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한지 인생 공부 - 오만과 냉정 사이, 천하를 가른 심리전 인생공부 시리즈
김태현 지음, 사마천 원작 / PASCAL / 2026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실패를 거듭하는 사람이든 성공을 거듭하는 사람이든 누구에게나 삶은 어렵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경험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삶이 조금씩 쉬워질 것 같지만 오히려 그 반대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삶은 예나 지금이나 어렵긴 마찬가지이거나 전에 비해 훨씬 더 어렵기만 한 것이다. 오늘 아침에도 그 비슷한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새벽 시간에 내가 즐겨 찾는 '산스장'에서 매일 마주치는 할아버지 한 분에 대한 이야기였다. 나는 사실 몇 년 전부터 거의 매일, 거의 같은 시각에, 같은 장소에서 만나 왔던 까닭에 그분의 얼굴은 잘 알고 있지만 그분의 이름도, 사는 곳도, 살아온 이력도 전혀 알지 못한다. 게다가 그저 가볍게 인사만 하고 헤어질 뿐이니 그분과 나는 완벽하게 남남일 뿐 결코 가까운 사이는 아닌 게 확실하다.


오늘 아침에도 나는 반갑게 인사를 하고 '산스장'에서 하는 기초적인 운동을 마친 후 조금 더 걷기 위해 돌아서는데, 자주는 아니지만 잊을 만하면 이따금 만나곤 하는 할머니 한 분과 우연히 동행을 하게 되었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가다가 그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로 옮겨가게 되었는데, 할머니는 이 지역 토박이인 듯 그동안 내가 등산로에서 만났던 분들 중 모르는 사람이 없는 듯했다. 할머니는 자신이 40대 때 이 동네로 이사를 왔으며 지금 나이가 80이라고 했다. 할머니가 말씀하시길, "그 할아버지가 절에 다니셔서 나는 처사님이라고 부르는데 처사님이 우리 나이로 올해 87세일 거예요. 그 집 할머니가 6년 전에 쓰러지셔서 거동을 잘 못하세요."라고 하셔서 "맞아요. 할아버지가 저한테도 1940년생이라고 하셨어요."라고 맞장구를 쳤다.


"할아버지가 불편한 할머니를 씻기고, 옷 입히고, 밥 차려 주고, 간식이며 시간 맞춰 과일도 깎아 주고 온갖 수발을 6년째 하고 있어요. 자식들이 다 직장에 다니고 있어서 할머니가 쓰러지고 1년쯤 지났을 때, 할아버지 힘들다며 요양원에 보내자고 했는데 할아버지가 죽어도 못 보낸다고, 할머니 죽으면 자신도 죽겠다며 올해로 6년째 할머니를 돌보고 있어요. 그래서 내가 그 할머니는 복도 많다고 했어요. 몸도 불편한 노인을 그 연세에 한다는 게 보통일 아니에요. 그 할아버지 상 줘야 돼요. 요양원에 보내면 누가 그렇게 정성스럽게 해 주겠어요." 할머니는 등산로를 걷는 내내 할아버지 칭찬을 이어갔다. 산을 내려오면서도 나는 마음 한켠이 따뜻해지는 느낌이었다.


"그 밤, 항우는 더 이상 천하의 패왕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모든 것을 잃은 한 남자였습니다. 명예와 사랑이 충돌한 그 순간, 그의 세상은 이미 무너졌고, 오직 한 사람의 이름만이 남아 있었습니다. 우희. 그 이름은 그의 마지막 노래처럼, 패왕의 가슴속에서 조용히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새벽녘, 항우는 남은 800여 명의 정예기병을 추려 포위선 한 모서리를 찢는 돌파전을 감행했습니다. 단기에는 몇 겹을 뚫었으나, 외곽에 또 다른 포위선이 있어 기세를 충분히 살리지 못했습니다. 추격과 재포위가 반복되며 탈출 병력은 급감했습니다."  (p.221)


'삶을 바꾸는 실천적 지식'을 전하는 데 매진하고 있는 인문학자 김태현의 저서 <초한지 인생 공부>를 다 읽었던 건 며칠 전의 일이었다. 꽤 오래전에 사마천의 <사기열전>을 무척이나 재미있게 읽었던 나로서는 <초한지>의 모든 부분이 예사로 보이지 않았던 게 사실, 저자인 김태현의 해설이 곁들여진 이 책을 읽고 있노라니 총 70편에 이르는 사마천의 <사기열전>이 얼마나 대단한 책이었나 생각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나는 <초한지 인생 공부>의 리뷰를 어떻게 써야 할지 전혀 감도 잡지 못한 채 시간만 흘려보내고 있었다. 그러다 오늘 아침, '산스장'에서 매일 만나는 할아버지 한 분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들었고, 어떻게든 <초한지 인생 공부>의 리뷰를 마무리지어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초한지 30년의 역사는 기록 속에 멈췄지만, '당신'이라는 주인공이 써 내려갈 '인생 초한지'는 매일 아침 장기판의 돌들이 제자리로 돌아오듯 다시 시작됩니다. 때로는 예상치 못한 외통수에 절망할 수도, 때로는 단 하나의 묘수로 전세를 역전시킬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역사는 결국 가장 강한 돌을 가진 자가 아니라, 판이 끝날 때까지 자신을 다스리며 묵묵히 이어간 자의 이름을 마지막에 기록합니다."  (p.357)


나는 사실 나이가 들어 마땅히 갈 곳이 없어진, 그리하여 하루라는 긴 시간을 보내기 위해  탑골공원에 모이곤 했던 할아버지들의 바둑, 장기판을 보면서 젊은 시절을 보낸 추억이 있다. 매일매일 그들을 보아왔던 건 아니지만 광화문 교보문고로 향하는 날이면 시선을 남이 두는 장기나 바둑판에 고정한 채 우두커니 서 있던 그들의 모습을 자주 목격하곤 했다. 그들이 두는 장기판에서는 한(漢)이 이기기도 하고, 때로는 초(楚)가 이기기도 하지만 불변하는 역사의 기록에서 초나라의 패왕 항우는 언제나 패자의 위치에 있는 것이다. 강인한 무예와 용맹한 기질을 가진 항우가 어찌 보면 유약하고 건달 기질마저 있는 유방에게 진다는 게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지만 우리의 삶도, 이해할 수 없는 역사도 때로는 기적처럼 이를 어기고 반대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초한 전쟁의 거대한 서사를 칼날과 함성으로만 기억한다면, 우리는 그 역사의 절반만을 보는 것입니다. 유방과 항우의 싸움이 눈에 보이는 칼과 병력의 전쟁이었다면, 소하와 역이기가 벌인 싸움은 보이지 않는 머리와 혀의 전쟁이었습니다."  (p.187)


'인간사의 빛과 그림자를 꿰뚫는 통찰의 기록'으로 평가되는 <사기열전>을 읽다 보면 초나라의 항우도, 한나라의 유방도 결국에는 인간의 보편적인 욕망과 고뇌 속에서 살다 갔음을 알게 된다. 고전을 읽는다고 해서 자신의 운명이 갑자기 바뀌는 것은 아니지만 고전 속에서 우리는 인간이 존재하는 한 변하지 않는 불변의 진리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아침에 만나는 할아버지 역시 만 86세라는 연세가 결코 적은 나이는 아니지만 거동이 불편한 아내를 돌보며 그 속에서 하루하루 달라지는 삶의 의미를 깨우쳐가는 게 아닐까 싶다. <초한지 인생 공부>를 읽고 있노라면 부귀와 공명이 하룻밤의 꿈에 불과하다는 걸 깊이 깨닫게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