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 마케팅의 비밀을 열다 - 인간의 구매 행동을 유발하는 뇌과학의 비밀
한스-게오르크 호이젤 지음, 구소영 옮김 / 다산북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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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귀찮고 하기 싫어서 마냥 뒤로 미루기만 하는 일이 있다. 그것이 뭔고 하니 바로 쇼핑이다. 남들은 꼭 필요한 물건을 구매하기 위해서 쇼핑을 하기도 하지만 힘들었던 하루의 화풀이로 혹은 물건을 사는 것 자체가 재미있어서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도 풀 겸 겸사겸사 쇼핑을 즐긴다고도 하는데, 나는 이거고 저거고 간에 쇼핑 자체를 싫어하는 까닭에 웬만하면 견디고 보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구닥다리 물건도 우리 집에서는 각각의 소임에 맞는 역할을 오래도록 지속할 뿐만 아니라 귀한 대접을 받는 게 일반적이다. 이 세상에 나처럼 중증의 쇼핑 알레르기를 가진 사람들만 있다면 모든 기업들이 굶어 죽을 거라는 우스갯소리를 종종 듣고는 했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나와 반대되는 성향의 쇼핑 중독자들이 차고 넘친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나처럼 쇼핑을 극도로 혐오하는 사람과 중독 수준으로 쇼핑을 즐기는 사람의 성향이 나뉘는 까닭은 무엇일까.


독일 경제계의 권위자이자 심리학자인 한스-게오르크 호이젤 박사에 따르면 우리가 판단을 내릴 때 이성보다 감정에 훨씬 크게 영향을 받는다고 말한다. 이를테면 내가 쇼핑을 싫어하는 게 어떤 합리적인 근거로 인해 그렇게 된 게 아니라 단순한 감정, 그저 쇼핑이 귀찮고 싫다는 감정으로 인해 그렇게 행동할 뿐이라는 것이다. 한스-게오르크 호이젤 박사가 그렇게 주장할 수 있는 근거는 그가 15년간 뇌과학과 심리학, 마케팅을 연구한 끝에 알아낸 결과이다. 뇌의 감정 처리 영역이 손상된 환자는 결정을 제대로 내릴 수 없으며, 감정이 뇌에서 중추적 역할을 한다는 것이 현대 과학이 내린 결론이다.


"인간은 합리적인 판단을 통해 행동을 결정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우리가 얼마나 감정에 영향받는지 알면 놀랄 것이다. 나는 이 책에서 뇌과학을 통해 감정이 우리의 판단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보여주고 이를 시장에 대입할 수 있는 마케팅 방법을 소개하려 한다. 이 기법은 심리학과 뇌과학, 경제학이 합쳐져 탄생한 것으로 신경마케팅이라 불린다. 소비자의 무의식 속에 있는 감정을 강화하는 마케팅이라 간단히 요약할 수 있다."  (p.6 '서문' 중에서)


부끄러운 말이지만 나 역시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경제학에서는 소비자를 합리적인 존재로 가정한다. 전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지만 소비자가 과연 합리적인 존재일까 하는 데는 늘 의문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잠들 때까지 대부분의 나의 행동을 생각해 보면 본능이나 충동적으로 저지르는 게 대부분인데 합리적이라니... 물론 그런 가정이 없다면 어떤 이론에 도달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기에 합리적인 소비자를 가정할 수밖에 없었겠지만 아무튼 나의 행동은 합리적인 구석은 없는 듯 보이는 게 사실이었다. 그러나 경제학이 발달하면서 소비자의 구매 의사를 결정하는 데 많은 요소가 작동한다는 게 밝혀지고 있다.


"감정이 담긴 이미지와 언어는 효과적이다. 그러나 우리의 의식과 감정적인 뇌가 항상 증거와 근거를 원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뇌는 제일 먼저 감정적인 보상을 찾는다. 이후 주로 비교와 정당화 단계를 거친다. 소비자가 구매 후 제품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고 평가하는 시간을 갖는다는 사실을 간과하는 기업이 많다. 우리 이성은 감정이 만드는 반응을 개선하고자 하며, 그러기 위해 확실한 약속과 근거를 필요로 한다. 근거 역시 통제 동기라는 감정적 요소에 속하지만, 좀 더 복잡하다. 품질 인증 마크나 명백한 품질 검증 결과는 강력한 감정 강화제로서 통제 동기를 직접적으로 겨냥하고 제품과 브랜드에 대한 신뢰를 조성한다."  (p.145)


한스-게오르크 호이젤 박사가 쓴 <뇌, 마케팅의 비밀을 열다>는 고객의 뇌 속에 숨겨진 감정적 구매 버튼을 찾아 누르고자 할 때 필요한 뇌의 감정 시스템과 기능을 알고자 하는, 이를테면 철저한 실무 중심의 책이다. 제1장 '오직 감정만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이유', 제2장 '감정적인 뇌가 기능하는 방식', 제3장 '브랜드, 고객이 인식하는 내적 가치와 동기', 제4장 '디자인, 작은 차이가 돋보이는 제품을 만든다', 제5장 '상업, 쇼핑의 5가지 감정 유형', 제6장 '온라인 쇼핑, 사용자경험을 최적화하라', 제7장 '서비스, 어떻게 다양한 기대를 모두 만족시킬까', 제8장 '고객 맞춤 전략, 목표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법', 제9장 'B2B, 엔지니어도 사람이다', 제10장 '고객과 직원을 활용한 감정 강화 전략'의 총 10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다양한 그림과 도표를 통해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카톨릭교회의 예를 통해 알 수 있듯, 감정 문화 및 브랜드 강화 전략은 원칙적으로 새로운 아이디어가 아니다. 뇌과학 연구를 통해 이 전략이 어떻게 그리고 ㅙ 효과적인지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게 되었을 뿐이다. 강력한 브랜드와 종교가 활성화하는 뇌의 구조가 거의 같다는 사실은 놀랍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강력한 브랜드가 종교를 대체하기도 하고 종교 역시 강력한 브랜드와 비슷한 전략을 세우기 때문이다. 완성도 높은 감정 강화 전략은 브랜드를 일관되게 연출하여 감정적 의미 구조를 만들고 이를 모든 고객 접점에 적용하는 것이다."  (p.324)


감정은 우리에게 무엇이 의미 있고 중요한가를 알려주는 감지기 역할을 하는 까닭에 마케팅에 활용하기 위해서는 감정의 작동 시스템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감정은 안전을 추구하는 균형 시스템,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자극 시스템, 권력을 추구하는 지배 시스템의 영향을 받는다. 이를테면 자극 시스템이 발달한 유형은 주로 새로운 것에 매료되는 얼리어답터가 많고, 균형 시스템이 발달한 사람은 KC 마크처럼 신뢰감을 주는 제품을 선호하며, 지배 시스템이 강한 사람은 남들보다 우위에 서고 싶다는 욕망이 강하므로 고가품이나 희귀품에 감정이 움직인다.

 
최근에 보고된 감정 강화 마케팅의 놀라운 성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많은 마케터는 전통적인 이론에 의존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말하자면 대다수의 소비자가 합리적일 것이라고 여긴다는 점이다. 따라서 할인이나 제품의 기능만 강조할 뿐 제품이 주는 감정적 만족감을 등한시하는 측면이 있다. 결국 인간은 고전적 경제 이론서의 행동과 양태에 따라 구매 의사를 결정할 만큼 단순하지 않다는 걸 이 책은 말하고 있다. 사람에 따라 제각각 다른 감정을 느끼겠지만 감정 시스템에 따라서는 몇 가지 비슷한 유형으로 묶을 수 있는 까닭에 이를 알고 실전 마케팅에 적용한다면 유능한 마케터로 재탄생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물론 책을 읽는 독자의 직업이 마케터가 아닐지라도 자신이 어떤 유형의 인간인지, 어떤 것에 매력을 느끼는지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는 점도 유익하다 하겠다.

오늘은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의 마지막 사전투표일. 나치 독일 시기에 반나치 활동을 했던 루터교회 목사 마르틴 니묄러의 말을 옮겨 본다. "나치가 공산주의자들을 잡아갈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다음에 그들이 사회민주당원들을 가두었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사회민주당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다음에 그들이 노동조합원들을 덮쳤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다음에 그들이 유대인들에게 왔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나에게 닥쳤을 때는, 나를 위해 말해 줄 이들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우리의 정치적 의사를 대신할 국회의원조차 어떤 감정에 의해 선택할 수는 없다. 어쩌면 정치에서 만큼은 우리는 철저하게 고전 경제학 이론을 따라야 할지도 모른다. 정치 소비자는 모두 합리적이라는 가정. 그 가정이 단순한 가정에서 그치지 않고 선거 결과 역시 현실로 보여주어야 하지 않을까. 정치적 선택에 있어서도 우리의 감정 시스템이 알게 모르게 작동하고는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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