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구석 오페라 - 아름다운 사랑과 전율의 배신, 운명적 서사 25편
이서희 지음 / 리텍콘텐츠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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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내가 속한 고등학교 동창 모임의 송년 회합은 오페라 공연 관람이 주가 되었다. 12월의 어느 날을 골라 참석이 가능한 사람의 인원수를 체크하고, 회장이나 총무가 티켓을 예매하여 공연 당일 저녁에 모여 가벼운 식사와 함께 티켓을 배부하면 공연 관람으로 하루의 일정이 마무리되는, 예전에는 없던 건전한(?) 모임으로 바뀐 것이다. 부어라 마셔라 하며 술로 시작하여 술로 끝을 보던 젊은 시절의 모임은 이제 친구들 모두에게 부담으로 작용하는 까닭이다. 술에 관대하던 지난 시절의 문화도 많이 바뀌어 온 게 사실이고 말이다. 그렇게 관람한 오페라 공연이 제법 된다. 오페라의 '오'자도 모르던 친구들이 이제는 자신이 듣고 배운 오페라에 대한 지식을 뽐내느라 여념이 없는 걸 볼라치면 절로 웃음이 나오곤 한다. 나라고 예외는 아니어서 인터넷에서 스치듯 본 오페라 공연 소식이나 우연히 들른 서점에서 보게 되는 오페라 관련 서적의 제목을 꼼꼼히 적어 두었다가 친구들에게 자랑삼아 알리곤 한다. 그것이 마치 나만 알고 있는 대단한 지식이라도 되는 양.


"물론 오페라를 생소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저 또한 그랬으니까요. 소극장이나 야외 공연도 병행하는 뮤지컬과 달리 대부분 전용 극장에서 공연하는 오페라는 낯설고 먼 장르로 느껴지기 쉽습니다. 하지만 오페라도 콘서트나 뮤지컬처럼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장르입니다. 오페라도 결국 하나의 단편 문학이기 때문입니다. 뮤지컬이 개인의 꿈과 사랑의 드라마를 노래한다면, 오페라는 역사나 인생의 역경을 표현하는 문학적인 줄거리를 노래합니다. 다채로운 매력으로 완전한 문학적 서사를 펼치는 무대. 성악가의 육성으로 전해지는 전율을 '오페라'에서 경험할 수 있습니다."  (p.5~p.6 'Prologue' 중에서)


우리의 삶은 아무런 예고도 없이 돌연 끝나버리는 까닭에 살아가는 동안 나에 대한 기억이 타인의 기억 마당 한 귀퉁이에서 한껏 성장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지 않나 싶다. 친구들과 오페라 공연을 관람할 때마다 드는 생각이다. 문화콘텐츠 전문작가인 이서희가 쓴 『방구석 오페라(리텍콘텐츠, 2023.11.01)』는 우리가 익히 들어보았음직한 오페라 25편을 소개하며, 이를 통하여 우리 삶에 색다른 전율을 전해준다. 우리가 오페라의 매력에 빠질 수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오페라 속 인물들이 우리들 각자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에서의 감동적인 순간 이후로 이끌리듯 오페라를 찾아다녔다는 저자의 경험처럼 우리는 다만 오페라에 대한 '첫 경험'이 중요할 뿐, 오페라에 빠져드는 그다음 과정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겪게 되는 자연스러운 순서가 아닐까 싶다. 오페라는 결국 '나'의 이야기인 동시에 내가 알고 있는 '너'의 이야기인 까닭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환상과 비참한 현실이 교차하는 가운데 세계적으로 유명한 오페라 곡 '밤의 여왕의 아리아(Konigin der Nacht)'가 탄생합니다. 해당 아리아의 유명세로, <마술피리>는 오페라 입문자에게 추천하는 작품으로 자주 선정됩니다. 이처럼 <마술피리>는 어렵지 않게, 익숙하게 감상하기 좋은 작품입니다. 남녀노소 모두가 어울려 무대를 즐기다 보면 작품 속 인물들과 긴 여정을 함께한 것처럼 어느새 끈끈한 유대감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p.161)


사랑하는 이를 구하기 위해 변장까지 한 <피델리오>나 젊음을 얻기 위해 잔혹한 대가를 치르게 되는 <파우스트> 등 저자의 풍부한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풀어낸 25편의 명작 오페라를 담고 있는 <방구석 오페라>는 어쩌면 오페라라는 낯선 장르를 경험하는 데 지레 겁을 먹었던 사람들에게 그럴 필요 없다는 걸 알려주는 훌륭한 길잡이 역할을 할지도 모른다. 내가 동문 모임에서 있었던 단체 오페라 관람을 통하여 오페라라는 낯선 장르를 어렵사리 경험하게 되었던 것처럼 이 한 권의 책이 오페라라는 낯선 세계로 안내할 수만 있다면 당신의 인생 또한 얼마나 풍요로워질 것인가.


"<마탄의 사수>는 하나의 사건에 엮인 여러 인물의 입장과 마음을 다각도에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극을 감상하며 인물들의 마음과 입장을 헤아리다 보면 누군가의 욕망에 동화된 자신의 모습을, 또 다른 '나'의 얼굴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p.192~p.193)


날씨가 춥다. 갑자기 변한 날씨에 어깨가 절로 움츠러든다. 2023년도 얼마 남지 않은 것이다. 올해도 나는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과 함께 편안한 의자에 앉아 화려한 무대에서 펼쳐지는 한 편의 오페라를 감상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보낸 즐거웠던 추억이 내 모습과 함께 친구들의 기억 한 귀퉁이를 차지할 테고 나의 역사가 시나브로 타인의 기억 속에서 완성되어 갈 것이다. 오페라의 조명이 화려하게 빛나는 것처럼 우리네 생명의 불빛이 환하게 타오르는 한 나의 서사는 계속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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