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을 스치는 바람이 소슬한 한기를 느낄 만큼 차갑다. 계절의 순환을 무시한 채 여름에서 겨울로 펄쩍 순간이동을 한 듯한 날씨. 벚나무 잔가지에 지저분하게 남아 있던 잎사귀들은 이제 다 떨어지고 없다. 검은빛의 나목. 무채색으로 변하고 있는 지상의 변화, 말하자면 처연한 색의 함몰에 비해 쪽빛으로 반짝이는 하늘은 더없이 화려한 색채를 자랑하고 있다. 기온이 낮아질수록 청명한 빛깔을 드러내는 하늘의 높고 고고한 자태를 나는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곤 한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공기는 맑지만 코끝이 쨍한 추운 날씨와 미세먼지 가득한 따뜻한 날씨 중 선택하라면 나는 언제나 전자에 한 표를 던지는 사람이다.


가자지구에 대한 이스라엘 시오니스트들의 무차별적인 공습으로 인해 민간인 사상자가 급증하고 있다. 그들의 잔인함이 도를 넘고 있는 것이다. 규모는 다르지만 나치 독일의 홀로코스트를 그들이 비난할 자격이 있는가 하는 문제를 깊이 생각하게 한다. 사실 모든 죽음은 개별적이지만 숫자로 발표되는 뭉뚱그려진 죽음은 단지 하나의 숫자에 불과하다. 우리가 숫자에 대고 추모나 애도를 표하지 않는 것처럼 각각의 죽음과 그에 따른 슬픔을 공감하지 못한다면 그는 다만 하나의 숫자에 불과할 뿐 인간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이태원 참사가 터졌을 때 우리나라 대부분의 언론들 역시 사망자의 숫자에만 집착했을 뿐 사망자 개개인의 개별적인 슬픔을 보도하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인간도 아니다. 인간이기를 포기한 자들이었다. 대통령을 비롯한 현 정부의 고위 공직자들 역시 다르지 않았다. 그들을 어찌 따뜻한 피가 흐르는 인간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주말을 맞아 유럽 곳곳에서는 휴전을 촉구하는 시위가 잇따랐다고 한다. 영국에서는 30만 명 이상의 시위 참가자가 있었다고 하는데, 적어도 그들은 지난 역사에서 저질렀던 자국의 실수가 현재의 가자지구 참극을 불러왔음을 인식하고 있을 터, 우리 이웃의 죽음을 나의 슬픔인 양 애도할 수 있는 민간인이 피도 눈물도 없는 각국 정부의 정치인들을 질타하고, 선거를 통해 끌어내리고, 더 이상의 비극을 내 주변에서 용인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보여주지 않는다면 이런 비극의 역사는 반복될 것이다.


소맷귀를 파고드는 찬바람에 계절을 실감하고 있다. 겨울이 오면, 그리고 한 해를 보내는 연말이면 우리들 각자는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아야 한다. 나는 진정 따뜻한 피가 흐르는 한 사람의 인간인가 아니면 숫자에 대고 형식적인 애도를 표하는 빌어먹을 놈인가 하는 문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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