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시간에 침대에서 현관문까지의 거리는 마치 천리 길처럼 아득하게 느껴진다. 아침 운동을 아무리 오래 한 사람도 그 거리는 잘 좁혀지지 않는다. 불규칙적인 빗소리에 이따금 잠에서 깼다 다시 잠들곤 했던 나는 알람 소리를 듣고도 한참이나 갈등했다. 저 현관문을 열고 나가 상쾌한 새벽 공기를 맡으며 몸에 붙은 잠기운을 툭툭 털어낼 거냐 아니면 아침 운동을 거른 채 밀린 잠을 내처 잘 거냐?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던 것이다. 유혹은 아주 깊고 달콤했지만 나는 결국 굳게 닫힌 현관문을 열고 새벽 산행에 나섰다.
하늘은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듯 여전히 어두웠다. 간밤에 내린 비로 숲에선 여전히 비가 내리는 듯 나뭇잎에서 나뭇잎으로 떨어지는 빗소리가 천연덕스럽게 이어지고 있었다. 까치의 울음소리가 악다구니처럼 들렸다. 잠에 취해 좀처럼 힘이 붙지 않던 다리도 등산로 초입의 계단을 다 오를 즈음부터 생기가 돌았다. 가파른 경사로에서 쓸려 내려온 낙엽 더미가 평지의 끝을 알리기라도 하려는 듯 퇴비처럼 쌓여 있었다. 인근의 아파트 공사 현장에선 벌써부터 중장비 소리가 요란했다.
능선에 위치한 '산스장'에서 몸을 풀고 있는데 반가운 얼굴을 만났다. 작년까지만 해도 하루에 한 번은 늘 만나던 사이인데 올해부터는 어쩌다 한 번 얼굴을 마주칠 뿐 좀체 만날 수가 없었던 분이었다. 성함도 알지 못하는 그분을 나는 언제나 '멋쟁이 할아버지'로 기억하곤 했다. 머리는 완전한 백발이지만 연세에 비해 풍채가 좋은 그분은 내가 산행에 나서는 그 시각에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마주치곤 했었다. 손안에 호두알을 움켜쥔 채 열심히 굴리기도 하고, 정상에 올라 손바닥을 세게 마주쳐 크게 박수를 치기도 했었는데... 그럼에도 걸음은 언제나 꼿꼿한 자세를 유지했었다. 그러나 오늘은 '산스장'에서 나와 함께 몸을 풀면서 조금 힘겨워하는 모습을 자주 보이곤 했다.
전에는 거의 매일 만나던 분의 소식도 들을 수 있었다. 내가 '욕쟁이 할머니'로 기억하던 분이었다. 60줄에 들어선 따님을 앞세우고 열심히 산에 오르던 분이었다. 그러나 80대 후반의 연세가 된 그분 역시 이제는 더이상 산에 오를 수 없을 만큼 기력이 쇠하셨다고 했다. 따님과 함께 아파트 인근의 공원을 몇 바퀴 도는 것으로 운동을 대신한다는 것이었다. '멋쟁이 할아버지' 역시 이제는 매일 산에 오르는 게 힘에 겨워 일주일에 한두 번 오르는 게 전부라고 했다. 매일 만날 때마다 반갑게 인사를 건네줘서 고마웠다며 멋쩍은 고백을 하는 '멋쟁이 할아버지'. 그분도 이제 80대 후반의 연세가 되셨다고 했다. 나는 그분께 아무것도 해줄 수 없어 미안한 마음뿐이었다.
살 날이 많이 남은 사람은 특정 누군가에 대한 미안함이 크고, 이별을 준비하는 사람은 미안함보다는 고마움이나 감사함이 더 큰 법이다. 내가 '멋쟁이 할아버지'에게 나도 모르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던 것도, '멋쟁이 할아버지'가 아무것도 해준 게 없는 내게 고마움을 고백했던 것도 그런 까닭이리라. 나도 지금보다 더 나이가 들면 어느 순간 미안함보다 고마움이 앞서는 때가 오고야 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