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싫고 좋고 이상하고
백은선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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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으로 글을 쓰는 것은 아니지만 이따금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나를 대신하여 글을 쓰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나를 체감하지 못하는 무중력의 공간에서, 영혼도 제압당한 상태로 글이 완성되어가는 과정을 그저 멀뚱히 지켜보는 일은 현실에서의 일반적인 느낌과는 상당히 다르다. 타자에 의한 수동적인 입장에 처하는 데서 오는 무력감이나 좌절감은 전혀 느껴지지 않고, 전에는 맛볼 수 없었던 신선한 글맛 혹은 내 능력으로는 감당할 수 없었던 완성된 형태의 글의 영역을 체험하는 느낌은 특별하거나 다소 생경하다. 누군가가 글을 통하여 세태에 찌든 나의 영혼을 순간적으로 정화하는 느낌이랄까. 물론 그런 특별한 체험은 내가 원한다고 언제든 경험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그와 같은 글을 쓴 직후에는 정신적으로 고양된 듯한 느낌을 받곤 한다.


백은선 시인의 산문집 <나는 내가 싫고 좋고 이상하고>는 글을 쓰는 데서 오는 기쁨보다는 책을 읽는 데서 얻을 수 있는 보편적인 교훈이나 감동은 물론 작가의 솔직한 고백이나 직설적인 화법으로 인해 신선한 충격이나 새로운 경험을 덤으로 체험하게 된다. ‘말’과 ‘시’와 ‘삶’과 ‘여성’이라는 각 부의 제목들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작가는 결코 녹록지 않은 핵심 키워드를 부의 제목으로 선정하여 자신의 경험과 생각들을 풀어간다. 독자들은 어쩌면 서문에서 밝힌 작가의 도발적인 문장에 움칫 놀라 본문을 읽기도 전에 지레 겁을 먹고 물러날지도 모르겠다.


"선한 것을 믿고 싶지만 대체로 불신하기를 좋아하며 아름다움보다 추함에 끌리곤 한다. 가능태를 따져보는 것을 습관처럼 내재하고 있지만 쉽게 감동하기도 쉽게 차가워지기도 한다. 불안 때문에 수다스러워지고 수치심에 입을 다물곤 한다. 산문을 쓰기로 한 것이 큰 실수라는 것을 알지만 스스로를 시험에 들게 하고 후회하는 것이다. 과거를 곱씹지만 현재만 알고 싶다. 엉망진창이지만 꽤나 성실한 사람의 성실하고 엉망인 삶에 관한 글. 읽으면 좋고 안 읽으면 더 좋다. 보세요. 나의 우울을."  (P.5 '들어가며')


1부 '말'에서 작가는 N번방과 문단내 성폭력 문제를 짚고 있다. 며칠 전에도 성추행 당사자였던 고은 시인이 침묵을 깨고 다시 작품 활동을 개시했다는 뉴스가 있었다. 최영미 시인에 의해 밝혀진 그의 추악한 실체가 5년 전의 일이었다. 짧다면 짧은 그 시간 동안 그는 아무런 죄책감도 없이, 어떤 반성이나 사과도 없이 보란 듯 문단에 복귀한 것이다. 백은선 시인 역시 우리 문단에서 성희롱과 추문의 대상이 되는 여성 작가들에 대해 쓰고 있다.


2부 '시'에서 시인은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던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시가 어떻게 위안을 주는 존재였는지, 그럼에도 자신의 소망과 꿈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 결코 순탄치 않았음을 밝힌다. 그리고 자신과 같은 고통을 겪었거나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스스로의 가능성을 축소시키는 안팎의 억압에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소망을 쟁취해야 한다고 응원과 지지의 말을 건넨다. 3부 '삷'에서 시인은 코로나19 시대의 반복되는 일상과 하루가 다르게 쏟아져 나오는 온갖 공포와 억압에도 불구하고 시인은 '더 오래 살아야겠다'고 말한다. 사랑의 힘이 시를 쓰게 하고, 시를 쓰는 데서 사랑이 온다는 믿음.


"말과 글은 이만큼이나 멀고 아득하다. 우리는 그것들이 우리 내면에서 정확히 어떠한 메커니즘으로 작동하는지, 사람이 내밀한 것을 말할 수 있게 될 때와 그것을 마침내 글로 쓸 수 있게 될 때의 순간을 절대로 쉽게 예상하거나 알아낼 수 없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p.197)


4부 '여성'에서 시인은 상처받으며 살아가는 존재들, 개인에게 분열증을 야기하는 한국 사회, 기후위기를 조장하며 아이들의 미래를 보장하지 않는 어른들의 세계를 거론하며 이와 같은 문제적인 세계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여성의 가능성에 대해 말한다. 그러나 여성 서사에도 '성녀' 혹은 '악녀' 프레임에 갇혀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의 문제점이 존재하며 이를 벗어나기 위해 여성들 스스로 함께 실천하며 단결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한다.


"아이를 재우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마지막이니까 멋지게 굿바이를 날리며 퇴장하고 싶은데 그게 잘 되지 않는다. 아직 할말이 더 있는데 못한 것 같고 갑자기 너무 아쉽고 그렇다. 그렇지만 나는 진짜 궁핍해지지 않는 이상 절대 다시는 산문집을 내지 않을 것이라 다짐 또 다짐한다. 산문을 쓰는 건 벌거벗은 임금님이 되는 느낌인 것 같다(내가 임금이란 소리는 아니고)."  (p.271~p.272)


세상에는 내가 미처 읽지 못한 무수히 많은 책들이 존재한다. 어쩌면 존재조차 모르는 책들도 부지기수일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오늘도 책을 읽고, 이따금 취미 삼아 글을 쓰고, 그러는 과정에서 새로운 세상을 발견하곤 한다. 이전에는 내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을. 백은선 시인의 산문집을 읽으면서 내내 피하고 외면했던 것이 하나 있다. 성장 과정에서 시인도 나만큼 힘들었구나 하는 점. 그럼에도 일부러 피했던 까닭은 성장과정이 적당히 힘들었던 사람은 그걸 자랑할 수 있겠지만 죽을 만큼 힘들었던 사람은 같은 경험을 공유한 사람으로부터 동질감이나 동료 의식을 느끼기보다 먼저 외면하게 된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것은 어쩌면 무의식에 가까운 본능이리라. 심리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가장 피폐했던 경험을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방어기제, 그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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