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은 밤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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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소설은 한 글자 한 글자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꼼꼼히 읽어도 이해가 잘 되지 않는가 하면 또 어떤 소설은 눈밭을 스치는 바람처럼 반나절 만에 후루룩 읽어도 전에 이미 두어 번쯤 읽었던 것처럼 쉽사리 이해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독자가 읽는 재미는 또 다른 것이어서 띄엄띄엄 어렵게 읽으면서도 끝내 손에서 책을 내려놓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쉽게 이해되면서도 몇 날 며칠을 방치하다 억지로 읽게 되는 경우도 더러 있다. 그러므로 쉽고 재미있는 소설을 고르겠다는 생각은 애저녁에 버리는 게 좋다. 소설은 그저 그저께 산 로또복권의 추첨을 기다리듯 그렇게 설레는 마음으로 펼칠 일이다. 번번이 꽝이 될지언정 1등 당첨을 간절히 바라는 심정으로 그렇게...


최은영의 소설을 선택한다는 건 실패가 없는 복권 추첨과 같다는 걸 알기에 나는 두려움 없이 집어들곤 한다. 재미의 차이는 조금 있을지언정 재미에 감동을 더하면 결과적으로 만족의 강도가 비슷하다는 건 소설가에게 있어서는 더없이 큰 선물을 부여받은 거나 다름없다고 나는 혼잣말처럼 되뇌곤 했었다. 그리고 <밝은 밤>은 그녀의 첫 장편소설이라고 했다. 처음이라는 두려움보다는 이전과 다른 작가의 모습을 상상하며 나는 설렘으로 책을 펼쳤다.


"엄마는 남자와 사는 삶에 희망이 있는 것처럼 말하곤 했지만, 그 말을 가만히 들어보면 도리어 엄마야말로 남자에 대한 희망이 없는 사람 같았다. 때리지 않고 도박하지 않고 바람피우지 않는 남자만 되어도 족하다니, 인간 존재에 대한 그런 체념이 또 어디 있을까."  (p.17)


소설은 서른두 살의 '나'(지연)가 이혼 후 서울을 떠나 바닷가 근처 작은 마을 희령으로 도망치듯 향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이 소설의 화자인 지연은 이곳에서 오랫동안 연락이 끊겼던 (외)할머니와 우연히 재회하게 된다. 엄마와 사이가 틀어진 할머니는 지연의 결혼식에조차 초대받지 못할 정도로 데면데면한 관계를 지속하고 있었는데, 지연은 뜻하지 않게 이웃사촌이 된 할머니를 통해 저간의 어색한 관계를 복원하고 할머니로부터 할머니의 어머니, 할머니의 외할머니로 이어지는 지난했던 모계 3대의 삶을 전해 듣는다. 그 신산스러운 삶의 궤적을 따라가면서 지연 역시 단단해져 간다.


"고통 안에서 시간은 직선으로 흐르지 않았다. 나는 자꾸만 뒷걸음질쳤고, 익숙한 구덩이로 굴러떨어졌다. 다시는 회복될 수 없을지도 모르는 조바심 서린 두려움이 나를 장악했다. 나는 왜 내가 원하는 만큼 강해질 수가 없을까. 이렇게까지 노력하는데도 왜 나아지지 않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며 오래 울던 밤에 나는 나의 약함을, 나의 작음을 직시했다."  (p.156)


백정의 딸로 태어나 사람들의 멸시와 천대 속에서 자랐던 증조모는 병들어 누운 어머니를 홀로 모시는, 의지가지없는 신세였다. 일본군에게 잡혀갈 위기에서 구해준 사람이 증조부였고, 증조모는 어쩔 수 없이 증조부와 함께 개성으로 달아난다. 병든 어머니를 돌본 건 증조부의 친구였던 새비 아저씨였다. 새비 아저씨 부부가 증조모가 있던 개성으로 이사를 온 후 사람들로부터 따돌림을 받던 증조모는 새비 아줌마와 가장 절친한 동무로 지낸다. 증조모가 딸 영옥을 낳은 2년 후 새비 아줌마도 딸 희자를 낳는다. 그들 역시 친자매처럼 가깝게 지낸다. 새비 아저씨의 집안이 가세가 기울어 빚을 갚을 길이 없자 새비 아저씨는 돈을 벌기 위해 일본으로 떠나고 새비 아저씨는 결국 원폭 희생자가 되어 귀국한다. 해방이 된 후 새비 아저씨가 죽고 집안사람이 사상범으로 몰리자 새비 아줌마와 희자는 남한으로 탈출하여 새비 아줌마의 고모가 있는 대구에 정착한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증조부 내외와 영옥 역시 피난길에 올라 대구에서 새비 아줌마와 재회한다. 국군에 자원입대했던 증조부는 휴전이 되자 부모님의 소식을 쫓아 희령으로 이사한다. 그곳에서 영옥은 처자식이 있던 남자와 혼인하여 '나'(지연)의 엄마인 미선을 낳는다. 결국 영옥의 남편인 조남선은 본처를 따라 떠난다. 증조부도 교통사고로 죽고 희령에는 이제 증조모와 영옥 모녀만 남는다.


"눈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세상에는 진심으로 사과받지 못한 사람들의 나라가 있을 것이다. 내가 많은 걸 바라는 건 아니야, 그저 진심 어린 사과만을 바랄 뿐이야. 자기 잘못을 인정하기를 바랄 뿐이야. 그렇게 말하는 사람과, 연기라도 좋으니 미안한 시늉이라도 해주면 좋겠다고 애처롭게 바라는 사람과, 그런 사과를 할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애초에 이런 상처도 주지 않았으리라고 체념하는 사람과, 다시는 예전처럼 잠들 수 없는 사람과, 왜 저렇게까지 자기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드러내?라는 말을 듣는 사람과, 결국 누구에게도 이해받을 수 없다는 벽을 마주한 사람과, 여럿이 모여 즐겁게 떠드는 술자리에서 미친 사람처럼 울음을 쏟아내 모두를 당황하게 하는 사람이 그 나라에 살고 있을 것이다."  (p.252)


소설은 시대적 환경이나 경제적 여건에 관계없이 줄곧 약자의 입장에 있었던 여인의 삶을 조망한다. 할머니가 들려준 이야기, 새비 아줌마가 증조모에게 보내온 편지, 영옥에게 보내온 희자의 편지 등을 통해 여성이라는 이유로 감수해야만 했던 지난한 삶과 그들 사이의 진한 우정 혹은 동지 의식이 진한 감동으로 남는다. 그리고 '나'(지연)의 이혼을 바라보는 엄마와 '나'의 시각차와 그로 인한 갈등을 보여줌으로써 사회적 약자로서의 여성이 우리 사회에서 겪어야 하는 정신적, 육체적 고통은 지금도 여전히 현재 진행형임을 강조하고 있는 듯하다.


"예전처럼 며칠씩 서로 말도 붙이지 않을 정도로 신경전을 벌일 만한 일이 우리에게는 더이상 없었다. 큰불이 나기 전에 꺼버렸고, 상대에게 작은 불씨를 던졌다는 것에 문득 무안해지기도 하는 사이가 된 것이었다. 그건 우리가 그만큼 친밀한 사이가 아니라는 뜻이기도 했다. 서로에게 큰 상처를 입혔다가 돌이킬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우리는 눈빛으로 공유하고 있었다. 우리는 더이상 끝까지 싸울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p137)


소설에 등장하는 남자들은 한결같이 문제 투성이다. 바람을 피우고도 사과 한마디 없었던 '나'(지연)의 전 남편과 증조모를 무사히 구출했다는 이유로 평생 자기밖에 몰랐던 증조부, 본처가 있다는 사실도 숨긴 채 초혼인 척 결혼을 했던 할아버지 조남선 등은 어쩌면 우리 사회의 전형적인 남편상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스스로의 잘못도 인지하지 못한 채 여자들로부터 괜한 욕을 먹고 있다고 반박할런지도 모른다. 그런 까닭에 소설에 등장하는 여인들은 서로를 보듬고 너나 할 것 없이 서로의 삶을 위로한다.


"새비 아주머니의 시선은 증조모의 몸을 지나서, 마음을 지나서, 어쩌면 영혼이라고 부를 수 있는 장소에까지 다다랐다. 그곳에서, 아직 다섯 살도 되지 않은 어린 증조모는 햇볕에 따뜻하게 데워진 돌멩이를 안고서 내 동무야, 내 동무야, 말을 걸고 있다. 그런 작은 따뜻함이라도 간절해서, 하지만 사람은 너무 무서워서, 증조모는 마당 구석에 쪼그려앉아서 자기 그림자를 보고 있다."  (p.288)


누구에게나 삶의 풍경은 비슷할지도 모른다.  평범한 일상 사이로 드문드문 기쁘고 슬픈 기억들이 마치 아름다운 장식처럼 펼쳐지는 것. 소설 역시 그와 같은 삶의 풍경을 한 폭의 수채화처럼 그려낸다. 기나긴 어둠의 관습을 통과하면 네온사인 찬란한 '밝은 밤'이 기필코 찾아오고야 말 것이라는 작가의 기대는 '본인이 느꼈던 현실의 중력이 더는 작용하지 않는 곳'으로 향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현실의 중력이 조금 더 가벼워지기를 작가는 소설을 쓰는 내내 기도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렇게 희망 고문을 하면서 무거운 현실을 이기고 있노라고 세상을 향해 외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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