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
지두 크리슈나무르티 지음, 정현종 옮김 / 물병자리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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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벽이었다.  
넘을 수 없는 커다란 벽이었고, 소통할 수 없는 대화였고, 말할 수 없는 답답함이었다.
볼 수 없는 것을 보고, 만질 수 없는 것을 느끼고,  인식할 수 없는 것을 생각할 수 있는가.
선문답이요, 말장난일 수 있는 이런 것들이 진리요, 삶이요, 그대로의 실존이라면.......
 

 당신의 마음 상태는 스스로에 의해서만 이해될 수 있고, 그것을 주시하되 만들려고 하지 않음으로써 편들지 않고 반대하지 않고 동의하지 않고 정당화하지 않고 비난하지 않고 판단하지 않음으로써 이해될 수 있다.  그리고 이 선택 없는 앎으로 해서 혹시 문이 열릴지도 모르고 또 갈등도 시간도 없는 그 차원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될지도 모른다.
 
페이지 : 52  
저자는 자신이 느끼고 체험한 것을 독자들이 받아들일 수 없음을 조심스럽게 전제하고 있다.
그것은 강제할 수 없는 또 다른 삶이요, 개인적인 차원의 실존이기 때문에 그러하다.  이 책을 번역한 정현종 시인은 책의 발문에 이렇게 적고 있다.

이 책은 너무 있기 때문에 있는 흔적조차 없다.  하지만 너무라는 건 틀린 말이다.  이 책은 그냥 있다.  이것은 책이 아니다.  책이 아니라 살아 있는 어떤 것이다.  이 책은 읽을 게 아니라 물처럼 마실 일이다.  아니, 우리는 이 책을 숨쉰다.  이 책이 숨이므로.
 
페이지 : 7  

자신의 신념, 이데올로기, 지식, 권위, 체면 또는 자신이 속한 문화, 제도, 관습 등 모든 관념적 갈등 요소를 제거하고 명징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은 두려움이다.
과거의 체험이나 지식으로 빚어진 생각의 이미지를 통하여 사물을 관찰하고 느끼고 즐겨왔던 내가 생각이라는 물질을 배제하고, 생각과 행동(또는 있음) 사이에 존재하는 시간을 배제하고, 관찰되는 대상과 관찰자(나) 사이의 거리를 배제하고 오롯이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죽음이다.  자신에 의해 이미지화 된 사물이나 사랑, 기쁨, 관계, 쾌락, 공포 등 모든 과거의 퇴적물을 걷어내고 내 생각의 틀을 바꿀 수 있을까?  아니, 생각조차 없앨 수 있을까?
과거의 체험이나 기억을 떠올리지 않고 현재의 기쁨을 누리며, 미래의 단절을 염려하지 않으며 관계를 지속하고, '되어야 함'이라는 권위나 체면을 무시하고 사랑하며, 헤어짐으로 인한 자기연민 없이 죽음을 바라볼 수 있을까?
쾌락은 고통이나 증오를 낳고, 권위나 체면 또는 구분이나 편가름은 경계와 공포를 그리고 폭력을 낳고, 책임과 의무 또는 '되어야 함'은 현재의 삶을 제한하고, 죄책감은 과거로 회귀하게 하는 모든 인간의 부조리로부터 일순간에 해방될 수 있을까?  그리고 나는 오직 현실을 '있음'에 주의를 기울이고 자유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그 어떤 체계적이고 도식적인 철학에서도 보지 못한 전혀 새롭고 혁명적인 접근 방식, 저자의 통찰에 나는 전율을 느꼈다.  그것은 매 순간의 죽음과 절대 고독의 상태에서만 가능한 다른 차원의 동경, 닿을 수 없는 그리움이었다.  습득된 모든 체험이나 기억, 지식, 신념, 이데올로기로무터의 완전한 자유.  내가 만든 모든 이미지와 비교로부터의 벗어남.  모든 권위와 종교적 신념, 끝없는 집착으로부터의 단절.  그리고 천진함으로 세상을 보고 느끼고 즐기는 온전한 삶.
태어나 단 한번도 의심하지 않았던 정형화 된 내 삶의 행로에서 나는 새로운 길을 바라보게 되었다.  비판 없는 '받아들임'의 적응된 삶으로부터 이탈하려는 용기도 없이 나는 그저 바라볼 뿐이다.  과거와 미래에서 자유롭지 못한 나의 의식은 내 삶을 생생히 지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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