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하나의 문장
구병모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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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인성호(三人成虎)라는 고사성어가 있지요. 세 명이 모여 입을 맞추면, 없던 호랑이도 만들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인터넷이 없던 아주 먼 과거에도 맘만 먹으면 잘못도 없는 어느 한 사람을 불한당으로 만드는 일쯤이야 식은 죽 먹기였나 봅니다. 그러니 요즘처럼 인터넷이 발달한 시대에 애먼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 일은 그야말로 손바닥 뒤집기보다 더 쉬워졌다는 게 맞을 듯합니다. 비근한 예로 재작년에 있었던 '240번 버스 기사 사건'이나 작년 말에 있었던 '이수역 폭행 사건'만 보더라도 인터넷에 올라온 일방적인 글만 읽고 많은 사람들이 애먼 사람을 상종도 할 수 없는 인간쓰레기쯤으로 매도하는 댓글을 달았던 걸 기억하실 겁니다. 생각해보면 참으로 무서운 일입니다. 당하는 입장에서는 날벼락도 이런 날벼락이 없을 듯합니다. 복장이 터질 일이지요. 속을 끄집어내어 보여줄 수도 없는 노릇이고 말입니다.

 

'소설가 P씨의 계정을 팔로한 지는 이 년 남짓 되었다.'는 고백으로 시작되는 구병모 작가의 단편소설 '어느 피씨주의자의 종생기'는 꾸준한 판매지수를 유지하던 소설가 P씨가 네티즌의 과도한 인신공격성 비난에 대처하는 모습과 인터넷상에서의 논란이 걷잡을 수 없이 증폭되었다가 어느 한순간 소리도 없이 스러지는 SNS 상에서의 많은 논란으로 인한 치명적 여파를 다루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소설가 P씨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를 대변하고 있을 뿐 소설가라는 직업군의 특성과는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소설에 등장하는 소설가 P씨는 일 년에 평균 한 권꼴로 육 년째 저서를 출간하고 있는 성실한 작가로서 흔한 산문집 한 번 낸 적도 없고, 신문 잡지 방 송 어디에도 칼럼조차 싣지 않는, 그러면서도 그가 쓰는 소설 역시 딱히 내세울 것 없는 문체와 살짝 빈곤한 사유에도 불구하고 매해 꼬박꼬박 신간을 내는 것은 물론 꾸준한 판매지수를 유지하는 까닭에 뭘 해도 본전치기는 하겠다 싶은 작가라는 평을 듣고 있었습니다. 소설에서 관찰자의 입장에 있는 '나'는 '발표하는 소설마다 소비되기 좋고 소진되기도 쉬운 적당한 감흥을 주는 소설가 P씨의 신작이 편협함과 낡은 세계관으로 논란이 되었을 때 P씨가 어떻게 대처하는지 보려고 P씨의 계정을 팔로하게 됩니다.

 

"아이들이 다니는 초중학교의 학부모회를 비롯한 각종 봉사는 작년부로 물러났지만, 때마침 친정과 시가에 질병과 빚 보증과 철이 덜 든 남동생의 사업 실패 등 진부하기까지 한 문제들로 늘 신경이 곤두선 상태에서, 책을 읽는다든지 사람들의 반응을 눈여겨본다든지 하는 일도 일종의 사치였다. 육체적 실무와 감정 노동을 제외하더라도, 누구도 증오하지 않으며 어디에도 환멸을 느끼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삶을 꾸리는 일이란, 생각보다 높은 열량을 필요로 했다." (p.24~p.25) 

 

사실 P씨는 논란이 불거지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사적 비밀이나 개인 육성이 드러나는 어떠한 글도 자신의 SNS 계정에 올린 적이 없었습니다. 기껏해야 '자기 건지 누구 건지 모를 단상 한 토막을 올리는가 하면 저자가 명시된 시나 소설의 일부를 가끔 인용하는 걸로 활동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P씨의 저서는 출판사 계정에서 알아서 홍보했고, P씨는 자신의 신간이 나왔다는 말조차 하지 않았던 것이지요. 논란이 된 P씨의 신작은 사회파 스릴러로 분류할 수 있는 것으로서 네티즌의 윤리적 비난이 거세지자 작가인 P씨와 출판사는 한동안 무대응으로 대응하다가 뒤늦게 진정성을 담은 해명을 내놓지만 논란이 잦아들기는커녕 오히려 비웃음과 맹비난이 거세게 일었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시간이 지남에 따라 소설가 P씨에 대한 네티즌의 관심은 사그라듭니다.

 

"그리 오래지 않은 SNS 경험에 따르면 그곳의 말들은 전기포트 속 물방울이었다. 포르르 끓다가 부서지는 거품이 수면에 다시 합류했다. 일부는 증발하여 공기 중을 떠돌았다. 그대로 두면 물은 식었다. 때를 보아 스위치를 넣으면 다시 끓어 방울진 거품을 피워올렸다. 그 과정을 무수히 반복하면 거품의 토대가 되는 수면의 높이만큼은 어느새 눈에 띄게 낮아진다는 사실이, 예정된 부서짐에도 불구하고 말을 그치거나 가두지 않는 이유일 터였다‥‥‥" (p.24)

 

그러나 논란의 당사자인 P씨에 대한 관심이 스러지는 것으로 모든 게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논란이 된 자신의 작품으로 인해 P씨는 자신의 글을 쓰는 것조차 네티즌을 의식하게 되고,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지게 된 P씨는 서점 매대에서 그의 책이 내려짐은 물론 그의 계정 역시 삭제됩니다. 그럼에도 그가 사라진 것을 알아차리거나 그걸 두고 비아냥거리는 사람들도 많지 않았습니다.

 

"그들 중 누구도 출판사 계정에 문의를 넣지 않았고, 출판사가 P씨의 근황을 꿸 만큼 그에게 공을 들이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으나, 어쩐지 P씨는 소설가로서의 삶을 종료하고 자신의 일상이나 취미에 조용히 스며들었으리라는 확신이, 드는 것이었다. 그는 어떻게 해봐도 부족한 말들의 숲을 어설피 배회하는 자가 될 것이며, 어디서도 그의 발자국을 다시 발견하지는 못하리라는, 확신이." (p.37~p.38)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어쩌면 인터넷에 올라온 누군가의 일방적인 이야기에 열을 올리며 재능 있는 누군가를 한없이 비난함으로써 사회로부터 그를 영원히 격리시키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신의 에너지만 소비하면서 별 소득도 없는 그 짓을, 어쩌면 사회 전체로 볼 때 큰 손실이 될지도 모르는 그 짓을, 아무런 죄책감도 없이, 법적인 책임도 지지 않으면서 습관적으로 반복하고 있지는 않는지요. 사람 세 명이 입을 맞추면 없던 호랑이도 만들 수 있고, 성실한 사회 구성원 한 명쯤이야 가볍게 매장시킬 수 있지요. 우리는 그런 시대를 살고 있는 것입니다. 더러 두려운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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