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는 지금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느긋하고 고즈넉한 풍경입니다. 거실 창문을 닫고 약하게 에어컨을 틀어 놓은 탓에 그렇게 보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실상 창문을 열어 바깥공기를 끌어들인다면 지금의 뽀송한 공기 속으로 습하고 텁텁한 알갱이들이 삽시간에 몰려들어 이 기분을 단박에 바꿔놓을지도 모릅니다. 다른 계절과는 다르게 여름에 내리는 비는 습기와 텁텁한 느낌을 대기 중에 과도하게 주입함으로써 비 내리는 풍경으로부터 우리가 받을 수 있는 차분한 느낌은 사라지고 원인도 알 수 없는 짜증만 한껏 포집하게 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불쾌지수라는 건 아마도 그런 것일 테지요. 낯섦이 주는 상쾌함과 신선함은 온데간데없고 괜한 짜증만 차오르는 것 말입니다.
3월 말에 군을 제대한 아들은 1달 이상의 긴 유럽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후에도 꽤나 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는 듯합니다. 곧 있을 복학을 준비하면서도 말이죠. 얼마 전에는 에어컨 청소와 커튼 세탁을 하더니 요즘은 곧 있을 사진 전시회 준비에 열심이기도 하고, 같은 과 친구와 함께 전공 분야의 공모전도 준비하는 듯합니다. 나는 아들에게 이따금 당부하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일을 하더라도 단지 의무감 때문에 하는 일이라면 하지 말거나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는 말입니다. 설령 내가 나중에 늙고 병들어 네가 보살펴야 하는 상황이 올지라도 마음이 내키지는 않지만 부모라는 이유로, 자식이라는 의무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 일을 감당해야 한다면 다른 방법을 찾아보거나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하곤 합니다. 부모라고 할지라도 자식의 인생을 방해하거나 간섭할 권리는 없다는 게 나의 지론입니다. 그로 인해 주변의 시선이 곱지 않을지라도 신경 쓰지 말라고 말합니다. 중요한 것은 너의 인생이라고. 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일들이 종종 나타나지만 그때마다 한 번쯤 '이게 과연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인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김보영 작가의 소설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를 읽고 있습니다. 아시는 분은 아실 테지만 이 소설은 애초에 지인으로부터 받은 한 통의 메일을 받은 데서 소설 집필이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그 메일의 내용인즉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고 결혼을 할 예정인데, 남편과 아내 모두 팬이니 프러포즈용 소설을 써 줄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프러포즈를 하면서 낭독할 용도로요.' 소설은 그리하여 열다섯 통의 편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어찌 보면 얇고 단순한 구조일 수도 있는 이 소설이 편지라는 특수한 전달 도구를 만나 꽤나 큰 시너지를 창출하는 듯합니다.
"나는 나이를 먹었어. 하루에 하루씩, 한 달에 한 달씩, 한 해에 한 살씩, 시간을 몸에 쌓으며 살았어. 그러니까 나는 당신에게 어울리는 사람이야. 10년 전보다 더 당신에게 어울리는 사람이 되었어. 몇백 년 전보다 더 괜찮은 사람이 되었어. 내일은 하루만큼 더 어울리는 사람이 될 거야. 내년에는 또 한 해만큼 그렇게 될 거야." (p.87)
서서히 비가 그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쩌면 각자에게 주어진 짧은 시간을 살아가면서도 의무감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들에 매달리느라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소진하는지도 모릅니다. 나 역시 그렇게 살아왔던 한 사람으로서 후회가 전혀 없다고는 말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제반 여건만 허락한다면 굳이 그런 의무감으로 자신의 삶을 채울 필요는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가슴 뛰는 일만 하면서 살기에도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