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대해 말할 수 있다는 건 상대적으로 자신의 죽음만큼은 아직 저만치 멀기만 하다는 강한 믿음이 있기 때문일 터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그러나 막상 자신의 죽음을 염두에 두고 말할라치면 사정은 180도 달라지게 마련이다. 두려운 것이다. 아무리 담담한 척해본들 결코 무덤덤해질 리 없다. 그렇게 된 데에는 삶과 죽음이 철저히 분리된 데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죽음과 삶이 한 공간 안에서 이루어지던 과거와는 달리 현대인의 죽음은 병원이라는 한정된 공간 내에서 삶과 분리된 채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늘 있는 일이고 자신도 언젠가는 겪을 일이지만 현대인에게 죽음은 익숙하지도, 그렇다고 가깝게 느껴지지도 않는다.
"또 의식이 없는 환자를 대신하여 가족들이 '사전 동의서'라는 형식으로 내리는 의사결정은 어떤 결론이건 가족이나 의료진에게 후회와 죄의식을 남겼다. 연명치료를 아예 시작하지 않는 것이나 이미 시작된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차이가 없어 보이는데도, 연명치료를 아예 시작하지 않는 것에 비해 중간에 멈추는 걸 용납하기가 훨씬 어려워지는 등 사전의사결정에 대한 스스로의 판단 기준도 모호했다." (p.6)
의학의 발달과 의학에 대한 과도한 믿음으로 인해 현대인들은 삶과 죽음의 경계와 의미를 까맣게 잊어버리곤 한다. 그러므로 나이를 먹고 노화가 진행될수록 자신에게 가까워지는 죽음의 실체는 과거 우리의 선조들에 비해 훨씬 큰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게다가 차가운 의료장비와 낯선 의료진들만 가득한 중환자실에서 죽음을 맞는다는 건...
19년 동안 신경외과 중환자실에서 간호사로 근무했던 경험을 책으로 엮은 <도시에서 죽는다는 것>의 저자 김형숙은 우리에게 죽음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첫 직장인 대학병원 중환자실이 '의외로 나에게 잘 맞는 일'이라고 생각했었다는 저자는 세월이 흐를수록 고통스러웠고, 결국 병원을 뛰쳐나올 수밖에 없었다고 고백한다. '뇌·척추 질환자들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그들의 팔다리에 통증을 가하는 일'이 괴로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자가 어려서부터 죽음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키워왔던 건 아니다. 1장 자연스러웠던 죽음을 추억하다'에서 저자는 산골 출신인 저자가 무덤가에서 놀며 위로받고, 누군가의 죽음을 애도하며 다시 살아갈 힘을 얻었던 자신의 어릴 적 추억을 회상한다. 2장 '중환자가 된다는 것, 나에 대한 결정에서 배제되는 것'에서 저자는 중환자실에 들어간다는 것을 '고립·소외·침묵·분노·공포·배제'로 요약한다. 그리고 3장 '중환자실에서 죽는다는 것, 이별하기 어렵다는 것'에서 환자가 과도한 연명치료와 사랑하는 가족으로부터 격리된 생활로 인해 스스로의 죽음에서 '배제'되고 아름답게 죽을 권리를 박탈당하는 현실을 자신의 경험을 통해 드러낸다. 어쩌면 우리는 끊을 수 없는 미련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을 더 큰 고통 속으로 밀어 넣고 있는 건 아닌지...
저자는 이 책의 4장 '죽음 이후, 당신이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았을 때 생길 수 있는 일'을 꼼꼼히 되짚으며 5장 '다른 가능성들'을 제시한다. 그것은 결국 '사전 의료 지시서' 제도로 이어진다. 병원에서의 죽음을 피할 수 없다면 서면으로나마 연명 치료 여부를 미리 결정하고, 심폐소생술 여부, 시신 처리 방법 등에 관한 구체적인 의사를 남겨 우리가 응급상황에 처했을 때 의료진과 가족에게 전달하자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사전 의료 지시서' 제도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국내에서는 아직 이 제도의 법적 효력이 없다. 사전 의료 지시서를 작성했다고 하더라도 현실에서는 보호자의 의사, 의료진의 의사가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얘기다.
"연명치료나 소생술을 시행하지 않는 것은 환자를 포기하고 죽음을 기정사실화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환자의 치료를 중단하거나 포기하지 않으면서 가능한 한 환자의 고통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찾았고, 마지막에는 환자 내부의 힘, 혹은 하늘의 뜻에 맡기며 기다렸다. 그때까지 유지하던 치료를 지속할지 중단할지 결단하지 않고도 남은 날들이 환자나 가족들에게 조금이라도 덜 고통스럽고 의미 있는 시간이 될 수 있도록 노력했다. 그 결과 환자가 스스로 회복할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p.245)
리처드 도킨스는 자신의 책 <이기적 유전자>에서 인간은 이기적 유전자의 자기 보존을 위해 맹목적으로 프로그램된 로봇기계이며, 유전적 본성에 따라 먹고, 살고, 사랑하면서 자신의 유전자를 후대에 전달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존재라고 썼다. 그러나 인간은 그렇게 하찮은 존재로 이 세상에 왔다 가는 건 결코 아니라고 믿는다. 그와 같은 믿음을 지켜주는 것,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유지하는 것은 순전히 한 인간의 마지막 모습이 아름다운가 그렇지 않은가에 달려 있지 않을까. '당신은 오늘 죽음을 상상해야 한다'는 저자의 말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만이 당신이 마지막까지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