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쓸모 - 자유롭고 떳떳한 삶을 위한 22가지 통찰
최태성 지음 / 다산초당 / 201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얼마 전 국내 최고령 여의사의 타계 소식을 신문에서 읽었다. 한 달 전까지만 하더라도 남양주의 한 병원에서 국내 최고령 현역 의사로 활동하던 고인은 94세의 결코 적지 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직접 회진도 돌며 환자를 하루 20여 명씩 진료하였다고 한다. 노환이 악화되어 다른 병원에 입원했던 고인은 결국 자신이 헌신한 병원으로 돌아와 생의 마지막 일주일을 지내다가 영면에 들었다고 하는데 그가 남긴 인사말이 나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의 가슴에 깊은 울림으로 남았던 듯하다. 고인이 남긴 세 마디의 짧은 인사말은 "힘 내. 가을이다. 사랑해."였다. 이 세 마디에 담긴 함의는 사람들마다 그 해석이 제각각이겠지만, 내 생각에는 '세상을 살아가는 건 힘든 일이지만 그래도 굴하지 않고 힘을 내서 살아갈 일이며, 그러다 보면 긴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오는 것처럼 선물처럼 기쁜 날들이 주어지는 법이니, 힘들더라도 주변 사람들을 사랑하고 사랑 받는 삶을 살길 바란다'는 뜻이 아닐까 싶었다. 살아 있는 사람은 각자가 처한 위치에서 저마다의 다른 생각을 하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각자의 해석은 서로 다를지라도 고인의 뜻을 이어받은 많은 사람들에 의해 역사는 면면히 이어지겠지, 하는 생각과 함께. 그런 의미에서 '역사는 도무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한 편의 아름다운 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네 삶은 그 시를 이루는 하나의 시어(詩語), 또는 시구(詩句)쯤 될 테고 말이다.  책꽂이에서 몇 달째 먼지만 쌓이던 <역사의 쓸모>가 내 눈에 띄었던 것도 그와 같은 맥락이었다. 역사 강사 최태성의 역작이기도 한 이 책을 나는 왜 진작 읽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걸까.

 

"인생은 단 한 번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더욱 해답에 목말라 있는지 모릅니다.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기 위해 책을 읽고 조언을 듣고 때로는 직접 부딪쳐가면서 답을 구합니다. 저는 김육이 '한 번의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에 자신의 일생으로 답했다고 생각합니다. 삶을 던진다는 것의 의미를 보여주는 분이죠." (p.190~p.191)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역사 강사 중 1인인 저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를 배우는 우리의 목적에 대해 설파합니다. 역사는 그저 대학입시나 취업에 필요한 하나의 관문으로서 무작정 암기하고 시험이 끝나면 열심히 암기했던 사실들을 까맣게 잊고 마는 불용의 학문이 아니라 우리의 삶 속에 녹아들어 매순간의 선택을 돕고 의미 있는 삶으로 인도하는 실용의 학문이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역사는 우리와 상관없는 연도나 인물의 나열이 아니라 과거 인물의 삶을 통해 불안한 자신의 삶을 계획하도록 하는 참고서라는 설명이다.

 

"인생을 사는 동안 우리는 늘 선택의 기로에 놓입니다. 선택이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알 수 없기에 그때마다 막막하고 불안하지요. 하지만 우리보다 앞서 살아간 역사 속 인물들은 이미 그런 경험을 했습니다. 그 수많은 사람의 선택을 들여다보면 어떤 길이 나의 삶을 더욱 의미 있게 할 것인지 예측할 수 있습니다." (p.11 '들어가는 글' 중에서)

 

1장 '쓸데없어 보이는 것의 쓸모', 2장 '역사가 내게 가르쳐준 것들', 3장 '한 번의 인생, 어떻게 살 것인가', 4장 '인생의 답을 찾으려는 사람들에게'의 300페이지에 가까운 결코 얇지 않은 책이었지만 저자는 여전히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이 남아 있는 듯했다. 자신의 삶이 그러했듯 이 책을 읽을지도 모르는 수많은 독자들 역시 역사를 통해 자신의 삶을 성찰하고 미래를 향해 꿋꿋이 나아갈 수 있기를 바라는 까닭이다. 역사는 그렇게 수많은 이의 삶을 강물처럼 이끌면서 도도히 흘러게 마련이라는 걸 책을 읽는 모든 독자들이 공감하고, 우리들 각자가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중요한 인물임을 자각할 때 비로소 자신의 삶을 책임감 있게 가꾸어 나아갈 수 있다고 저자는 확신하고 있는 듯했다.

 

"그러고 보면 제 인생은 과거 역사를 통해 만나는 사람들과, 현재 그러나 곧 역사가 될 시간에서 만나는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 같습니다. 역사는 사람을 만나는 인문학이라고 말했는데 제 인생 역시 사람을 만나는 과정인가 봅니다. 저를 여기까지 성장시켜주신 모든 '사람'들,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새롭게 관계를 맺을 여러분과 함께 또 한 번 건강한 성장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p.294~p.295 '나오는 글' 중에서)

 

역사에는 개인의 사사로운 욕심이나 편견이 있을 수 없다. 추하고 더럽다고 하여  누군가의 삶을 제쳐 두거나 축소하지 않으며, 아름답고 숭고한 삶이라 하여 덧붙이거나 과장하지 않는다. 역사는 세상을 살다 간 모든 이의 삶을 아우르면서 면면히 이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최고령 여의사의 아름다웠던 삶과 죽음에서 비롯된 나의 독서는 '그래, 가을도 지났으니 힘을 내야지.' 하는 다짐으로 끝을 맺는다. 과거의 기록으로만 남은 어느 여의사의 죽음을 추모하며 '역사는 한 편의 아름다운 시'임을 마음에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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