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것들은 어디로 갈까
콘치타 데그레고리오 지음, 베아트리체 알레마냐 그림, 정림(정한샘).하나 옮김 / 오후의소묘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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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스스로의 삶을 통하여 무엇인가를 끝없이 획득하고, 유형.무형의 자산을 무한정으로 늘려간다고 생각한다. 고가의 명품 가방이나 시계, 멋진 승용차, 넓은 주택 등 대부분의 사람들이 갈망하는 어떤 대상을 자신의 것으로 소유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때로는 성취하기도 한다. 그러나 실상 우리는 자신이 소중하다고 생각했던 것들로부터 끊임없이 멀어지거나 숫제 헤어지게 된다. 내가 태어났던 고향집, 사랑하던 애완견, 젊은 시절 한때 사랑했던 연인, 통통한 볼살이 귀여웠던 아이 등 시간의 경과로부터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은 무수히 많다. 우리의 삶에서 사라지는 것들은 비단 존재하는 어떤 사물에 국한되는 건 아니다. 나는 얼마 전 블로그에 '흘러가는 것엔 언제나 애틋함이 묻어난다'라고 썼었다.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우리가 잃어버리는 것들에 대한 상실과 공허, 속절없는 안타까움에 대한 나의 솔직한 느낌을 쓴 글이었는지도 모른다.


"고독은 침묵과 닮았어. 한마디도 하지 않거나, 혼잣말을 하는 것이 처음에는 정말 어렵게 느껴지지. 이상하고 쓸모없게 느껴지기도 하고. 하루하루가 풀로 붙인 듯 서로 이어져 모두 똑같아 보이거든. 그러다 조금씩 쉬워져. 혼자 있을 때는 아무도 내게 뭐라고 할 수 없어. 하고 싶은 건 뭐든 할 수 있지. 혼자라면, 다른 사람들이 절대 불가능할 거라 말하는 일조차 할 수 있어. 어차피 아무도 혼내거나 뭐라고 할 수 없거든. 단지 들키지 않고 보이지 않게, 조용히, 천천히만 하면 돼. 누군가 다가와서 "뭐 하고 있었어?"라고 물어보면 이렇게 대답하면 그만이야. 아무것도."  (p.40 '고독')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언론인이자 작가이기도 한 콘치타 데 그레고리오가 글을 쓰고 세계적인 그림책 작가 베아트리체 알레마냐가 그림을 그린 <사라진 것들은 어디로 갈까>를 읽는 독자라면 누구나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아련한 눈빛으로 허공을 응시하게 될지도 모른다. 작가는 지금은 보이지 않지만 자신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어떤 대상을 하나하나 끄집어내어 그 대상을 잃은 것에 대한 상실의 의미와 향수를 음미한다. 그것은 어쩌면 상실을 상실로 기억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인 동시에 상실에 대한 해묵은 감정으로부터의 탈출이 아닐까 싶다.


"사라진 사람들과 사물들은 머릿속을 가득, 거의 꽉 채운 채로 떠나질 않아요. 그들이 있어야 할 자리가 아니라, 내 머릿속에 있다는 너무나 이상한 사실을 스스로 받아들이는 일은 일종의 노동 같아요. 이 노동은 밤낮으로 이어져요. 다른 사람들은 그 피곤함을 볼 수 없고,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할 수도 없어요. 괜히 말하면 이런 소리만 듣게 되니까요. 곧 지나갈 거야, 시간이 약이야, 생각하지 마, 나가자. 계속해서 이렇게 말하죠. 누텔라 바른 빵 먹을래? 아이스크림 먹으러 갈래? 나가자, 나가야 해."  (p.10 '프롤로그' 중에서)


100여 쪽밖에 되지 않는, 얇디얇은 이 책을 나는 몇 날 며칠을 끼고 살았다. 그러다 보니 나도 작가가 호명했던 그 이름들을 어느 가수의 노랫말처럼 흥얼거리게 되었다. 마르코, 카르멘, 알리체, 니달, 루카, 아리아...... 어쩌면 우리는 자신의 기억에서 떠나보낼 수 없는 여러 이름들을 마치 자신의 짐보따리인 양 꽁꽁 숨겨둔 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의 삶이 계속되는 한 우리는 새롭게 기억해야 할 또 다른 이름들을 만날 수밖에 없다. 그러자면 우리는 잊어야 할 낡은 이름들을 하늘에 훨훨 날려 보내야 하지 않을까.


"당신의 목소리가 더 이상 기억나지 않아요. 아마도 당신은 그곳에서 더 잘 지내고 있겠죠. 꼭 거기로 가야만 한다고, 당신은 그날 밤 나에게 말했으니까요. 우리가 다른 삶에서, 우리가 개구리와 나비인 곳에서 언젠가는 다시 만나게 될 거라며 슬퍼하지 말라고 했지요. 그 말을 하던 당신은 눈길을 떨구었어요."  (p.104 '에필로그' 중에서)


오늘은 4월 1일 만우절. 내가 어렸을 때만 하더라도 귀여운 거짓말로 친구들을 속여먹곤 했었는데 지금은 가짜 뉴스가 온 세계를 잠식하다 보니 만우절에 하던 거짓말조차 범죄가 되고 말았다. 사라지는 것들이 비단 어떤 공간이나 존재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어서 과거에 유행하던 풍습이나 의식도 시대가 변하자 금세 사라져 버린 듯하다. 그리고 그것에 익숙했던 사람들의 기억 속에는 그리움처럼 추억만 남았다. 애틋함의 긴 여운을 남기고 사라지는 것들은 모두 어디로 가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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