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좋은 것을 너에게 줄게
정여울 지음, 이승원 사진 / 이야기장수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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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체가 다양해지면서 책 읽기의 어려움에 대해 토로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책을 읽는 일이 어렵다 보니 자연스레 책 읽기의 무용론도 뒤따른다. 책을 읽지 않는 것에 대한 미흡한 자기 합리화이자 책을 읽지 않는 자신에 대한 구차한 자기변명에 가깝지만,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이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바람에 독서의 무용론이 마치 정론처럼 대접을 받는 처지에 이르고 보니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마저 '그런가?' 하고 그들의 목소리에 이따금 귀를 기울이게도 되는 것이다. 더불어 자신을 포함한 몇 안 되는 독서인들이 미래의 어느 시점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보호되는 것은 아닌지 심히 우려가 되는 것이다.


"아름다운 글 속에는 풍부한 상징과 은유가 깃들어 있고, 그 아름다움은 세상 어떤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음을 깨달았을 때, 나는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다. 문학을 사랑하는 것은 사려 깊고 풍요로운 지성과 감성의 우주 속으로 진입하는 티켓이다. 기적은 늘 디테일 안에 있다. 감동도 늘 디테일 안에 숨어 있다. 꾹 참고 끝까지 읽어야만 끝내 전해지는 마음이 있다."  (p.57~p.58)


내가 책을 많이 읽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남들처럼 책과 담을 쌓고 지내는 처지도 아니다 보니 나에게도 가끔 '책을 왜 읽느냐?'는 질문이 당도하곤 한다. 책을 읽는 사람이 어찌나 줄었던지 그런 질문을 받아줄 이가 마땅치 않았던 것이다. 독서의 효용이랄까, 책을 읽는 목적이랄까 아무튼 이와 같은 주제에 대해서는 백가쟁명의 다양한 주장이 있을 수 있겠지만, 나는 독서를 통하여 추상적인 단어의 개념을 구성원 모두에게 정의에 근접한 방향으로 통일시킬 수 있음을 독서 효용의 1순위로 꼽곤 한다. 이를테면 자유, 평등, 사랑, 권리, 차별 등 우리가 나열할 수 있는 많은 추상어가 있지만 구성원 각자가 생각하는 정의는 열이면 열, 다 다르다는 데 문제가 있다. 이런 현상은 유튜브와 같은 영상 매체의 힘이 강해지면서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예컨대 '사랑'이라는 단어만 놓고 보더라도 누구는 남녀 간의 짙은 애정행각이 '사랑'이라고 믿는 사람도 있고, 또 어떤 이는 자식에 대한 부모님의 헌신적인 행위를 '사랑'이라고 믿기도 하며, 때로는 자신이 믿는 종교의 기적적인 몇몇 사례를 '사랑'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물론 이 모든 게 넓은 의미에 있어서의 '사랑'이라고 말할 수는 있다. 그러나 공동체 내에서 일반어로 '사랑'을 언급했을 때, 구성원들이 이해하는 구체적인 의미는 서로 비슷해야 한다는 점이다. 공동체 구성원 각자가 갖는 추상어의 개념이 이렇게 다양해진 이유는 독서 인구의 소멸과 함께 영상 매체로의 급격한 쏠림이 동반되었기 때문이다. 나와 의견이 같은 사람의 영상만 보고, 나와 생각이 비슷한 언론사의 영상만 구독하는 상황에서 영상 매체를 통한 구성원의 단결과 통합을 기대한다는 건 요원한 일처럼 보인다.


"함께 어우러져 살아간다는 것은 이렇듯 서로가 서로를 변화시키는 일이다. 아들러 심리학은 콤플렉스를 극복하여 끝내 더 나은 존재가 될 수 있는 인간의 힘, 특히 '협력'을 통해 더 나은 존재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믿는다. 우리가 진정으로 서로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끝내 서로를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킬 수 다는 뜨거운 믿음, 끝이 보이지 않는 팬데믹의 기나긴 터널을 함께 건너는 바로 우리에게 필요한 절실한 믿음이다. 변화가 느리고 전망은 보이지 않더라도, 우리 부디 서로를 향한 간절한 희망을 포기하지 말기를."  (p.171)


정여울 작가가 글을 쓰고 이승원 작가가 사진을 찍은 책 <가장 좋은 것을 너에게 줄게>를 읽는 독자라면 누구나 팬데믹이라는 아득한 시간을 지나온 기억을 떠올릴 테다. 작가가 살아오면서 마주한 따스하고 아름다웠던 환대의 순간, 무너진 마음을 일으키고 아물게 하는 사람의 온기와 다정을 모은 에세이이기 때문다. 1부 '따스하고 복잡하며 구슬픈 당신에게', 2부 '가장 아픈 시간은 끝났다', 3부 '우리가 서로를 돌볼 수만 있다면', 4부 '사랑 이야기는 끝나지 않는다'의 소제목으로 구성된 이 책에는 작가가 생각하는 다양한 종류의 환대에 대한 직, 간접적인 경험들이 소개되고 있다. 영상 매체와는 다르게 책이란 그래서 유익하다. 나와 생각이 같은 사람만 독자로 선택하지 않고, 나의 생각과 조금씩 엇나가는 다양한 사례들이 가감 없이 제공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작가는 독자에게 자신의 주장을 강요하지 않는다. 어떤 것을 선택하고 어떤 것을 버릴지, 취사선택의 전권은 오롯이 독자에게 주어진다. 그런 과정을 통해 우리는 추상어에 대한 서로 다른 개념을 '정의'를 향해 수렴시킨다.


"우리는 자신의 가장 모난 부분까지 사랑하는 사람들, 타인의 남다름을 이해할 뿐 아니라 기어코 남다른 삶을 콕 집어 살아낼 용기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제 글을 사랑해주시는 바로 여러분 덕분에 알게 되었어요. 제가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요. 제 글을 사랑해주는 독자가 한 명이라도 있다면, 저는 계속 용기를 내어 쓸 수 있어요. 글쓰기는 작가만의 특권이 아니라 스스로 미숙한 아마추어라 믿는 사람의 열정적인 투쟁이니까요."  (p.11 '프롤로그' 중에서)


2026년에 맞는 첫 주말, 나는 딱히 내세울 만한 일도 없이 그 많은 시간을 흘려보냈다. 그러나 나는 후회나 반성 같은 건 따로 하지 않기로 한다. 지금부터라도 나에게 조금 관대해지지 않는다면, 나는 영원히 나를 질책하며 남은 여생을 보내게 될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나는 남에게 뒤지지 않을 만큼 호되게 나를 질책해 왔고, 수없이 많은 반성 속에 살지 않았던가. 이제는 그런 불필요한 일에 시간과 정력을 소모하지 않기로 하자. 그런 작은 습관 한두 가지 고친다고 지난 삶이 바뀔 것도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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