 통 했었다.
어머니 목소리에 가슴이 짠했다.
수일 전에 꽃배달 주문을 했으니 잘 받아 보시기야 했을 터이지만 내가 어렸을 때 어머니 가슴에 정성을 다해 달아 드렸던 색종이 카네이션 만이야 했을까.
무엇이 그리 바쁜지...
카네이션은 종이에서 생화로 바뀌고, 나 대신 누군가 그 꽃을 배달했겠지만 그때의 정성은 세월에 쓸려 온데 간데 없고 나는 다 늦은 저녁에 이렇게 자책의 글을 쓰고 있다.  효도도 배달이 되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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