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중에
스티븐 킹 지음, 진서희 옮김 / 황금가지 / 202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스티븐 킹의 소설은 감각적인 반면 관념적이지는 않다. 그것은 곧 가독성을 중시하는 작가의 성향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자신이 지적이라고 생각하면 할수록 소설가는 대개 관념적인 글에 매료되는 경향이 있게 마련이고, 작가와 독자들 사이의 간극이 멀어지는 지점도 바로 그와 같은 성향이 발현되는 시기라는 걸 작가들은 잘 모르는 듯하다. 독자들로부터 멀어지는 대신 관념적인 성향에 매몰되는 자신의 모습이 마치 인기에 연연하지 않는, 고상하고 우아한 어떤 지식인을 닮아가는 양 생각하는, 일종의 지적 나르시시즘에 빠져버리고 마는 소설가들을 나는 많이도 보아 왔다. 독자들로부터 한참이나 멀어진 그들은 대개 세상이 자신의 재능을 몰라준다고 원망하는 데 자신의 시간을 탕진하곤 한다.


"우리가 사는 건물에 도착해 보니 엘리베이터는 여전히 고장나 있었다. 혹시 엘리베이터를 탔다면 상황이 달라졌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인생이 선택에 달렸고 우리가 택한 길에 따라 삶이 결정된다는 말을 하는 이들도 잇지만 그건 순 헛소리다. 이 일만 봐도 알 수 잇다. 계단으로 올라가나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나 우리가 3층에 도착할 거란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가혹한 운명이 장난을 걸어오면 어느 길을 택하든 똑같은 곳에 다다르게 된다. 난 그렇게 생각한다."  (p.15)


스티븐 킹의 소설 <나중에(LATER)>는 어린 소년 제이미 콘클린을 주인공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1인 작가 에이전시의 대표인 티아는 아들인 제이미를 돌보며 자신의 주 수입원인 작가들의 저작권을 관리한다. 어릴 적부터 죽은 이들과 대화를 할 수 있었던 제이미는 사람이 죽으면 죽은 직후부터 그 혼이 사라지는 며칠 동안만 대화가 가능하며, 이때 혼령들은 진실만을 답한다고 어머니인 티아에게 말했었다. 이런 아들의 능력을 반신반의하며 기이하게 생각하던 티아는 이웃에서 사망한 노부인(버켓 교수의 부인)이 숨겨둔 반지의 위치를 정확히 듣고 찾게됨으로써 아들의 능력을 확실히 믿게 된다.


2008년 리먼 사태에 휘말려 가세가 기울게 된 티아는 사무실을 외곽으로 옮기고, 씀씀이도 줄이면서 힘겹게 에이전시를 운영한다. 그녀가 의지할 만한 구원처는 시리즈물 베스트셀러 작가인 토머스가 유일했다. 그러나 토머스 씨는 그의 베스트셀러 시리즈의 완결편인 <로아노크의 비밀>을 쓰다가 심장마비로 갑자기 사망하게 되고, 선인세까지 지불한 마당에 책을 출간하지 못하면 파산에 이르게 될 지경에 처한 티아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죽은 혼령과 대화할 수 있는 아들의 능력에 기대를 걸게 되는데...


티아의 가까운 친구인 리즈 더튼은 뉴욕 경찰청에 근무하는형사인데, 어느 날 그녀의 여벌 제복에서 코카인이 발견되고 티아는 이 일로 불같이 화를 낸 후 그녀와 결별한다. 마약 운반에 개입되어 있던 더튼 형사는 동료들의 눈밖에 난 상태였고, 직장에서도 해고되기 일보 직전의 상태였다. 돌파구가 필요했던 더튼 형사는 폭발물을 설치한 후 자살한 테리올트의 행젖을 쫓는다. 폭발물이 설치된 정확한 장소만 알 수 있다면 그 공로를 인정받아 해고는 면할 수 있다는 계산에서 취한 행동이었다. 더튼 형사는 자신의 차에 제이미를 강제로 태운 후 테리올트의 혼령을 찾아 떠난다. 총기 자살로 엉망이 된 얼굴의 테리올트 혼령을 만난 제이미는 그 끔찍한 형상에 놀라 달아나고 싶었지만 더튼 형사의 강요에 의해 어쩔 수 없이 그와 마주한다. 더튼 형사는 결국 폭발물이 설치된 장소를 제보함으로써 자신의 직장을 지키게 된다. 그러나 일주일이면 사라질 줄 알았던 테리올트 혼령은 그 후에도 계속해서 나타나 제이미를 괴롭힌다.


"나는 귀갓길에도 줄곧 (그때쯤에는 이미 버릇이 되어서) 태리올트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았지만 그자의 모습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아주 좋은 징조였으나 사실 놈이 영원히 사라졌으면 하는 바람은 포기했다. 놈은 언제든 나타날 수 잇는 불쾌한 존재였다. 그저 내가 대비하고 있을 때 놈이 나타나기를 바랄 뿐이었다."  (p.206)


제이미를 괴롭히는 테리올트와의 문제를 그 누구에게도 속시원히 털어놓을 수 없었던 제이미는 결국 예전에 살던 집의 이웃이었던 버켓 교수를 찾아간다. 사망한 부인의 반지를 찾아주었던 바로 그 집이었다. 지금까지의 일을 자세히 전해 들은 버켓 교수는 제이미에게 해결책을 알려준다. 그리고 제이미는 실행 과정에서 약간의 문제는 있었지만 테리올트를 쫓아내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직장에서 해고된 더튼 형사가 다시 제이미를 찾아와 협박을 함과 동시에 자신의 일을 도와줄 것을 강요하게 되는데...


"어린애로 산다는 건 불리한 점이 많다. 잘 들어보길 바란다. 그중에 세 가지만 꼽으면 여드름, 학교에서 비웃음을 안 사려면 어떤 옷을 입고 갈지 결정해야 하는 고뇌, 수수께끼 같은 여자아이들이다. 도널드 마스든의 저택에 다녀온 후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납치 사건 이후) 나는 어린애라는 사실이 유리할 때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심리에서 기자들과 TV 카메라의 난투극을 겪을 일이 없다는 것도 그중 하나다. 내가 직접 출석해서 증언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p.332)


내일부터는 민속 최대 명절이라는 설 연휴가 시작된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읽거나 들어보았을 스티븐 킹의 소설을 이번 연휴에 그의 작품 한두 권쯤 읽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다. <캐리>, <샤이닝>, <미저리>, <돌로레스 클레이븐>, <쇼생크 탈출>, <그린 마일> 등 그는 공포 소설 뿐 아니라 SF, 판타지, 서스펜스를 넘나드는 방대한 작품 세계를 구축한 까닭에 독자들의 선택지도 충분하지 싶다. 1947년생인 작가가 지금도 여전히 작품활동을 왕성하게 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저 놀랍지만 천생 작가인 스티븐 킹의 소설이라면 마다할 이유가 없지 않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