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쌀쌀하던 날씨는 주말이 되면서 한결 부드러워졌다. 해가 없는 이른 아침이나 초저녁 혹은 햇빛이 들지 않는 그늘에서는 여전히 서늘한 느낌을 지우기 어렵지만 가을 햇살이 쏟아지는 한낮에는 얇은 외투만으로도 더위를 느끼게 된다. 유난히 가을비가 잦았던 탓인지 들녘에는 여전히 푸르스름한 볏잎이 마른논을 채우고 있다. 농부의 한숨처럼 메마른 바람이 건듯 불고 미처 자라지 못한 볏대가 쓰러질 듯 일렁인다. 우리가 사는 삶의 시간 시간들을 사랑하는 누군가와 함께 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시간 속에 누군가가 우연처럼 함께 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던 어느 날, 나는 내 삶에 참여했던 그 모든 이들에게 감사함을 느꼈었다. 나와 얼마나 가깝고 아니고의 문제가 아니라 내 삶에 참여했던 많은 사람들로 인해 내 삶이 풍요로워졌다는 걸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가 미워했던 사람일지언정 진정으로 그를 용서하고 고마운 마음을 품어야 하는 게 아닐까.

 

며칠 전 대통령 후보로 나선 모 씨가 또 주워 담을 수 없는 망언을 해서 온 나라를 들쑤셔 놓았다. 부산을 찾았던 그는 "우리가 전두환 대통령이 군사 쿠데타와 5·18만 빼면, 잘못한 부분이 그런 부분이 있지만, 그야말로 정치를 잘했다고 말하는 분들이 많다"며 "그거는 호남분들도 그런 얘기를 한다"고 말했다. 말하자면 그는 "나치 정권도 대량학살만 빼면 정치를 잘했다."라거나 "이춘재도 살인만 빼면 인간성은 좋다."는 식의 비유를 든 것인데 이게 과연 타당하기나 한 것인지... 그의 망언(실언이 아닌)들을 생각나는 대로 간추려 보아도 꽤나 많다.

 

1) 게임 하나 개발하려면 한 주에 52시간이 아니라 일주일에 120시간이라도 바짝 일하고, 이후에 마음껏 쉴 수 있어야 한다.

2) 코로나 초기 확산 대구 아닌 다른 지역이었다면, 민란이 일어났을 것이다.

3) 이명박·박근혜 생각하면 마음이 무척 아파.

4) 부정식품이라는 것은, 없는 사람은 그 아래 것도 선택할 수 있게 더 싸게 먹을 수 있게 해야 한다.

5) 암 걸려 죽을 사람은 임상시험 전 신약 쓰게 해 줘야...

6) 페미니즘도 건강한 페미니즘이어야지, 선거에 유리하게 하고, 짐권 연장에 악용돼선 안 된다. 저출산 문제엔 여러 원인이 있다. 얼마 전 글을 보니까, 너무 정치적으로 악용돼서 남녀 간 건전한 교제 같은 것도 정서적으로 막는 역할을 한다는 얘기가 있다.

7) 후쿠시마 원전이 폭발한 것은 아니다. 지진하고 해일이 있어서 피해가 컸지만 원전 자체가 붕괴된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방사능 유출은 기본적으로 안 됐다.

8) 사람이 이렇게 뭐 손발로 노동을 하는 그렇게 해서 되는 게 하나도 없다. 그건(손발 노동) 인도도 안 한다. 아프리카나 하는 것이다.

9) 집이 없어서 주택청약 통장을 만들어 보지 못했다.

10) 주택청약 통장을 모르면 거의 치매환자다.

 

그 외에도 많지만 이건 뭐 말을 옮기는 나도 수준이 떨어지는 느낌이 들어서 더 이상 쓰고 싶지 않다. 게다가 압권은 전두환 옹호 발언에 대해 유감 표명만으로 그치려다가 이에 대해 국민의 질타가 이어지자 겨우 사과를 한다는 게 사과를 잡은 돌잡이 사진을 올리지 않나, 개에게 인도 사과를 주는 사진을 sns에 올려 국민들을 우롱하지 않나 아무튼 가지가지한다. 이런 사람이 대선 후보라니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 또한 수준을 알 만하다.

 

주말에 여유 시간이 좀 나서 김정훈의 <낀대세이>를 읽고 있다. 읽다 보면 망언을 일삼는 대선후보로 인한 스트레스는 사라지고 어느새 나도 모르게 배꼽을 잡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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