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잠에서 비롯된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간밤에 나는 어떤 이유인지 자다 깨다를 반복했고, 다른 날보다 일찍 눈이 떠지는 바람에 꿈지럭거리며 늦잠을 잘 수 있는 기회마저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누군가에게 실컷 얻어맞은 듯 온몸이 쑤시고 아파왔습니다. 자고 일어났다고는 하지만 머릿속은 여전히 꿈속을 헤매는 듯 몽롱하고 어지러웠습니다. 물에 젖은 솜처럼 늘어지는 몸을 이끌고 인근의 도서관에 나왔습니다. 공기가 맑은 탓인지 건조하고 쨍한 햇살이 피부를 뚫고 몸속 깊은 곳까지 침투할 듯 강하게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오가는 행인도 없는 인도에는 선거 유세 차량에서 흘러나오는 노래가 듣는 이도 없이 멀리까지 퍼져나가고, 더위를 모르는 까치 몇 마리가 먹이를 찾아 총총 옮겨 다니고 있었습니다. 비둘기 모이 주기를 금지한 탓인지 그 많던 비둘기 떼가 한 마리도 눈에 띄지 않았던 건 꽤나 생경한 풍경이었습니다.


도서관에 들어서자 에어컨에서 나오는 서늘한 바람으로 인해 마치 딴 세상에 도착한 듯 느껴졌습니다. 책을 읽으려는 목적보다 더위를 피하는 게 더 큰 이유였는지 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사람들은 다들 휴대폰 화면을 보고 있거나 집에서 가져온 태블릿 화면에 눈을 고정한 채 오가는 사람들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습니다. 이따금 무인반납기에서 책을 반납하는 사람들 몇몇만이 바쁘게 손을 놀리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어린 꼬마의 손을 붙잡고 나온 젊은 부부는 한껏 목소리를 낮춰 이것저것 설명하기에 바쁜 모습이었고, 나는 종합자료실에 빼곡하게 꽂힌 수많은 책들을 훑어보면서 읽은 책보다 아직 읽지 못한 책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너무 높다는 생각에 잠시 절망하기도 했습니다. 노르웨이 출신의 작가 욘 포세가 쓴 소설 <샤이닝>을 빌려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완벽한 침묵. 너무나 조용해서 손에 만져질 것 같은 침묵 속에서, 나는 발걸음을 멈춘다. 나는 제자리에 서서 침묵에 귀를 기울인다. 마치 침묵이 내게 말을 거는 것 같다. 하지만 침묵이 말을 거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아니, 어떤 면에서 보자면 침묵도 말을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침묵에서 들리는 목소리, 그것은 누구의 목소리인가. 그것은 단지 목소리일 뿐이다. 그 목소리를 다른 말로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목소리는 그냥 거기 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거기 있는 것은 분명하다."  (p.49)


멀리 보이는 인도에는 반려견을 산책시키기 위해 완전무장을 하고 나선 몇몇 사람들이 지친 듯한 걸음으로 느리게 지나가고 있습니다. 말귀가 통하는 제 자식이라면 어쩌면 오늘처럼 햇살이 강한 한낮에 밖으로 나가자고 아무리 떼를 써본들 결코 들어주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어린애가 납득할 수도 없는 갖가지 핑계를 대면서 말입니다. 그러나 산책을 요구하지도 않았던 반려견을 위해서는 휴일의 달콤한 여유도 반납한 채 자발적으로 산책을 나서는 걸 보면 현대인들은 어쩌면 사람보다 동물에게 더 깊은 애정을 쏟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그것이 사람에 대한 애정이 식은 탓인지, 아니면 이제껏 없던 동물에 대한 애정이 갑자기 높아진 것인지 나로서는 알 수 없지만 씁쓸한 입맛은 지울 수가 없는 게 현실입니다. 초여름 햇살이 시간이 갈수록 더 높은 열기를 뿜어내고 있습니다. 선거 유세 차량의 노래도 끊이지 않고 들려옵니다. 더위 탓인지 나는 여전히 식욕이 없고 나른하기만 합니다. 모든 것은 어쩌면 잠에서 비롯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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