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치는 대로 끌리는 대로 오직 재미있게 이동진 독서법
이동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어떤 목적으로든 책을 읽는다는 것 자체에 대해 사람들의 의견은 대체로 긍정적이다. 구체적으로 검증된 바는 없지만 독서가 유익하다는 데 우리 모두가 잠정적으로 찬성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이 믿는 바를 꿋꿋이 실천하면 되는데 독서라는 특정 행위에 있어서 만큼은 그게 말처럼 쉽지만은 않은 듯하다. 대개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구구절절 설명하면서 독서를 실천하지 못하는 이유를 해명하느라 진땀을 빼고 있으니 말이다. 말하자면 독서가 좋은 줄은 알지만 자신의 여건상 못하고 있을 뿐이라는 변명. 자신도 언젠가 여유가 생기면 꾸준히 독서를 할 계획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아일랜드의 소설가 조지 버나드 쇼의 묘비명이 떠오르곤 한다.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


사정이 이렇다 보니 '무슨무슨 독서법'이라는 제목을 달고 출간된 독서 관련 서적이 시중에는 꽤 많이 유통되고 있다. 독서가 좋은 줄은 알지만 책을 읽지는 않는 많은 '독서 주변인'들을 위해 또다시 책이 발간되는 이 웃지 못할 상황이라니. 책을 읽지도 않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라니 '이게 무슨 시추에이션~'이냐고 어이없어하겠지만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보는 현실인 걸 어쩌겠나. 사실 '무슨무슨 독서법'이라는 제목의 책은 '은하수를 여행하는 독서 주변인을 위한 안내서'가 아니고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책을 더 좋아하도록 만드는 책이라고 말하는 게 옳다.


"독서 행위의 목적은 결국 그 책을 읽는 바로 그 시간을 위한 것 아닐까요. 그 책을 다 읽고 난 순간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독서를 할 때 우리가 선택한 것은 바로 그 책을 읽고 잇는 그 긴 시간인 것입니다."  (p.58)


이동진 영화평론가의 저서 <닥치는 대로 끌리는 대로 오직 재미있게>의 부제는 '이동진 독서법'이다. 독서를 실천하기 위한 어떤 특별한 묘책이나 독서에 이르는 지름길이 있을 리 없지만, 어쩌면 사람들은 독서를 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 책을 구입하고, 몇 장 읽다가 책장에 꽂아 놓은 채 책등이 하얗게 변색되는 먼 훗날의 어느 순간까지 책의 존재조차 인식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물론 저자는 책을 완독하지 않아도 된다고 부드럽게 말하고 있지만. 책의 구성은 단순하다. 1부 생각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 2부 대화 '읽었고, 읽고, 읽을 것이다' 3부 목록 '이동진 추천도서 500'으로 구성된 이 책은 사실 독서에 관한 작가의 주관적인 생각이나 나름의 철학을 한 권의 책으로 정리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물론 2부에서는 '씨네 21'의 이다혜 기자와의 책에 관한 인터뷰 내용이 실려 있다.


"세상에는 책을 읽지 않고도 좋은 글을 쓰는 작가가 있으니, 독서와 글쓰기가 정비례는 하지 않는 것 같지만 그래도 대체적으로는 비례하는 것 같아요. 그 예 중 하나가 저이기도 해요. 제가 글을 쓰고 말해서 먹고살잖아요. 타고난 측면이 없지는 않을 거예요. 그리고 노력한 측면이 있단 말이에요. 하지만 옛날 글과 지금 글을 내 기준으로 봤을 때는 차이가 커요. 지금이 그나마 예전보다 나은 것 같다고 느끼는데 옛날의 나와 지금의 나는 타고난 부분에서는 차이가 없을 것 아니에요. 더 나아졌다면 그것은 학습한 부분이나 후천적인 결과 아니겠어요. 많이 쓰기도 했지만 많이 읽기도 했거든요."  (p.157)


다니던 대학을 휴학하고 군입대를 앞두고 있는 나의 아들 역시 책을 좋아한다. 책을 좋아한다는 건 우리나라처럼 교육열이 높은 국가에서는 다방면으로 유리한 측면이 있다. 글짓기 대회에서 수상을 한 적도 많지만 어느 시점부터 영어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아들은 릭 라이어던이나 스튜어드 깁스 등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의 소설을 원서로 읽기 시작했다. 그 덕분인지 아들은 영어 학원도 다니지 않았는데 고등학교 영어 시험에서 늘 상위권을 유지했다. 국어 시험도 다르지 않았다. 늘 잠만 잔다며 할머니로부터 핀잔을 달고 살았으면서도. 그러던 아들은 군 입대를 위해 올해 2월 초에 본 토익 시험에서 만점을 받기도 했다. 유학 한 번 다녀온 적 없는 아들이 말이다.


이동진 작가는 책에서 '독서는 습관'이라고 썼다. 맞는 말이다. 나와 아내도 아들이 아주 어렸을 적에는 잠들기 전에 한두 시간씩 늘 책을 읽어주었고, 스스로 책을 읽기 시작하던 초등학교 시절의 주말에는 언제나 집에서 가까운 대형서점을 방문하여 온종일 함께 책을 읽곤 했다. 읽고 싶은 책을 마음대로 고르도록 일절 간섭하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그때의 습관이 지금까지 유지되는 걸 보면 신기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독서력' 그러니까 책을 읽는 능력이라는 것이 없지는 않습니다. 책을 읽는 데에도 근력과 경험이 필요하고 그것은 습관과 시간으로 길러집니다. 이 독서력을 굳이 그래프로 표현하자면 포물선이 아니라 계단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서서히 올라간다기보다는 단계가 있는 거죠. 그리고 단계를 올리는 계기는 어려운 책을 읽어낸 경험일 확률이 높습니다."  (p.67)


집에 머무르기보다는 들로 산으로 여행을 하기 좋은 계절이다. 사진 동아리 활동을 하고 있는 나의 아들 역시 지금 광주를 거쳐 여수로 여행 중에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인생의 일정 시점에서는 좋은 습관을 들이기 위한 반복의 시간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여행을 평생의 업으로 삼을 게 아니라면 말이다. 혹은 삼겹살 굽는 것을 평생의 직업으로 추천할 요량이 아니라면 말이다. 활동하기에 좋은 날씨, 곱게 핀 봄꽃들이 우리를 밖으로 밖으로 유혹하고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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