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으로부터 늦은 장마 소식이 들려오고 있습니다. 중부지방은 소나기 예보만 간간이 들릴 뿐 본격적인 장마 소식은 전해지지 않은 듯합니다. 한낮 기온은 여전히 높고, 이따금 불어오는 바람 속에는 습습한 기운이 스며 있습니다. 장마가 오기도 전에 대기 중의 습기가 보란 듯 먹구름을 만들고, 사람들에게 경고를 하듯 한바탕 소나기가 지나가는 건 생각만 해도 시원한 느낌입니다. 그러나 비가 쏟아진 뒤의 습기는 텁텁한 더위와 함께 괜한 짜증을 불러오기도 합니다. 곧 소서(小暑 7월 7일)입니다. <제철 행복>을 쓴 김신지 작가 역시 소서 절기에 태어났다고 합니다. 작가의 소서 풍경을 조금 옮겨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버스를 타고 지나치는 정류장 곳곳에 담벼락을 타고 오르는 능소화가 보일 무렵이면 소서다. 산책로에는 피고 지길 반복하며 100일 동안 붉은 꽃을 보여주는 백일홍 나무도 꽃송이를 열고 있다. 오래도록 피는 능소화와 백일홍은 우리와 함께 여름을 나는 꽃. 그래서 기념사진 속에 찍힌 행인처럼 여름날의 추억 속에 종종 배경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올해 첫 능소화를 목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긴 장마가 시작된다. 시골에 있는 부모님은 장대비가 내리는 날이면 논둑 밭둑을 정비하느라 장화를 신고 집을 나설 것이다. 제주에 사는 친구는 그치지 않는 빗소리를 들으며 종일 제습기를 돌리고 있겠지. 소서와 대서 사이, 장마가 만들어내는 풍경 아래서 저마다 다르게 비를 만난다."  (p.162)


내가 매일 아침 오가는 등산로의 산어귀에는 달개비가 무성합니다. 머지않은 시기에 남빛 달개비꽃이 지천으로 피어나겠지만, 나는 이맘때만 되면 무성한 달개비 잎에 눈길이 가곤 합니다. 아직 꽃이 피지 않은 달개비는 한낱 잡초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남빛 달개비꽃이 아침이슬을 머금고 함초롬히 피어나는 모습을 본 이는 그 자태에 반할 수밖에 없습니다. 달개비꽃에 대한 황동규 시인의 묘사를 옮겨보면 그것을 실감하게 됩니다. '달개비 떼 앞에 쭈그리고 앉아/꽃 하나하나를 들여다본다/이 세상 어느 코끼리 이보다도 하얗고/이쁘게 끝이 살짝 말린 수술/둘이 상아처럼 뻗쳐 있다.'(황동규, '풍장58' 중에서)


7월입니다. 엊그제인 듯 새해를 시작했던 우리는 벌써 한 해의 반을 지나쳐왔습니다. 그렇게 헉헉대며 이 여름을 보내고 나면 왠지 모르게 허한 가슴으로 한 해를 다 흘려보낸 듯 느낄 테지요. 우리는 죽음이라는 종착지를 향해 숨 가쁘게 달려가고는 있지만, 자신의 결승점이 어느 곳에 위치해 있는지 알 수 없는 까닭에 오늘도 해맑게 웃을 수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농사를 짓지 않는 나와 같은 도시내기에게 절기가 무슨 소용이겠습니까만 나는 이따금 우연히 마주하는 절기가 옛 사진을 보듯 반갑습니다. 곧 소서(小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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