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비오따쓰 - 세상을 다시 창조하는 마을
앨런 와이즈먼 지음, 황대권 옮김 / 월간말 / 2002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어제는 천안함 희생자들의 합동영결식이 있었다.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  냉전이 살아 숨쉬는 역사적 유적지에서 우리는 오늘도 살고, 또 그렇게 한동안 살아갈 것이다.  우리의 젊은이들이 원인도 모른 채 숨져갈 때 켸켸묵은 이념의 선전문구만 그들의 죽음을 감싸고 있었다.  아주 낡은 꼬리표처럼.
나는 그 46명의 젊은이들을 보내며 이 세상에서 이념의 제물이 된 많은 사람들을 생각하였다.
그리고 그 희생을 담보로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야욕을 채우기 위해 음모를 꾸미고 있을까 생각할 때, 이데올로기의 환상은 세대를 두고 끝없이 재생산되어 누군가의 배를 불리워 주리라는 끔찍한 상상에서 헤어날 수 없었다.
라 비올렌씨아!(폭력의 시대)하면 어느 팝송의 제목 쯤으로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1948년부터 1957년까지 콜롬비아 자유당과 보수당의 내전으로 20만 명 이상의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되었고,  이것을 일컬어 폭력의 시대(라 비올렌씨아)라고 한다.  그 이후 지금까지 콜롬비아는 콜롬비아 무장 혁명군(FARC)과 정부군 또는 우익 민병대와 부호들의 개인 사병에 이르기까지 자국내 무장 세력들간의 끝도 없는 충돌과 약탈, 납치 등으로 가족을 잃고 재산과 땅을 잃은 사람들이 희망없는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이 책은 이와 같은 내전으로 혼란과 무질서 속에서 심신까지 파괴된 콜롬비아의 열악한 환경을 딛고 그들만의 마음의 안식처를 마련한 가비오따쓰 생태공동체의 이야기이다.
미국의 국영 라디오 방송에서는 베테랑 저널리스트 앨런 와이즈먼에게 세계적인 환경위기에 대한 해결책을 기록하는 일을 맡겼다. 그는 희망이 없어 보이는 이 나라의 무질서 속에서 외딴 섬처럼 존재하는 <가비오따쓰> 생태공동체를 듣게 되었다.  지구의 환경파괴 대가로 발전을 거듭한 세계적 도시와 인간의 욕심이 빚어낸 살육의 현장에서 그는희망과 승리의 상징을 발견한 것이다. <가비오따쓰>라는 마을은 <야노쓰>라는 거대한 열대 사바나의 젖은 사막, 표토의 깊이가 2센티미터 밖에 안 되고 그마저도 산성화되고 알루미늄 독성에 오염된, 콜롬비아에서 가장 척박한 땅 <야노쓰>에서 유토피아가 되었다.  저자는 이런 척박한 곳에서의 성공은 세계 어느 곳에서도 사람이 살아 갈 수 있게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과 희망을 발견한 것이다. 사막이란 상상력이 고갈된 상태일 뿐, <가비오따쓰>는 상상력이 만발한 오아시스였다. 앨런 와이즈먼은 계속 그곳을 방문하며 <가비오따쓰>에 관한 이야기를 자세하게 기록하였고, 이것을 바탕으로 소설 형식을 빌려 다큐멘터리와 같은 생생한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전해 준다.
1971년 이탈리아 이민 2세대인 파올로 루가리는 일단의 콜롬비아의 이상주의자들과 기술자들을 이끌고 야노쓰로 향했다.  그는 야노쓰야말로 열대지역을 대신하여 이상적인 문명을 펼치는 데 가장 완벽한 환경이라고 믿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공동체에 적용할 수 있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아내고 자연을 닮았고 가장 환경 친화적인 도구들을 개발하였다. 
진창과 말라리아 모기가 들끓는 개울로 이뤄진 땅에서 깨끗한 물을 찾기 위해 수동펌프를 발명하고 식수의 세균을 제거하기 위해 태양열 주전자를 개발하였다.
또 열대바람을 에너지로 전환시키는 풍차, 비가 올 때도 작동되는 태양열 온수기, 식용 및 약용작물 재배를 위한 수경재배법 등도 고안했다,  1990년대에는 독창적인 방법으로 사라져 가는 열대우림을 되살려 또 하나의 기적을 이뤄냈다.  이처럼 30여년 동안 이 생태환경마을에 사는 과학자, 장인, 농부, 길거리를 떠돌았던 소년들, 그리고 인디언들은 세계적인 구호인 ’지속가능한 발전’을 현실로 일궈낸 것이다.
"가비오따쓰는 카오스에서 무작위로 태어난 것들의 총체입니다.  가비오따쓰는 ’불확정성의 원리’입니다.  그것은 기회가 만들어지는 장소, 경쟁 대신 협동이 들어서는 장소입니다."
가비오따쓰는 또한 분쟁지역 한가운데서 정부군과 게릴라 어느 쪽 편도 들지 않는 중립지대를 고수함으로써 좌우 어느 쪽으로부터도 침탈받지 않고 생태마을을 가꾸어 올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두 개의 축으로 구성된다.  생태공동체가 하나의 축이라면 또 다른 축은 좌우 이념의 대결을 넘어 피로 물드는 갈등을 겪지 않을 대안 사회에 대한 가능성이다. 
가비오따쓰 공동체의 설립을 주도한 파올로 루가리의 아버지는 이탈리아의 변호사이자 지질학자였으나 19세기 콜롬비아 대통령의 고종손녀와 결혼하면서 콜롬비아 엘리트층에 진입하였고,  이런 덕분에 루가리는 콜롬비아 내에서 최고 엘리트에 드는 가문에서 태어났다.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주는 것이 발전이라는 한 신부님의 말에 감명을 받은 루가리는 보고타 국립대학을 졸업한 후 제3세계 발전 문제에 관심을 갖고 아시아와 남미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다 그가 선택한 곳이 바로 가비오따쓰였다.  그는 태양열 이용이 걸음마 단계였던 70년대 초반 고립무원의 제3세계 오지에서 태양력, 풍력과 같은 대체에너지만 이용해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 보인 것이다.   76년 유엔개발계획(UNDP)은 이곳을 공동체 모델로 선정했고, 이후 유엔을 비롯한 국제단체들은 가비오따쓰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석유위기를 거쳐 대체에너지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면서 가비오따쓰는 80년대에 세계의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다.  콜롬비아의 동쪽 초원 가비오따쓰는 정부나 반군 모두 콜롬비아의 미래로 인식하고 있다.  가비오따쓰인들은 이제 그들이 심었던 온두라스산 소나무에서 최고급의 송진을 채취하여 시판함으로써 경제적 자립을 이룩하였고,  코카 재배를 대체할 약용식물의 재배에 눈길을 돌리고 있다.  코카를 능가할 수익성이 보장되는 약용식물을 재배함으로써 사람들에게 콜롬비아는 세계적 마약 국가에서 친환경적 모범국가로 탈바꿈 하고있다는 모습을 보여주려는 야심찬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이다.
제1세계가 파괴한 지구환경을, 그들이 멸시하고 환경 파괴의 피해만 물려주었던 제3세계의 국가 콜롬비아 오지에서 가비오따쓰인들은 지구 환경 복원의 작은 씨앗을 틔우고 있는것이다.  인종과 직업에 의해 차별 받거나 무시되지 않는 사회, 지배자도 피지배자도 없는 평등한 사회, 경찰도 군인도 존재하지 않지만 법죄가 없는 사회, 교육과 의료 노후대책을 걱정하지 않는 사회, 우리가 진정으로 바라는 꿈의 도시를 그들은 스스로 만들어 가고 있었다.
이것은 쉬운 문제가 아니었다. 아브람도 도서실 지붕을 고쳐야 하는 등 해야 할 일들이 쌓여 있었던 것이다. “당신은 우리 부서의 사람들을 모두 데려갈 수는 없습니다.” 그가 뽐삘리오에게 말했다. 그들은 머리를 맞대고 그 문제에 대해 의논했다. 파올로 루가리는 가비오따쓰인들이 늘 서로의 눈을 들여다보며 차분한 토론을 통해 결론에 이르는 모습을 경외에 찬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위협받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모두가 서로 존중하는 분위기였다. 결국 그들은 해결점을 찾았고 또 다른 문제로 넘어갔다. 모든 사람이 참여하는 공동체의 특징이었다.
(P.341-342) 
떠나면 그리워지고, 머물 때는 떠나고 싶지 않은 영원한 마음의 고향, 그 영혼의 안식처를 우리는 잊고 사는 것은 아닐까?  나는 이 책을 통하여 내 마음 한 귀퉁이에 내 영혼의 안식처를 꿈꾸게 되었다.  나는 그곳으로의 귀향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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