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의 감옥에서 발견한 것
위화 지음, 김태성 옮김 / 푸른숲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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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을 통해 작가를 알아간다는 건 오프라인에서의 직접적인 만남과 온라인상의 간접적인 만남의 중간쯤에 해당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가 생각할 때는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한 작가가 쓴 작품이 여러 권이라면 먼저 어떤 작품을 읽느냐에 따라 그 작가와의 인연이 좀 더 길어질 수도 있고, 아주 짧게 막을 내릴 수도 있는 것이지요. 오프라인에서의 만남도 그러하듯 첫인상이 안 좋았던 사람은 그와의 인연을 계속해서 이어가기가 여간 부담스럽지 않은 것처럼 말이지요.

 

중국 작가 위화를 처음 알게 된 건 그의 작품 <인생>을 통해서였습니다. 소설 속 주인공이었던 푸구이의 기구한 삶을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었지요. 계속되는 가난과 불행 속에서도 삶의 의지를 꺾지 않는 푸구이의 모습은 독자들에게 진한 감동을 안겨주었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그의 저서 <허삼관 매혈기>와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를 읽음으로써 작가와의 인연을 길게 이어갔으니 말입니다. 그 외에도 국내에 번역된 그의 작품은 더 있는 걸로 알지만 차츰 읽기로 하고 미뤄두었는데 그의 신작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서는 나도 모르게 구매 버튼을 누르고 말았습니다.

 

위화의 신작 <글쓰기의 감옥에서 발견한 것>은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했던 특강이나 좌담을 모은 책입니다. 그런 까닭에 겹치는 부분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책을 읽어보면 수십 년에 달하는 오랜 시간 동안 위화라는 소설가가 어떻게 탄생하고 성장해 왔는지 잘 알게 됩니다.

 

1장 '읽고 쓰기', 2장'사람으로 살기'의 총 2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그에 대한 모든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많은 관객을 앞에 두고 했던 강연이거나 같은 업종의 사람들과 나눈 좌담이었기에 감춰야 했던 비밀 한두 가지쯤은 있었겠지만 말입니다. 문화대혁명 시기에 청소년기를 보냈던 그는 성인이 될 때까지 책다운 책 한 권 읽어보지 않았다고 합니다. 루쉰의 작품 속에서 성장했으면서도 루쉰을 싫어했던 그가 어른이 되어서야 비로소 루쉰을 재발견하게 되고, 마치 어린아이처럼 세계적인 고전을 찾아 읽고, 생각하고, 쓰고 문학을 재해석하는 과정이 이 책에 담겨 있습니다.

 

"저는 책이 없던 문화대혁명 시대에 성장했고, 제가 진정으로 진지하게 문학작품을 읽기 시작했을 때는 이미 소설을 쓰고 있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글을 썼던 셈입니다." (p.38)

 

그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던 작가들도 여럿 등장합니다. 톨스토이, 가와바타 야스나리, 카프카, 헤밍웨이 등. 물론 자신이 쓴 작품에 대해서도 자세한 설명이 뒤따릅니다. 작품이 처음 실렸던 잡지사와 수고를 아끼지 않았던 편집자들과 얽힌 일화, 그리고 소설가로서 자신이 걸어온 길과 삶의 철학에 대해 들려줍니다. 치과의사였던 그가 소설가가 되고자 분투했을 지난한 세월을 생각해보면 그에게도 무리 모두에게도 인생에서 거저 얻어지는 건 없나 봅니다.

 

"가장 훌륭한 독서는 마음을 비운 독서, 꾸밈없는 마음으로 아무것도 염두에 두지 않는 독서입니다. 아무런 선입견도 갖지 않는 그런 독서는 사람들의 인식을 더욱 넓혀주지요. 선입견을 가지고 하는 독서는 음식을 골라 먹는 것과 같아서 사람들의 인식을 더욱 좁게 만들 수 있습니다." (p.159)

 

그가 소설의 지평을 넓혀갔던 과정은 아주 단순했던 듯합니다. 분량으로 보자면 단편소설에서 중편소설로 그리고 중편소설에서 장편소설로 옮겨갔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능력 범위에서 그동안 써보고 싶었던 여러 주제 중 하나를 고르고, 앞에 놓인 많은 장애물을 하나하나 넘어왔던 것입니다. 그것은 소설가로서 성장하는 일반적인 발전 단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눈앞의 장애물을 두려워하거나 회피하지도 않았던 까닭에 지금의 위화가 존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자신의 능력을 객관적으로 파악한다는 건 어떤 분야에서건 성취를 이룬 사람들의 기본 덕목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계는 편견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게다가 이 모든 편견이 진리의 옷을 입고 있지요. 진리라는 것은 수시로 우리가 갈아입을 수 있는 겉옷에 불과하다는 말입니다. 사람들의 옷장에는 각양각색의 그럴듯한 옷이 가득 걸려 있습니다. 그러니 편견에 반기를 들어도 결코 이기지 못합니다. 우리가 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이미 옷을 갈아입어버리기 때문이지요. 시도해볼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기는 합니다. 페터 한트케가 배운 보스니아어 욕으로 그들에게 반격을 가하는 것이지요. 너희 집, CNN에 나왔더라! 이 말은 대단히 수준 높은 욕입니다. 중국 속담으로 표현하자면 욕인데도 더러운 단어가 없는 셈이거든요." (p.374)

 

내일은 일 년 24절기 중 스물두 번째 절기인 동지.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이기도 하지요. 반대로 말하면 모레부터는 조금씩 조금씩 낮이 길어진다는 뜻이겠지요. 문화대혁명의 시대를 잘 견뎌온 위화 작가도 그 어둠의 시기를 딛고 조금씩 조금씩 앞으로 나아왔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가 사는 인생 역시 자신을 의지하여 조금씩 조금씩 나아가는 과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꾀를 부리거나 엄살을 떨지 않고 두려움 없이 나아갈 때 각자가 닿는 종착지에는 선물처럼 뭔가 주어지는 게 있을 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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