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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선의 나이 들수록: 관계 편
이호선 지음 / 은행나무 / 2025년 2월
평점 :
재미있게 읽은 책이지만 쉽게 리뷰를 쓸 수 없는 책들이 있습니다.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어떤 내용으로 이야기를 풀어가야 할지, 비록 내가 유명 블로거는 아니지만 혹여라도 나의 글을 읽는 사람에게 책에 대해 꼭 들려주고 싶은 핵심 내용은 무엇인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는 것입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도무지 정리가 되지 않아서 글자와 문장들이 머릿속에서 방향도 없이 둥둥 떠다니는 느낌이 들곤 합니다. 그렇게 몇 날 며칠을 흘려보내고 나면 나의 내면에서는 이제 '쓰기 어려우면 쓰지 않아도 되잖아' 달콤한 말로 꼬드기는 악마의 유혹이 시작됩니다. 비교적 의지가 강하지 않은 나는 그런 유혹에 쉽게 넘어가곤 합니다. 책을 읽고 단 한 줄의 기록도 남기지 않은 책들이 손으로 꼽을 수 없을 만큼 많은 것도 그런 까닭입니다.
<이호선의 나이 들수록: 관계 편>도 그런 책들 중에 한 권이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내가 리뷰를 쓸 수 없는 책들은 대개 책의 내용이나 방향이 직접적으로 나의 내면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부분적으로나마 감춰져 있던 나의 단점을 파헤치고, 드러내고, 때로는 "그렇게 살면 안 돼!"라고 외치며 개선을 요구하기도 하는 그런 책들. 나의 선천적인 게으름은 그런 책들을 무시하라고 강하게 명령하는 듯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리뷰를 쓰는 대신 매번 안 읽은 책인 양 무시하는 쪽을 선택하곤 했습니다. 그것이 나의 게으름에 부합하는 일이었으니까요. 나는 그렇게 나의 내면에 잠재하는 선천적인 게으름과 타협하면서 평생을 살아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른이 되었다고 해서 자동으로 관계의 달인이 되는 것은 아니지요. 오히려 나날이 발전하는 사회 속에서, 나이 들수록 복잡해지는 인생에서 더 많은 갈등과 고민을 직면하게 됩니다. 마흔이 되어도 불혹은커녕 늘 '혹'하고, 오십이 되어도 하늘의 뜻을 안다는 지천명의 지혜가 찾아오는 대신 문제가 '지천'이지요. 아침에 눈 뜨면 오늘도 어김없이 나를 피곤하게 만들 사람들 때문에 한숨이 나오고요." (p.6 '들어가며' 중에서)
짐작하셨겠지만 나 역시 나이만 먹었지 인간관계에 있어서는 영 젬병입니다. 어쩔 수 없이 맺고 유지해야 할 관계는 그럭저럭 지속하고는 있지만 새로운 관계를 맺는 일이나 마음에도 없는 관계를 유지하는 일에는 늘 스트레스를 받곤 합니다. 말하자면 나는 아슬아슬한 관계를 겨우 이어나가고 있는 셈입니다. 숭실사이버대학교 교수이자 활발한 강연 활동과 방송인으로 바쁘게 살아가는 이호선 교수의 저서 <이호선의 나이 들수록: 관계 편>은 타인과의 관계는 물론 나 자신에 대해 돌아보게 했던 좋은 책이었습니다. 1장 "나는 나를 환대해야 한다" - 나와의 관계, 2장 "가족은 정서적 공동체다" - 가족과의 관계, 3장 "나이 들수록 우정은 중요하다" - 친구와의 관계, 4장 "만나고, 관찰하고, 공부하라" - 사회적 관계 등 총 4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나이 들수록 어렵게만 느껴지는 관계에 대한 모든 것을 조언하는 '관계 지도서'라고 하겠습니다.
"오래 건강하게 돈까지 잘 벌면서 행복하게 살고 싶으면 오랜 친구를 잘 챙겨야 합니다. 성인기 우정은 개인의 전반적인 웰빙과 심리적 건강에 중요한 역할을 해요. 알고 계시다고요? 그러나 자세히 들으면 지금부터 친구를 보는 눈동자의 크기와 깊이가 달라질 겁니다. 성인기의 우정이 '아, 인생 살 만하다'라고 말하는 '인생의 웰빙'에 얼마나 중요한지 지금부터 알려드리겠습니다." (p.169)
나는 사실 이 책의 저자인 이호선 교수를 텔레비전이나 라디오 방송을 통해 알게 된 듯합니다. 방송에서 저자는 개그맨 뺨치는 찰진 입담과 핵심을 찌르는 상담으로 청중을 사로잡곤 했습니다. 물론 방송이라는 매체의 특성상 유머는 결코 빠질 수 없는 전달 수단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책에서의 저자는 웃음기 쏙 뺀 언어로 논리와 근거를 통한 설득에 주력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내가 익히 알던 저자의 모습이 아닌 듯했습니다. 그것은 방송과 지면의 간극만큼이나 생경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나는 지면에서 만나는 저자의 진지한 모습에 더 마음이 끌리지 않았나 싶습니다. 방송에서의 산만한 모습이 책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부싯돌로 불 피우기 위해서는 두 개의 부싯돌이 필요하지요. 그러나 부싯돌을 둘 다 움직일 필요 없이 하나만 움직여도 불꽃이 살아납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 사회적 체온이 떨어진 친구가 생각난다면 뜬금없는 안부 전화, 안부 문자 한 통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말씀 드리면 많은 MZ분들이 그러시죠. "이걸요? 제가요? 왜요?" 일명 'MZ의 3요'라고 많이들 얘기하시죠? 그러나 우리의 어색한 용기가 나와 누군가의 생명의 불꽃을 다시 피워냅니다. 그래서 어느 쪽 부싯돌이 되든 나만의 만트라로, 두 개의 취미로, 구원 행동으로, 또 우리의 도움 전화로 사람을 살리는 행동들을 꼭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p.296 '나가며' 중에서)
3.1절 연휴입니다. 나는 오랫동안 미루고 미루던 리뷰 한 편을 쓰기 위해 온종일 책상 앞에 앉아 씨름을 했습니다. 하나의 문장을 쓰고 나면 그 문장에서 느껴지는 어색한 거부감이 나를 힘들게 했습니다. 가슴 저 밑바닥에서 솟아나는 자연스러운 글이 아니라 나오지 않는 글을 억지로 쥐어짠 듯한 억지스러움이 가득했습니다. 그것은 어쩌면 나의 내면을 들여다본 듯한 저자의 바른 소리가 듣기 싫어서 귀를 막고 도리질을 치는 치기 어린 행동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윤동주의 시 '쉽게 씌어진 시'가 문득 떠오릅니다.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 오늘은 삼일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