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나라에는 없는 말이지만 '눈치'라는 단어에 대해 생각할 때가 더러 있다. 사전에 따르면 눈치는 '일의 정황이나 남의 마음 따위를 상황으로부터 미루어 알아내는 힘'이라는 의미로 규정하고 있다. 일상에서 우리는 '눈치를 채다', '눈치가 없다', '눈치가 빠르다', '눈치를 살피다' 등 다양한 표현으로 쓰곤 한다. 뉘앙스는 조금 다르지만 '눈치를 살피다'는 '기색을 살피다'와 비슷한 용례로 보기도 하는데, '기색'이나 '면색'보다는 '눈치'가 훨씬 더 친근하게 느껴지는 걸 보면 대한민국에서 살아남기 위한 필수 아이템 중 하나가 어쩌면 '눈치'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게 된다.
직장 생활을 이어가다 보면 사실 '눈치'가 빠른 사람과 일을 하는 게 여러 모로 편하다고 느낄 때가 많다. 구체적으로 지시하거나 의뢰하지 않아도 알아서 척척 해준다면 그보다 편할 수가 없는 것이다. 때로는 말로 꺼내기 어려웠던 일도 어찌 알았는지 결과물을 눈앞에 턱 하니 내놓을 때 감동의 쓰나미가 몰려오기도 한다. 그럼에도 나는 '눈치'가 빠른 사람을 그닥 신뢰하지 않는다. 업무적인 관계에서는 편하고 유용한 사람일지 몰라도 사적인 관계에서까지 가까이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는 얘기다. 오히려 '눈치'가 없는 사람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편이다. 비록 업무적인 관계에서는 부담스럽고 답답한 측면이 있기는 하지만.
나의 기준에서 '눈치'가 없는 사람은 두 부류로 나뉜다. 하나는 전혀 '눈치'를 볼 필요가 없는 환경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부류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의 성향이 고집스럽고 자기주장이 강한 반면 눈곱만큼의 거짓도 용납하지 않는 부류가 그것이다. 물론 전자의 성향을 지닌 사람이라면 우리 사회의 그 어떤 이도 사적으로 가까이하기를 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가까이할 필요가 있지 않고서는 열이면 열 그런 부류의 인간을 좋아할 리가 없는 것이다. 그와 같은 인물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 '윤석열'이라고 하겠다. 그는 정말 '눈치'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기 어려운 인물이다. 재수 없으니 이만 각설하고, 나는 후자의 인간형을 좋아한다. 고집스럽고 때론 답답해 보일 때도 있지만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을 상황에 따라 숨기거나 속이지 않기 때문이다. 때로는 마음에는 두고 있었지만 차마 하지 못했던 말을 그(또는 그녀)가 대신해 주었을 때 일견 당황하면서도 속이 다 시원할 때가 있다. 물론 그런 말을 뱉음으로써 당사자인 그(또는 그녀)는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게 되지만 나는 그(또는 그녀)를 향해 '당신은 잘못한 게 전혀 없다'고 크게 말해주고 싶은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다. 어깨를 다독여주거나 거하게 술을 사주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드는 것이다.
타인에 대한 끌림의 감정은 다분히 주관적이다. '한 어미 자식도 아롱이다롱이'라고 하지 않던가. 나는 비록 '눈치'가 없는 인간을 선호하고 신뢰하는 편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눈치'가 빠른 인간을 더 좋아하지 않을까 싶기는 하다. 날이 추우니 별 생각을 다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