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내게도 행운이...


8월로 향하는 한반도의 숲은 여름이 절정입니다. 길게 이어지던 장마도 저만치 물러가고 폭염에 힘겨워하는 이 땅의 모든 생명체에게는 전쟁과 같은 하루하루가 이어질 것입니다. 아침저녁으로 서늘한 바람이 부는 초가을의 어느 시점까지는 말입니다. 방학과 여름휴가를 맞은 도시의 인간들은 멀리 산과 계곡으로 피서를 떠났습니다. 도시인들이 떠난 도시의 텅 빈 공간을 작열하는 태양과 말매미 울음소리가 채우고 있습니다. 견디기 힘든 열기와 말매미의 소음만 가득한 도시의 공간에는 피서조차 떠날 수 없는 잔류 도시인들의 좌절과 무기력이 아스팔트 위의 아지랑이처럼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풍경은 마치 이제 더는 물이 샘솟지 않아 사막의 폐허로 변한 어느 마을을 떠오르게 합니다.


엊그제는 저녁 무렵 한차례 소나기가 쏟아졌습니다. 주홍빛 노을이 물들던 시간이었습니다. 갑작스레 몰려온 먹장구름이 하늘을 뒤덮었고 이내 굵은 빗줄기가 사정없이 쏟아졌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주홍빛 노을이 빗줄기와 함께 지상으로 쏟아져 내린 듯 주변이 온통 붉은 노을빛으로 환하게 밝아졌던 것입니다. 우리의 예상을 깨고 말입니다. 우리는 어떤 사건이나 자연현상에 대한 자신의 지레짐작이 사실에 부합하지 않았을 때, 괜히 머쓱해진 나머지 억지웃음을 짓곤 합니다. 지상에 걸린 노을과 하늘에 쌓인 먹구름이 묘한 대조를 이루었던 풍경.


나는 최근 영호 멧돼지를 장관으로 임명하고, 똥광 멧돼지를 방통위원장으로 임명했습니다. 많은 멧돼지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게다가 기시감 멧돼지의 핵 오염수 방류도 임박한 시점에서 나는 지지율 반등을 위한 뭔가 획기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자면 나를 반대하는 멧돼지들을 모두 때려잡고 시중에 떠도는 이런저런 풍문들을 괴담으로 몰아 차단하는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다는 게 나의 결론이었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나는 아내 멧돼지와 함께 부산을 방문했다가 장어에 물리는 봉변을 당했습니다. 처가의 나와바리인 양평으로 길을 내는 문제와 명품 쇼핑으로 구설수에 오른 아내 멧돼지를 위로하는 차원이었는데 좌파 장어가 나를 물고 말았던 것입니다. 나는 똘마니들에게 장어 무리에 대한 즉각적인 압수수색과 구속영장 청구를 명령하였습니다.


사실 똥광 멧돼지는 전임 리더였던 쥐박이 멧돼지 밑에서 여러 범죄 사실에 연루되었던 자입니다. 그런 까닭에 나의 똘마니들 중에서도 반대하는 자가 몇몇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흠결 때문에 임명해야 할 멧돼지를 다른 멧돼지로 교체한다는 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처사입니다. 흠결이 많은 멧돼지일수록 내가 지시하는 말에 무조건적으로 순응할 테니 리더 멧돼지인 나로서는 그런 자들을 대거 등용하는 데 주저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나라가 망할지라도 나의 권력은 더욱 굳건하게 유지될 테니 말입니다. 장모 멧돼지를 감옥에 보낸 이후로 나의 표정이 더욱 밝아진 것 같다는 똘마니 멧돼지들의 칭찬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할망구 멧돼지를 빨리 보내고 나면 나에게도 많은 재산이 상속될 듯합니다. 이보다 더 기쁜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경고 : 이 글은 단지 허구에 의한 소설일 뿐 특정 사실이 아님을 엄중 고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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