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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의 회고록 - 당신의 삶 쓰기
윌리엄 진서 지음, 신지현 옮김 / 엑스북스(xbooks) / 2017년 11월
평점 :
어떤 일이든 이론에 강한 사람이 있고, 실전에 강한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나처럼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미리 이것저것 알아도 보고, 별 소용도 없는 것조차 찾고 또 찾는 바람에 정작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진이 빠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무런 사전지식도 없이 대뜸 일부터 시작하는 사람도 있는 법이다. 둘 중 어떤 것이 좋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것은 다만 개인의 취향이나 성격의 문제일 뿐이다. 이것저것 많이 준비한다고 해서 안 좋게 끝날 일이 좋은 결과로 이어질 리도 없고, 어차피 잘 될 일인데 아무런 사전지식도 없이 시작한다고 해서 결과가 나빠질 리도 없는 것이다. 인생이란 누구나 초보자이고, 다른 사람과 동일한 조건에서 시작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어떤 일이든 일절 공부를 하지 말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미리 알게 된 약간의 지식이 나처럼 소심한 이로 하여금 처음 하는 어떤 일을 두려움 없이 시작할 수 있게 도와주기 때문이다. 모름지기 공부란 두려움을 없애는 방편이며, 두려움이란 그 분야를 전혀 모른다는 의미와 크게 다르지 않다.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을 품는 것과 실제로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쓰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이다. 글을 쓰려고 마음먹은 순간 걱정부터 밀려올지도 모른다. 뒤죽박죽 얽히고설킨 과거에서 어떻게 일관적인 내러티브를 끌어낼 수 있을까? 어떻게 내러티브를 시작해야 할까? 어디서 멈춰야 할까? 내 글을 읽고 기분이 상하는 사람은 없을까? 여러분의 머릿속에는 글로 남기고 싶은 기억들이 가득하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의심스러운 생각이 솔솔 피어오른다. 내가 제대로 이야기를 쓸 수 있을까? 이야기를 쓴다 한들 사람들이 관심이나 가져 줄까? 내 이야기가 재미있을 거라는 생각은 나만의 착각 아닐까? 자, 이제 이런 의심은 떨쳐버려도 좋다. 작가는 무언가를 추구하는 존재다. 여러분도 글을 통해 무언가를 추구할 자격이 있다. 내가 이 책을 집필하는 목적은 여러분에게 글을 쓸 자격과 그에 필요한 도구를 쥐어 주기 위해서다." (p.19)
저널리스트이자 편집자였고, 대학에서 오랫동안 논픽션 글쓰기를 가르쳐 왔던 윌리엄 진서의 자전적 글쓰기 지침서 <스스로의 회고록>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글쓰기 작법서와는 결이 크게 다르다. 글쓰기의 고전으로 일컬어지는 나탈리 골드버그의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나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가 글쓰기의 기초와 방법론을 제시하는 책이라면 <스스로의 회고록>은 우리들 각자가 살아온 기록을 글로 옮겨보라는 권유이자 그런 욕구를 지닌 이들에 대한 답신이다. 그러나 회고록이라 함은 단순히 자신의 삶의 기억에 대한 기록만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기록이 서사로 연결되지 않으면 아무도 나의 글을 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흥미로운 삶을 경험하면 흥미로운 회고록이 그냥 만들어질 거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우리네 삶에는 질서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월든 호숫가에서 술술 글을 썼을 거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그는 무려 8년 동안 일곱 번이나 원고를 고쳐 썼다. 그는 독자들이 대화를 엿듣는 것처럼 편하게 이야기를 읽을 수 있는 글쓰기 기법 - 평론가 마가렛 풀러는 이를 '모자이크 방식'이라 규정했다 - 을 사용했다. 그는 나무꾼으로서 숲 속에 간 것이 아니었다. 그는 작가로서 숲 속에 가 불멸의 고전을 창작했다." (p.214)
내 주변에도 은퇴자가 많다. 그들 대부분의 고민은 뭘 하면서 시간을 보내면 좋을까? 하는 문제이다. 물론 이따금 경제적 고민이 끼어들기도 한다. 모르는 사람들은 편하게 "여행이나 하면서 살아."라고 말한다. 그러나 여행도 하루이틀이지 자신에게 남겨진 긴긴 세월 동안 주야장천 여행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게다가 체력이 받쳐주질 않는다. 젊은 시절에는 얼마든지 여행을 할 수 있는 체력이 있었지만 돈이 따라주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면, 은퇴자의 경우에는 이와 반대로 체력이 따라주지 않는 것이다. 물론 10년이고, 20년이고 여행만 다닌다면 경제적 문제가 부담이 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손에 잡아본 적도 없는 붓을 들고 그림 그리기에 매진할 수도 없다. 은퇴 이후의 사업이나 부업에 대해서는 은퇴 이전부터 많이 듣고 배워 보았으나 정작 자신을 돌보는 문제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는 것이다.
"나는 학생들에게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옳은' 길이 하나만 있는 건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사람들 모두가 서로 다른 존재이며, 그들은 각자 출발점이 다르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도 다르다고 이야기한다. 나는 학생들에게 변화는 삶의 활력소이며, 꼭 정해진 길만 밟으라는 법도 없고, 세상에 한계는 없다고 말한다.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나는 매주 수요일 오후 학생들과 차를 함께하는 자리를 마련하고 있다. 그리고 그 자리에 학문 외적으로 성공을 거둔 사람들 - 예일대 학생들이 쉽게 접하기 어려운 사람들 - 을 초청해 그들의 이야기를 편하게 들어본다." (p.176)
사실 이 책은 책의 저자인 윌리엄 진서 자신의 회고록에 가깝다. 그럼에도 작가는 자신의 회고록을 본보기로 삼아 책을 읽는 당신도 자신의 회고록을 써보라고 권한다. 그가 말했듯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그 사람이 갖고 있던 기억은 사라지지만, 글을 남기면 그 기억을 지킬 수 있'는 것이다. '모든 이야기에는 각자의 진실이 있다.'라고 쓴 그의 문장 역시 곱씹어 생각해 볼 만하다. 은퇴 이후에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취미를 갖는다는 건 어쩌면 가장 저렴하면서도 가장 유익한 여가 생활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여가 생활이 마냥 답답하고 단조롭다고 느낄 사람이 대다수일 터, 훈련이 되지 않은 이에게는 어려운 선택일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지구상의 모든 삶에서 귀하지 않은 게 없는 까닭에 자신의 삶을 기록으로 남기지 않는다는 것은 어쩌면 본인뿐만 아니라 다음 세대에게도 죄를 짓는 게 아닐까 싶다. 그것을 읽고 배울 기회마저 박탈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읽어볼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의 판단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쓴 책을 읽는 다른 누군가의 문제라는 걸 기억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