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갈 이유 - 힘겨운 삶에 지친 이들을 위한 철학 처방전
오카다 다카시 지음, 홍성민 옮김 / 책세상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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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뭇거뭇한 죽음의 그림자를 막연히 동경하거나 다른 어느 때보다 가깝다고 느낄 때가 더러 있다. 삶이라는 게 언제나 꽃길일 수만은 없는 까닭이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가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던 것도 어쩌면 그런 이유일지도 모른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sns에 올라오는 행복에 겨운 사람들의 과장된 몸짓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에게 삶은 적당히 힘들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 삶은 견딜 수 없이 고통스러운 것이기에 어떤 위로나 합리적인 설득으로도 죽음 저쪽으로 기운 어떤 이에게 삶으로의 귀환을 종용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것은 이 분야의 전문가인 정신과 의사에게도 마냥 버겁고 힘든 일인 모양이다. 하기에 정신과 의사로서 유명한 오카다 다카시조차 인생의 위기에 직면한 사람들을 만나 상담하면서 과학적 접근과 의학 지식만으로는 사람을 고통에서 벗어나게 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죽고자 하는 사람을 합리적 이유로 설득하기란 불가능한 까닭에 이미 힘겨운 시간들을 지나온 사람들의 발자취를 더듬어 책을 내기에 이르렀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갈 이유>는 어쩌면 정신과 의사로서 자신의 한계를 인식한 저자가 삶이 힘든 이들에게 건네는 작은 위로이자 자신의 무능력에 대한 변명의 글일지도 모른다.

 

"나는 이 책에서 삶의 고통을 짊어지고 고난과 불합리한 시련에 직면하면서도 어떻게든 살아가기 위해 정답이 없다는 것을 알더라도 끊임없이 물음을 던질 수밖에 없는 인간, 의미와 용기를 얻기 위해 고투하는 시행착오, 그리고 그것이 다다른 궁극의 지혜를 말하려 한다."  (p.10~p.11 '프롤로그' 중에서)

 

일본에서 인격장애 임상 분야의 제1인자로 손꼽히는 저자는 이 책에서 학문으로서의 철학이 아닌, 현실에서 맞닥뜨리는 고난을 극복하기 위한 실용적 의미에서의 철학을 제시한다. 말하자면 '어차피 죽을 존재인 우리가 고통을 받으면서도 살려고 하는 데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던짐으로써 삶의 의미를 다시 한번 환기하고 정신과 의사로서의 임상 경험과 역사 속 인물들의 사례를 바탕으로 답을 찾아나가고자 하였다는 점이다. 저자는 삶에서 고통을 받는 유형을 총 7개로 나누고 각각의 경우에 걸맞은 역사 속 인물들을 불러냄으로써 인생을 살아가기 위한 자신만의 철학을 독자들에게 제시한다.

 

1장 '부모와 사이가 나쁜 사람에게'에서 저자는 몇 번이나 자 기도를 했던 지인의 사례와 어머니에게 사랑받지 못했던 철학자 쇼펜하우어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너무 멀어도, 너무 가까워도 서로에게 불행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 부모 자식 간의 관계이지만, 쇼펜하우어가 가장 창조적이었을 때는 어머니와의 불화가 심했을 때라는 걸 언급하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어머니의 사랑에 대한 욕구불만이 창조적 에너지의 원천으로 작용할 수 있음을 말한다. 2장 '자기부정과 죄악감으로 고통받는 사람에게'에서는 여러 번의 자살 예고로 부모와 그 자신을 고통스럽게 했던 <데미안>의 작가 헤르만 헤세가 등장한다.

 

"헤세는 청년 시절에 자살의 위기와 아슬아슬하게 동거하는 날들을 보냈다. 중년이 되어서도 헤세는 여전히 그 상처를 지우지 못하고 여러 번 강한 자살 충동을 느꼈다. 그의 인생은 삶의 고통을 완전히 극복하지는 못했지만 죽음으로부터 간신히 살아남은 역사이기도 했다. 죽음에 대한 유혹으로부터 깨끗이 졸업할 수 있었던 것은 쉰 살 이후의 일이었다."  (p.56)

 

3장은 '자신답게 살 수 없는 사람에게'로, 자기다운 삶을 살지 못하는 사람들을 향한 조언이 담겼다. 저자는 의무와 책임, 자유와 가능성 사이에서 갈등하는 것은 지극히 인간다운 일이며, 이분법적 구도에서 벗어나 균형을 찾을 것을 권한다. 저자는 그에 대한 적합한 예로 프랑스 소설가 조르주 상드를 들고 있다. 4장은 ''굴레'에 속박된 사람에게'로, <인간의 굴레>를 쓴 영국 작가 서머싯 몸의 이야기가 나온다.

 

"아무리 변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지나치게 사람을 바꾸면 에너지를 낭비하게 되고 필요 이상으로 몸과 마음을 소모시키게 된다. 휴식에 대한 욕구가 높아졌을 때는 안정을 원하는 시기도 찾아온다. 많은 사람의 경우, 안정과 변화라는 양극 사이를 오가며 흔들린다. 그것은 계절이 돌고 돌듯 자연스러운 행위일지도 모른다."  (p.176)

 

5장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에게', 6장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철학', 7장 '인생을 살아가는 의미를 찾아서'로 이어지는 후반부에서 저자는 장 자크 루소, 에릭 호퍼,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의 사례를 들려준다. 도쿄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했던 저자는 탁상공론이 되어버리기 십상인 철학에 한계를 느껴 중퇴하고 교토 대학 의학부에 입학해 수련을 쌓은 끝에 정신과 의사가 되었다고 한다. 삶의 의미를 발견하기 위한 도구로서 철학을 선택학 데는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자신의 자전적 경험과 의사로서의 임상 경험, 그리고 철학도였던 저자의 경험이 잘 어우러진 이 책에서 우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갈 이유'를 조금이나마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것이 우리의 남은 삶을 살아갈 원동력이 될지도 모르고 말이다.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이 할 수 없는 것, 자신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 자신에게 불리한 상황이 자신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결코 여기지 않는다. 그런 어려움과 불쾌함조차 이렇게 주어지는 데는 뭔가 의미가 있을 것이고 그것은 하나의 은혜라고 생각한다. 유한한 존재이기 때문에 자신을 초월하는 힘과 의미를 찾는 것이다."  (p.319)

 

저자는 책의 말미인 에필로그에서 '인생을 살아가기 위한 철학이란,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인생 속에만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을 쓰면서 다시 한번 강하게 확신했다.'고 밝혔다. 밖에는 지금 잦아들듯 잦아들듯 가는 눈발이 치고 있다. 겨울에서 봄으로, 그리고 다시 겨울로 이어지는 무한반복의 순환이 이어질 것만 같은 바깥 풍경을 보면서 지금 이 순간에도 삶의 고통 속에서 삶과 죽음을 저울질하는 어떤 이의 한숨이 저 바람 속에 섞여 있음을 깨닫게 된다. 눈이 그치고 더없이 맑은 하늘이 다시 찾아올 거라는 믿음이 있다는 건 마음 깊은 곳에 삶의 의미를 담은 철학이 존재한다는 걸 뜻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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