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동영상을 많이 보는 것은 아니지만 생각의 정리가 필요할 때면 이런저런 채널의 영상을 띄워 놓은 채 나만의 생각에 빠져들기도 합니다. 보지도 않을 양이면 귀한 전기를 써가면서 뭐 하러 동영상을 재생하느냐 따질 사람도 있겠으나 평일에는 주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은 까닭에 아마도 백색 소음이 필요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떤 소음도 없는 적막한 공간은 그것을 인지하는 인간에게 약간의 공포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나는 언제나 유튜브 동영상에서 흘러나오는 소음을 귀담아듣지도 않으면서 무작정 흘려보내기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나의 생각과 일치하거나 들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것들이 더러 있는 까닭에 어쩌다 그런 동영상을 만날 때면 컴퓨터 모니터 앞으로 의자를 당겨 앉게 됩니다. 귀를 쫑긋 세우고 말입니다. 이응준 작가의 산문집 <고독한 밤에 호루라기를 불어라>를 읽고 있습니다. 그의 산문집은 때로 난해하기 짝이 없어서 나의 상식이나 지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지만, 나는 그저 '아무려면 어때' 하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이해할 수 있는 부분만 이해하자 마음을 가볍게 먹은 채 담담히 책을 읽어나가곤 합니다.


"슬픔을 잘 이해하는 사람은 기쁨을 잘 이해하는 사람이고 아름다운 것이 무엇인지 진정으로 아는 사람이다. 그래야 자신이 어떤 시를 가지고 있는 시인인지를 안다. '사람들은 모두 시인이다.' 다만 자신이 시인임을 스스로 무시하고 살아가다가 죽거나 시인이면서도 시인인 줄 모르고 살다가 죽을 뿐이며 심지어 나는 자신 안의 시인을 일부러 살해하는 사람들조차 자주 본다. 물론 요즘 같은 세상에서는 애써 괴물이 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할 것만 같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자신의 날개를 하늘에서 사용하지 않고 발의 부스러기나 계단쯤으로 여기다가 차에 치여 길에 찌그러져 말라붙어 있는 저 비둘기들의 사체처럼."  (p.97~p.98)


오늘 최욱이 진행하는 '매불쇼'를 우연히 보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러했을 테지만 오랜만에 보는 유시민 작가의 모습이 무척이나 반가웠습니다. 그리고 유시민 작가의 말에 깊이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나는 몇 달 전부터 시작된 진보 유튜버들의 일베식 조롱과 멸칭이 이상하다고 생각은 해왔지만, 그것이 대통령을 비롯한 청와대의 견해와 일치한다고는 판단한 바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바라던 검찰개혁이 조금씩 물거품으로 변해가는 듯한 인상을 받기 시작하는 요즘, 김민석 전 총리를 민주당의 차기 당대표로 지지하는 듯한 대통령의 노골적인 태도와 의중을 비추어 볼 때, 대통령은 어쩌면 지리멸렬한 국민의힘과 당대 당 통합은 아닐지라도 그들 주변의 인사들을 최대한 끌어 모아 민주당으로 편입함과 동시에 그 과정에서 이를 반대하는 민주당의 전통적인 지지자(일명 강경파라고 할 수도 있는)들의 이탈을 과감히 용인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보완수사권의 유지를 강력하게 주장하는 보수권 인사들을 포섭하려면 검찰개혁은 시늉만 하고 눈 감고 아웅 하는 게 당연한 수순일 테지요. 현 상황을 그렇게 이해하면 대통령과 김민석 전 총리의 행보도 이해 못 할 게 없습니다. 박정희를 '스마트한 독재자'라고 칭한 김민석 전 총리의 발언을 조금 더 확장하면 이토 히로부미도 '스마트한 독재자'라고 할 날이 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와 같은 역사 인식을 지닌 사람을 대통령은 민주당의 차기 당대표로 밀고 있습니다.


수십 년 민주당을 지지해 왔던 나 역시 앞으로 다시는 민주당을 지지하지 않기로 마음먹은 바 있지만,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주변 사람들 역시 검찰개혁은 이제 물 건너간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해방 이후 무소불위의 권력을 지녔던 검찰이 꺼져가던 불씨를 다시 살리고 있는 듯 보입니다. 유시민 작가도 잠깐 언급하였지만 1990년 3당 합당으로 탄생하였던 민주자유당이 떠올랐던 건 아마도 현 시국이 그와 비슷한 까닭일 테지요. 무척이나 덥고 지루한 날들이 길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모두가 자신의 무가침함과 싸우고 있'는 게 아니라 '모두가 자신을 무가치하게 만든 현 정치권과 싸우고 있'는 듯한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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