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로운 가난
엠마뉘엘 수녀 지음, 백선희 옮김 / 마음산책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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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엠마뉘엘 수녀님께
수녀님, 지금은 하느님의 나라에서 평온히 쉬고 계시겠지요?  어쩌면 아직도 불쌍한 저희들을 위해 눈물을 흘리고 계시지는 않는지요?
오늘은 부활절입니다.  생각나세요?  짚더미 위에 누운 어린 예수를 보고 "왜 쟤는 짚더미 위에 누워 있어? 내 동생 쥘로에게는 예쁜 침대가 있는데.  불공평해!"라고 외치셨지요?
그때가 수녀님의 나이 여섯 살쯤 무렵이었지요.  그랬던 소녀는 수도서원을 하고 전 생애 동안 사랑으로 가난을 선택해 이웃에게 헌신하며 사셨습니다.
수녀님의 책을 읽은 것이 이번이 두번째가 됩니다.  <넝마주이 수녀, 엠마뉘엘>을 통하여 수녀님을 알게 되었지요.  그때는 ’아, 세상에 이런 분도 계시구나’ 감탄하며 그렇게 잊었습니다.
감동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어요.  넝마주이를 하는 카이로 빈민가에서 수녀님은 의외로 행복해 보이셔서 저도 함께 행복했던 시간이었답니다.
그런데 이번에 읽은 <풍요로운 가난>은 제게 조금은 충격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이 세상에서 글을 쓰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상하고 우아한 언어로 자신의 의견을 전달하곤 하는데 수녀님은 아흔두 살의 연세에 비해 당신의 글은 너무나 과격하고 선동에 가까웠습니다.  수녀님이라는 신분에 어울리지 않았다고 느낄만 했지요.
제가 이렇게 말씀드리는 것은 수녀님을 비난하려는 것이 결코 아니랍니다.  오히려 그 반대라고 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부당해 보이는 것만 보면 화가 부글부글 끓어 오른다고 하셨지요?  가난으로 자신의 권위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멸시하는 천박한 부자들을 보며 그 부당함에 몸서리를 치셨지요.  아흔 두살의 연세에도 말입니다.
수녀님의 모습에서 저는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부끄러워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었습니다.
제가 그 모든 불의에 온몸으로 분노했던 것이 언제였는지, 언제가 그 마지막이었는지, 그런 때가 있기나 했던 것인지 기억이 가물거립니다.  저는 그동안 산송장으로 살아왔던 것이지요.
가난이라는 추한 현실을 몰아내기 위해 소극적 항거를 계속할 것이 아니라, 또는 구멍이나 막을 게 아니라 히드라의 머리를 공격해야 겠다고 마음먹으셨다죠? 
이제는 저의 부끄러운 고백을 하려고 합니다.
결혼 전, 주말이면 잠시의 짬을 내어 봉사활동을 했었습니다.  그리 오랫동안 지속했던 것은 아니랍니다.  칠십 년을 넘게 헌신하신 수녀님께는 저의 짧았던 봉사활동 기간을 말씀 드릴 용기가 나지 않는군요.  그마저도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뜸해지다 이제는 약간의 돈으로 기부를 하기 시작했지요.  몸으로 하는 육체노동보다는 어쩌면 그리 편하던지요.  거기까지 그쳤으면 저는 수녀님께 조금은 당당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알량한 선심을 저는 수없이 떠벌렸습니다.  책에서도 말씀하신 제 우월 콤플렉스가 고개를 든 것이지요.  세상은 언제나 제 중심으로 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결혼과 동시에 그마저도 사라졌습니다.  이제는 제 개인의 성공만 존재할 뿐 더이상 그들의 모습은 제 시야에서 영원히 사라진 것이죠.  제가 검소한 생활로 회귀하는 것보다는 그들의 고통에 눈감는 편이 훨씬 편하다 생각했답니다.   ’서양에서 인간으로 남기란 참으로 힘겨운 시도다’라는 말씀은 비단 서양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었나 봅니다.
그렇게 저는 제 가진 것에 울타리를 치고 제 마음에도 튼튼한 빗장을 질렀지요.
제가 필요치 않다고 생각하는 관계는 제가 앞장서서 끊고 말았습니다.  ’대인관계 지수가 지능지수보다 한층 중요하다'고 하셨지요?  그랬습니다.  저는 늘 공허한 결핍에 시달리면서 환상을 향해 내달렸었죠.  세상을 향한 불평과 함께 말입니다.
IMF 총재를 지낸 미셸 캉드쉬 기억하시죠?  우리 나라의 금융 위기때 방한했던 분이지요.
  "우리의 무책임한 태도가, 우리의 연대 거부가, 국수적 이기주의에서 벗어나기 위한 투쟁에 있어 우리의 소극적 태도가 오늘날 어떻게 가난한 사람들을 십자가에 못박고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수녀님께서도 책에 적으셨더군요.
루소는 인간이 한 평의 땅뙈기에 울타리를 치고서 "이건 내 것이야!"라고 외치게 된 날부터 인간의 불행이 시작되었다고 말했다죠?  그의 말은 진실이었습니다.
오늘은 부활절 미사를 마치고 성당의 마당에서 삼겹살 바베큐 파티가 열렸었어요.
성당에는 뇌졸중을 앓으시고 몸에 마비가 오신 할아버지 한 분이 계시답니다.  그분께 시레기국에 밥을 말아 드리고 구운 삼겹살을 숟가락에 얹어 드릴 때, 눈물이 나려는 것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지금도 그 이유는 잘 모르겠어요, 수녀님.
그 순간에도 수녀님이 떠올랐습니다.  수녀님을 알게 되어 참으로 행복하다고.
수녀님께 제 부끄러운 고백을 전하며 이만 줄입니다.

2010년 부활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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