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면 애가 된다'는 말은 어느 정도 사실이라고 믿는다. 나이가 들수록 육체적 기능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정신적 기능 역시 퇴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화' 혹은 '늙음'만으로 모든 노인을 '애'로 폄훼할 수는 없다. 거기에는 자신의 뜻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것에 대한 역정 혹은 신에 대한 분노가 더해지는 까닭에 고집스럽고 성질 사나운 전형적인 '노인 애'의 모습이 추가적으로 더해지기 때문이다. 자신의 늙음에 대한 겸허한 받아들임 또는 수용의 자세를 보임으로써 자신보다 젊은 사람들들로부터 노인 다움에 대한 적절한 존경이나 대우를 받지는 못할망정 알 수 없는 대상(신이라고 불릴 수도 있는)에 대한 투정이나 자기부정(여전히 늙지 않았다고 믿는)을 일삼음으로 인해 젊은이들로부터 '애'(보다 못할 수도 있는)와 같은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인간은 결국 정신적, 육체적으로 어느 것 하나 성한 게 없는 시기를 겪게 마련이다, 게다가 기대수명이 높아짐에 따라 우리가 '애'로 살아야 하는 기간은 점점 늘어만 가는 추세이다. 하지만 정작 본인들은 '애'가 되었다는 사실을 믿으려 하지 않는다. 보편적인 경험보다는 사적인 경험이 많은 '노인 애'로 살아간다는 건 지금처럼 변화가 빠른 사회에서는 득보다 실이 많은 게 사실이다. 사회 구성원들과 융합할 수 있는 가능성보다는 사사건건 부딪히고 갈등을 일으킬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자신의 경험을 완전히 무시한다는 것 또한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국민의힘 당대표 선거에서 30대의 이준석 최고위원이 돌풍을 일으키는 건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다. 정치는 결국 '애'가 아닌 '성인'이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발 더 나아가 성장기에 있는 '애'에게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제한하는 것처럼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 '노인 애'의 시기에 접어든 노인에게도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제한하는 게 국가의 미래를 위해 옳은 처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이를테면 80세든 83세든 국민적 합의가 있는 선에서 그 이상의 고령층에게는 정치적 은퇴 혹은 안식년의 차원에서 배려를 하는 게 어떨까 하고 말이다. 자신의 경험을 젊은이들에게 전승하고 싶다면 자문이나 조언으로도 충분할 텐데 굳이 본인이 직접 정치 전면에 나서거나 투표장에 간다는 건 번거롭지 않겠는가. 그런 번거로운 일을 굳이 하겠다고 나서는 청개구리 영신이 붙은 사람들이 더러 있기는 하지만...

 

며칠 동안 비가 내려 선선하던 날씨는 쨍하고 해가 나면서 초여름 날씨처럼 더워졌다. 산다는 건 여전히 쉽지 않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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