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스트 챔피언 - 경쟁 없이 지속가능한 시장을 창조하는 CSV 전략
김태영.도현명 지음 / 흐름출판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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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 이명박 정부의 출범과 동시에 야심 차게 추진했던 사업이 사회적 기업 지원과 양성이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했던 사회적 기업 1천 개 양성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사회적 기업으로 인증을 받으면 3년간 정부에서 임금을 지원해 줌으로써 사업 초창기의 경영 여건을 개선하고 경기침체에도 양적 성장을 꾀할 수 있도록 한 것인데, 이는 취업 취약 계층에게 일자리를 제공한다는 목적도 있었다. 그러나 정부의 의도와는 달리 임금 지원으로 생긴 수익을 인력이나 시설 확충 등에 재투자하지 않고 지원이 끝나면 폐업이나 인증을 반납함으로써 취약계층을 다시 실업자로 전락하도록 만들었다.

 

사실 그와 같은 생색내기용 투자가 한두 번 있었던 건 아니지만 굳이 언급하는 이유는 김태영, 도현명의 <넥스트 챔피언>을 읽는 동안 문득 내가 알던 후배 한 명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당시에 후배는 가정에서 배출되는 플라스틱을 수거·선별·재활용하는 자원 재활용 회사를 설립하여 저소득 취약계층을 직원으로 고용하였다. 그러나 정부의 지원이 끊기고 기업 환경이 악화되면서 그도 결국 폐업을 하고 말았다. 건실한 사회적 기업이 없는 건 아니지만 정부의 지원에 의존하는 많은 사회적 기업이 태생적으로 지속 가능한 사업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오랫동안 갈등관계로 여겨온 사회와 시장을 융합할 기회가 우리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기업은 새로운 가치 창출의 원천으로서 사회 문제를 이해하고,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어느 한 기업의 도덕이나 철학을 넘어 실제 비즈니스의 변화를 촉발할 이러한 혁신 전략을 '공유가치창출' 즉 CSV Creating Shared Value 전략이라고 부른다. 이런 패러다임의 전환 Paradigm Shift에 올라탄 기업은 '넥스트 챔피언'으로 비상할 것이다." (p.6)

 

성균관대학교 SKK GSB 교수로 재임하고 있는 김태영 교수와 임팩트 비즈니스 전문 컨설팅 기업인 임팩트스퀘어의 대표로 있는 도현명 대표는 그들의 공저작 <넥스트 챔피언>에서 기업이 CSV를 통해 경쟁 없이 지속 가능한 시장을 창조하는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소비자의 불만이나 사회적 문제에는 그닥 관심이 없었던 기존의 기업들이 사회적 문제를 적극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이를 해결할 방법을 찾는 과정에서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는, 말하자면 상생의 기업인 셈이다.

 

"모든 기업이 저마다 사업과 관련해 공유가치를 창출한다면 사회 전체의 요구가 충족되고, 지역사회에서 기업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 물론 사회문제가 공유가치로 다 해결되진 않는다. 하지만 기업은 그 기술과 자원, 관리 능력을 활용해 정부나 사회부문 기관에서 이루지 못한 사회진보를 이끌 수 있고, 이를 통해 다시 사회에서 존중받을 수 있다." (p.42)

 

예컨대 백내장으로 고통받는 인구가 600만 명에 이른다는 인도에서 안과의사 고빈다파 벤카다스와미는 아라빈드 병원을 설립하여 백내장 수술을 무료로 해주거나 환자 개개인의 형편에 따라 지불하도록 했음에도 불구하고 병원은 외부 지원 없이 흑자 경영을 유지하고 있다. 그 기저에는 철저한 분업화로 백내장 수술을 특화함으로써 수술비용을 현저히 낮춘 데 있었다. 병원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독보적인 수술 경험을 바탕으로 값싸고 질 좋은 인공수정체를 만들어냄으로써 지금은 전 세계 120여 개 나라에 인공수정체를 수출하게 되었다고 한다.

 

아라빈드 병원처럼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를 다층적으로 연결하여 혁신의 동력으로 삼는 기업이 시장의 신흥 강자로 떠오르고 있다. 빈곤층에게 무담보 소액 대출을 해주던 그라민 은행은 통신과 식품 산업으로 사업을 다각화했고, 영양 불균형에 시달리는 저개발국 국민들을 위해 가격을 낮춘 소포장의 보급형 제품을 내놓은 네슬레, 베트남의 낙후 지역에서 고추재배를 함으로써 지역주민의 소득을 올리고 자사에 필요한 고춧가루 물량을 확보한 CJ제일제당, 탄소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임으로써 고객의 신뢰를 회복한 GE 등 전 세계적으로 CSV에 주목하는 기업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저소득층을 돕거나 환경문제를 해결하는 등 CSV를 대기업의 자선 사업, 비영리 모델로 보는 시각이 많은 게 현실이다. 말하자면 기업의 이미지 제고를 위해 수익의 일부를 사회에 환원하는 차원에서 CSV를 바라보는 것이다. 그러나 대기오염이나 미세 플라스틱, 수질오염, 쓰레기 대란, 빈부격차 등 거대 자본과 국민 전체의 인식 개선이 조화롭게 결합되지 않으면 도저히 해결 불가능한 사회적 문제들이 계속해서 나타나고 있는 마당에 그와 같은 일부 생색내기용 투자로는 이미지 제고도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회적 문제 해결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넥스트 챔피언>은 마이클 포터의 CSV이론을 소개하는 수준에 그치는 책이 아니라 CSV 전략 실행의 실천적 요소를 이해하고, CSV를 둘러싼 빈번한 오해를 짚어 보면서 조직 혁신, 사회적 가치의 측정과 평가, 파트너십 구성 방안 등을 자세히 다루고 있다. 게다가 책에서 풍부한 실전 사례를 다룸으로써 사업의 배경과 연결 구조, 차후의 결과 등을 살펴볼 수 있도록 하였다.

 

"모든 것은 여전히 사람의 문제다. 그러나 사람의 생각과 역량이 자라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말하자면 이 책에서 꿈꾸는 기업을 통한 사회혁신, 이를 통한 사회의 지속 가능한 진보라는 것은 인재를 지속적으로 교육하고 좋은 경험을 쌓아감으로써 가능하다. 그러므로 기업은 당장 그 일을 위한 투자에 나서야 한다. 기업은 사회적 기업이나 비영리조직에 핵심인력을 파견해 사회적 가치의 새로운 언어를 배우거나, 사회적 기업이나 비영리조직에서 비즈니스 훈련이 되어 있는 인력을 중용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p.303)

 

수익의 극대화에만 몰입할 뿐 사회적 문제에는 다소의 거리를 두었던 기업들이 사회적 문제와 사회적 가치에 눈을 돌리고 있다. 비록 그것이 일부 기업에 국한된 현실이기는 하지만 결국에는 모든 기업이 지향하는 거대 트렌드로 바뀔지도 모른다. '지구촌'이라는 말이 어느 때보다도 현실감 있게 느껴지는 요즘, 한 지역의 문제가 그 지역에서만 그칠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기업이 사회적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고 새로운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비용을 아끼기 위해 한밤중에 오염된 공기를 대기 중으로 내뿜는 비양심적 제철소는 한 번쯤 되새겨볼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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