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승 - 목사, 택시 그리고 나
엘라임 손 지음 / 보민출판사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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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반드시 죽는다'는 대전제를 수용하면서 부조리한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다음의 세 가지로 압축되는 듯하다. 죽음 자체를 외면하면서 관습대로 살아가는 것, 내세의 허구를 확신하면서 죽음으로부터의 구원을 기다리는 것, 죽음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것이 그것이다. 인간은 대체로 첫 번째 방법을 선택한다. 스스로 선택한다기보다 관습적으로 그렇게 살아간다. 개인의 삶에 큰 변화를 요구할 만큼의 특별한 사건이나 사고가 없다면 대부분의 인간은 그동안 유지했던 첫 번째 방법을 굳이 바꿔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인생의 어떤 사건으로 인해 죽음 가까이에 다가갔던 경험을 겪어본 사람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죽음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었던 그와 같은 경험은 그동안 유지했던 가치관이나 세계관을 근본적으로 흔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 경험이 너무 어린 나이에 있었던 까닭에 변화시킬 가치관이 없다고 할지라도 그 사람의 내면에는 그 경험이 그림자처럼 남아 가치관의 정립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와 같은 사건, 사고를 경험한 이의 태도는 개인에 따라 크게 다른 방식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예컨대 예기치 못한 큰 교통사고를 당하여 죽음의 문턱에서 간신히 살아 돌아온 사람이 있다고 했을 때, 자신에게 남은 삶의 기간이 길지 않음을 인지한 그는 사고 이전의 안일하던 태도를 바꾸어 어떤 목표를 향해 치열하게 나아가거나 내세의 허구를 믿고 죽음으로부터의 구원에 강력하게 매달리기도 한다. 이와 같은 사례는 암과 같은 치명적인 질병의 확진 판정을 받았을 때도 비슷한 양상을 띤다. 드문 경우이기는 하지만 모든 것을 내려놓고 죽음을 정면으로 응시하면서 담담하게 앞으로 나아갈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럴 만한 용기와 배짱이 모든 인간에게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1983년 늦여름, 나는 노숙자 신세가 되었다. 집에 가면 돈 받으러 온 사람들이 기다렸다. 친구들에게 부탁했지만, 사업 실패 소문은 KTX보다 빨랐다. "사장님, 사장님" 하며 반기던 사람들도 눈치를 봤다. 내 존재감이 아니라 돈의 힘이었다. 시골집도, 친구도, 내가 살던 집도 갈 곳이 되지 못했다. 버스비가 없어 걸었다. 돈을 벌어 멋지게 살고 싶었다. 효도하고 결혼하고 싶었다. 이제 그 가능성마저 보이지 않았다. 죽는 것이 자존심을 지키는 일이라 생각했다. 한강대교 난간에 섰다. 강물이 검게 흘렀다. 하지만 그마저도 용기가 필요했다. 나는 그 용기마저 없어 그냥 돌아섰다."  (p.22)


엘라임 손이 쓴 <환승> 역시 그 비슷한 경험을 적고 있다. 시카고 오헤어 공항에서 연결 편을 놓치고 방황할 때 저자는 자신의 지나온 삶을 떠올리고 그것을 기록으로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다. 자판기라는 개념 자체가 낯설던 시절, 포클레인 인형 뽑기 자판기로 승승장구하던 저자는 아무런 대책도 없이 그날 번 돈을 그날 다 쓰면서 허송세월했던 대가로 모든 것을 잃고 한강대교에 서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서른도 되지 않았던 젊은 나이에 겪었던 혹독한 시련을 딛고 저자는 목회자의 길로 뛰어든다. 그것은 어쩌면 저자 자신의 선택이라기보다 운명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런 까닭에 41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설교단 위에 서 있었지만, 마음이 편했던 것은 아니었던 듯하다.


"목회를 떠나던 날 새벽, 나는 혼자 차를 몰았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다. 수십 년 동안 강단에서 사람들의 방향을 가리켜 온 손이, 그날 새벽에는 핸들 위에서 떨렸다. 택시 핸들을 처음 잡던 날도 그랬다. 강단 대신 운전석, 성도 대신 낯선 승객. 나는 그 시간을 빨리 지나가고 싶었다. 고난이 유익이라는 걸 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오히려 그 고난 안에 제대로 머물지 않았다. 알고 있다는 착각이 경험을 막았다. 그녀가 "이제야 사람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고난을 흘려보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강변 아파트가 사라지고, 사촌들의 말 한마디에 마음이 무너지는 그 자리에서, 그녀는 자신을 만났다. 소유로 가득했던 시절에는 보이지 않던 자기 자신이, 아무것도 없는 자리에서 비로소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70이 되어서야 그것을 몸으로 알았다. 강단에서 가르쳤던 그 말을, 운전석에서 처음으로 배웠다."  (p.191)


목회자로 섰던 시기에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았지만, 아내의 유방암 판정과 함께 다시 원점에 선 저자. 강단을 떠난 저자는 미네랄을 팔기도 하고, 기독교방송 상담 일을 하는 등 프리랜서 생활을 하며 겨우 생계를 유지하다가 지금은 택시 운전자로 살고 있다고 한다. 택시 운전석에 앉아 처음 접하는 손님과의 짧은 대화와 침묵 속에서 전에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삶의 의미와 가치를 배운다. 실패냐 성공이냐를 가늠하기보다 지금 이 시간에 무엇으로 존재하는가, 하는 문제는 실존에 가깝다. 실존은 다만 하나의 현상에 지나지 않을 뿐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기준이 되지는 않는다.


"다섯 번 환승했다. 환승할 때마다 잃었다. 직함도, 수입도, 시선도. 그런데 잃을 때마다 가벼워졌다. 처음에는 그 가벼움이 두려웠다.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는 것 같았다. 그 가벼움이 나를 여기까지 데려왔다는 것을. 손에 쥔 것을 놓을 때마다, 손이 아닌 내가 보였다. 빈손이 나의 철학이 되었다."  (p.206)


삶은 우리로 하여금 언제나 변화를 요구한다. 좋든 싫든 우리는 그것에 따를 수밖에 없다.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무난한 삶을 살았던 사람이 있다면 그는 정말 기적에 가까운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단 하나 명심할 것은 누구나 겪는 크고 작은 삶의 변화에서 자신이 지향하는 삶의 방향을 결코 잃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방향을 잃고 헤매는 순간 아주 오랜 시간을 허비한 후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기도 하지만, 자신의 삶을 통째로 날려버리기도 하기 때문이다.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라고 썼던 어느 책의 제목처럼 인생의 방향만 잃지 않으면 기회는 언제든 다시 오게 마련이다. 그러나 우리가 인생의 방향을 잃었을 때, 그것은 어쩌면 삶의 모든 것을 삼켜버릴 수도 있다. 우리가 삶의 방향을 잃는 가장 큰 원인은 바로 개개인의 욕심이다. 욕심은 한 사람의 눈을 멀게 하고 인생의 방향마저 잃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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