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제법 불고 있습니다. 사무실 인근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돌아오는데 가로수의 잔가지며 삭정이들이 인도에 널브러져 어지러웠습니다. 바람이 강하게 불겠다는 일기예보를 엊저녁 뉴스 시간에 얼핏 들었던 것도 같습니다. 이런 날, 건물과 건물 사이에서 부는 도시의 골바람은 마치 한여름에 부는 태풍처럼 그 세기가 대단합니다. 강한 바람이 부는 탓인지 쏟아지는 햇살은 더없이 맑고 강렬하여 오가는 행인들의 얼굴을 금세라도 벌겋게 태워 놓을 듯했습니다. 선명하게 푸른 하늘과 하얗게 반짝이는 뭉게구름이 온종일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던 하루, 오늘은 54번째 맞는 어버이날이었습니다.


낮에 점심을 먹으면서 우연히 듣게 된 친한 친구의 사고 소식에 깜짝 놀랐습니다. 올해 초 두 분 부모님을 모두 떠나보냈던 친구는 부모님이 살던 시골집을 정리하여 정년 퇴임 후 그곳에 가서 노후를 보낼 계획을 세워두고 있었습니다. 그런 까닭에 친구는 짬이 날 때마다 그곳에 가서 집 주변을 정리하고, 쓰레기를 버리고, 동네 사람들과 어울려 시간을 보내기도 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난 어린이날도 친구는 혼자 그곳에 가서 낡은 가구를 정리하던 중 의자의 쇠붙이 부분을 떼어내기 위해 그라인더를 사용하다가 그만 그라인더를 놓쳐서 다리에 심한 상처를 입었고, 워낙 출혈이 심했던 탓에 119 구급차를 불렀지만 봉합 수술을 받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흘렀었나 봅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동맥이 다치지 않음으로써 생명을 건질 수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피를 많이 흘린 때문인지 친구는 지금도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고 하소연하고 있습니다. 사고는 정말 한순간에 벌어지는 일인가 봅니다. 유시민 작가가 기록한 강순희 여사의 인터뷰집 <사랑이 있으니 살아집디다>를 읽고 있습니다.


"중학교 다닐 때였는데 공책에 '인생이란?' 하고 써놓은 적이 있어요. 담임 선생님이 그거 보고 놀렸어. '야, 순희, 벌써 인생을 생각하냐?' 인생이 뭘까요? 나는 그렇게 생각해요. 자기한테 주어진, 자기 앞에 펼쳐진 운명을 열심히 살아가는 거, 그게 인생이다. 자기에게 주어진 환경과 현실을 받아들이고, 최선을 다해서 극복하며 사는 거, 그게 인생이다. 어려운 문제가 생겨도, 장애물이 닥쳐도, 원망 같은 거 하지 않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거다. 그런 게 쌓여 인생이 된다. 애들한테 늘 그렇게 얘기했어요. 나도 그렇게 살았고."  (p.259)


중간에 하루의 휴일이 있었던 까닭인지 다른 주에 비해 한 주가 빠르게 흘러간 듯합니다. 나는 나는 내가 보냈던 시간의 갈피를 접어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에게 위로의 말을 전하고 싶어집니다. 내가 살았던 과거의 한 순간을 가감없이 뚝 잘라내어 인생 별거 없음을 솔직하게 말하고 싶어집니다. 그렇게 나는 내가 보냈던 시간의 갈피로 그의 등을 토닥이고 싶은 것입니다. 삶이 힘들다고 느끼는 다른 누군가에게 말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동시대를 살아가는 삶의 동지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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