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는 제법 더위를 느낄 만큼 계절이 훌쩍 지나가고 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시간은 우리가 신경도 쓰지 않았던 것에 몹시 서운함을 느꼈던 모양, 우리를 저만치 떼어놓고 '나는 내 갈 길 가련다'며 서둘러 달아나는 듯했다. 언제나 그렇듯이. 그러나 인간의 습성이란 지나간 시간에 대해서는 몹시 아쉬워하고 관심을 쏟아붓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혹은 내 앞에 닥칠 시간에 대해서는 무심하게 마련, 살아온 방식대로 그러려니 맞고 또 살아가는 것이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리는 달리고 또 달려 평생을 그렇게 달리기만 하다가 죽음에 골인하는 것이라고 말한다면 괜히 씁쓸하고 한편으로 서글퍼지기도 하지만, 사실 우리는 시간이라는 외줄 위에서 조증과 울증을 번갈아가며 경험하면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는 까닭에 옆사람의 달리는 모습은 미처 보지도 못한 채 생을 마감하는 것이다. 이것이 과연 기쁜 일인지 슬픈 일인지 나로서는 명확히 알지 못한다. 백은선 시인의 산문집 <나는 내가 싫고 좋고 이상하고>를 얼핏 보았는데 내 눈에는 시인의 이상한 모습만 눈에 띄어 이 책을 과연 끝까지 읽을 수 있을까, 걱정이 되는 것이다.

 

"나는 과거를 자주 생각하는 편인데 늘 어른들이 했던 말, 교복 입고 다닐 때가 제일 좋을 때다. 나중에 어른이 되면 그때가 그리울 거다. 그런 말 다 개소리라고 생각한다. 누가 나에게 백억 줄 테니 그때부터 다시 살라고 하면 바로 자살할 거다. 진심이다. 나는 늘 십대보다 이십대가, 이십대보다 삼십대가 더 좋았다. 친구가 얼마 전에 그런 얘기를 했다. 야, 사십대는 더 좋대, 우리 그때까지는 꼭 살자. 그때까지는 살아야지."  ('내가 작가가 되기로 한 것은' 중에서)

 

지랄맞은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은 그 시절이 별로 그립지 않은 법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앞만 보고 달린다. 과거를 되돌아보는 일이 엿같은 것이다. 그와 같은 경험은 일체 해보지 않은 사람이 '이해한다'고 거드는 일은 더 엿같은 일일 게다. 그래서 나는 시인을 이해한다고 말하지 않을 작정이다. 우리를 떼어놓고 저만치 앞서가는 시간과 헐레벌떡 쫓아가기에 바쁜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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