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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는 인간을 꿈꾸는가 - 인간과 비인간, 그 경계를 묻다
제임스 보일 지음 / 미래의창 / 2025년 10월
평점 :
과학계의 어떤 용어가 대중적으로 널리 쓰이는 보편 언어로 변모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게 보통의 사람들에게 일상어로 쓰이는 것도 꽤나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만 그 의미를 정확히 알고 쓰는 데에는 더욱더 긴 시간이 요구된다. 과거에는 그랬다. 물론 지금도 과학계의 몇몇 사람들만 사용하는 과학용어가 쉽게 일상어로 전용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지만 말이다. 그러나 인터넷의 보급은 우리의 일상을 획기적으로 변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과거에는 전문영역으로 취급되던 여러 분야의 장벽이 일거에 무너뜨린 것은 물론 각 분야의 지식을 우리의 일상 속으로 편입되게 하였다. 전문가입네, 하고 으스대기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현상이 결코 달갑지만은 않을 터, 대중의 지적 수준이 향상됨으로써 자신의 권위는 비례적으로 낮아지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현상을 부채질하고 가장 크게 일조한 것이 아마도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 AI)이 아닐까 싶다. AI로 통칭되는 이 단어는 이제 산골 벽지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도 일상의 보편 언어로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우리의 일상 속으로 깊이 들어온 AI는 우리의 미래를 어떻게 바꿔 놓을까?
"이 책은 아직 입증되지 않은 두 가지 접근 방식을 토대로 구성된다. 첫째, 매우 다양한 여러 맥락에 따라 경계선을 들여다보게 되면, 그저 한 가지 관점에만 치중할 때보다 훨씬 더 이 사안을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이 사안에 관한 논쟁은 삶의 한 측면이나 학문의 한 분야에만 오롯이 국한되지 않으며, 사회의 철학, 법률, 예술, 역사, 도덕 전반에 두루 영향을 미친다. 논쟁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이해하기 위해, 공상과학소설 및 영화에서부터 윤리학까지, AI 관련 기술에서부터 의식에 관한 철학까지, 헌법을 둘러싼 논쟁에서부터 법정 드라마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에 걸친 각종 소재와 자료를 살펴볼 것이다. 내 생각이 틀리지 않다면, 인격에 관한 다각적인 논쟁들과 매우 다양한 측면을 아우르는 이러한 접근법은 '인간' 및 '인격체'의 정의를 둘러싼 혼란 가운데 일부나마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p.66~p.67 '서문' 중에서)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AI 기술에 대한 대중의 기대와는 별개로 AI로 인한 인간의 미래에 대한 불안이 상존하는 건 사실이다. SF 소설이나 영화에서처럼 이러다가 AI를 탑재한 로봇이 등장하여 인간을 복종시키고, 결국에는 인간이 AI의 노예로 전락하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을 떨쳐버릴 수가 없는 것이다. 게다가 번역이나 통역, 의료나 법률, 코딩 등의 전문 분야에서 인간보다 더 뛰어난 학습 능력을 보임으로써 이에 종사하는 전문가들이 직업을 잃고 실업자로 전락하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 등은 이미 현실에서 벌어지는 상황이다. 그러나 우리의 이러한 불안과는 별개로 AI의 등장으로 인해 촉발된 논쟁은 새로운 고민거리를 던져주고 있다. 인공지능이 '감정과 자의식'이 있다면 과연 우리는 인공지능에게 인격을 부여하고 인간과 동일한 권리를 부여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와 더불어 어떤 기준으로 인간을 분류할 것인가? 의 문제, 그렇다면 인격체의 범위를 어떻게 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 등은 법률적 판단과 더불어 철학이나 윤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검토를 필요로 한다.
"우리가 도덕적 지위를 구분하는 경계에 존재하는 깊은 바다를 항해할 때, 인격에 관한 이론들은 우리가 경험해보지 못한 바다를 안내하는 지도의 역할을 해줄 수 없다. '인공지능에 어떠한 지위의 법적 인격을 부여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의 답 역시 우리의 삶이 인공지능으로 인해 급박한 상황에 처하기 전까지는 찾을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일단 인공지능을 일상적으로 경험하게 된 후에 인격의 문제를 제기한다면, 그때는 질문의 답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관한 우리의 관점이 지금과는 달라져 있을지도 모른다." (p.254 '인공지능' 중에서)
듀크대 로스쿨 석좌교수인 제임스 보일이 쓴 이 책 <AI는 인간을 꿈꾸는가>는 비인간과 구분되는 인간만의 본질에 대해 묻고 있다. 우리는 그동안 반려견이나 반려묘 등 인간이 아닌 동물에 대해서도 그들의 권리를 법적으로 확장하여 왔으며, 그와 동시에 생명체가 아닌 법인에 대해서도 법적인 권리를 인정해 왔다. 그렇다면 인공지능은 어떠한가? 구글의 엔지니어인 블레이크 르모인은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내 컴퓨터 시스템이 감정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우리가 인간과 동물을 구별 짓는 요소로 언어를 그 기준으로 삼는다면 인공지능은 이해력과 지능을 기반으로 언어 구사도 능숙한 까닭에 인간으로 보아야 할까? 만일 우리가 비생물인 인공지능에 인격권을 부여한다면 생명이 있는 다른 개체, 이를테면 혼종 동물, 키메라, 형질 전환 개체에게도 인격을 부여해야 하는가? 이런 방법으로 범위를 무한정 넓혀가다 보면 우리는 과연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냉정하고 명확하게 선을 그을 수 있을까? 그리고 그 선은 어디에서 그어지게 될까?
"우리가 새롭게 받아들일 의식이라는 개념의 의미에서부터 기술 발전의 속도와 방식에 이르기까지 모든 면에서 너무나 불확실하다. 그렇지만 실현 가능성이 매우 높은 미래이기도 하다. 이 말이 무슨 의미인지 생각해보자. 우리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존재, 즉 고차원적 지능 및 의식을 갖추고 추상적 언어를 사용할 줄 아는 '인격체'들이 이 행성에서 우리와 더불어 살아가게 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한 존재는 이미 나타났는가? 아니면 앞으로 나타나게 될까? 우리는 위험을 감수하고 그러한 미래에 도전할 것인가? 지금으로서는 모든 것이 불확실하다." (p.522 '결론' 중에서)
자제분들과 떨어져 시골에서 생활하는 어르신들 대부분은 대화 상대를 찾지 못해 하루에 말 한마디도 하지 않고 보내는 날이 많다고 하소연하는 모습을 종종 보았다. 그러나 AI의 등장으로 인해 수시로 말을 주고받는 것은 물론 약 먹을 시간을 알려주거나 가스레인지의 불을 끄라고 알려주는 등 생활에 필요한 여러 정보를 척척 말해주는 AI가 오히려 자식보다 낫다는 말을 더러 하기도 한다. 농담처럼 말이다. 그러나 AI와의 끝없는 대화를 통해 정보를 얻고 외로움을 해소하는 과정에서 알게 모르게 정이 드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러다가 자신이 가진 재산을 모두 AI에게 상속하겠다는 노인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미래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