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자 리아민의 다른 삶 - 제8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전혜정 지음 / 다산책방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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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은 어떨지 모르지만 처음 접하는 작가의 작품을 읽고 있노라면 장점보다는 단점에 더 주목하게 된다. 이상한 일이다. 익숙한 작가의 작품이었다면 눈에 보이지도 않았을 문제점들이 이것저것 불거져 나오는 것이다. 마치 일부러 작심하고 꼬투리를 잡으려는 것처럼 말이다. 그럴라치면 일석점호를 맡은 일직사관이 작심한 듯 흰 장갑을 끼고 등장했던 과거의 기억이 떠오른다. 그동안 잘 모르고 지냈던 내 성격이 무척이나 까탈스럽고 부정적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전혜정 작가의 작품은 처음이었다. '제8회 혼불문학상 수상작'이라는 문구가 사람들의 시선을 은근히 잡아끌기는 했지만 제목이 던지는 의미의 모호성이 책을 읽지 않고는 못 배길 정도의 강한 호기심을 자극했던 게 사실이다. 제목인 즉 <독재자 리아민의 다른 삶>. 제목만 보아서는 도무지 어떤 내용일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이야기는 소설가 박상호가 독재자 리아민으로부터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은 출생의 비밀을 듣는 것으로 시작된다. 첫 작품이었던 <그곳에 당신이 있었다>가 대박을 친 후 첫 작품에 버금갈 만한 뛰어난 작품을 내놓지 못하던 박상호가 어느 날 갑자기 영문도 모른 채 대통령 관저로 불려 갔던 것이다. 박상호에게 던져진 제안은 리아민과의 인터뷰를 통해 제공된 리아민의 지난 삶을 재구성하여 전기를 써달라는 것이었다. 박상호는 권력자 리아민의 전기를 집필함으로써 소설가로서의 명성을 회복하고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겠다는 속셈으로 그 제안을 수락한다.

 

"대통령 리아민은 속물이었고, 부도덕했으며, 독재의 견고한 발판을 만들기 위해 나의 알량한 재능을 활용하려던 지극히 계산적인 인간이었다. 하지만 그런 리아민을 재기의 발판으로 사용하려던 나의 계산된 글쓰기는 어떤 변명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을 터였다. 물론 내 마음 깊은 곳에서는 여전히 나의 치부를 결코 인정하고 있지 않았지만." (p.266)

 

이후 박상호는 리아민의 호출이 있을 때마다 대통령 관저를 수시로 드나들게 된다. 그 과정에서 박상호는 리아민으로부터 사실인지 거짓인지조차 구별할 수 없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들을 듣게 되고 박상호는 자신이 과연 리아민의 전기를 다 쓸 수 있을지 혼란스러워한다. 그러는 과정에서 박상호는 대통령의 기자회견 자리에 있던 정치부 기자 정율리를 만나 불같은 사랑에 빠지게 된다.

 

"시간은 저 홀로 잘도 흘러가고 있었다. 벌써 저녁 아홉 시가 막 지났다. 그동안 정율리 기자와 출판사 사장과 책임편집자 오가진 그리고 이기성 작가와 그 외 수십 명의 기자들이 내 휴대폰에 부재중 전화와 문자메시지를 남겼다. 나는 사장과의 전화를 끝으로 어느 누구와도 연락을 주고받지 않고 있었다." (p.158)

 

리아민이 들려준 그의 이야기는 참으로 황당무계한 것이었다. 행실이 난잡했던 리아민의 어머니가 열다섯의 어린 나이에 그를 낳았다는 것과 무책임한 어머니를 대신해 외할머니의 손에서 자랐다는 것과 남들보다 영특했던 유년 시절의 에피소드나 중 고등학교 시절 노총각 문학 선생에 의해 문학 소년으로 성장했다거나 대학 시절에 만난 첫사랑 유영과의 로맨스와 군 복무 시절 자신의 정치적 야심을 위해 첫사랑을 배신하고 사단장의 외동딸과 결혼했다는 이야기 등 리아민의 이야기는 어디선가 한 번쯤 들어보았을 듯싶은 뻔한 이야기이거나 황당하기 그지없는 이야기뿐이었다. 게다가 박상호의 눈에 비친 영부인 최세희의 행동 또한 정상이 아니었다. 박상호를 유혹하는 듯한 행동과 어느 날 그녀가 성장했던 시골 마을로 박상호를 꾀어내어 자신의 출생 비밀과 리아민과 결혼에 이르게 된 과정을 자세히 알려주는 등 뜬금없는 일이 벌어진다. 얼굴은 예뻤지만 다섯 살 수준의 지능으로 성장했던 최세희의 어머니가 열여섯 살의 나이에 성폭행을 당한 후 자신을 낳았고, 이후 그녀의 어머니가 아무도 모르게 집을 나가는 바람에 외할머니와 함께 성장했으며 자신도 마을 사람들 여러 명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는 것이었다. 리아민도 최세희도 출생 단계부터 불행했고 두 사람 모두 외할머니에 의해 키워졌다는 것인데 우연도 이런 우연이 또 있을까.

 

"세상의 모든 중독자는 여간해선 쓰레기 같은 과거에서 헤어나오기는커녕 더욱 진창으로 빠져들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런데 영부인은 보란 듯이 재기에 성공했다. 비록 그녀가 자신의 이야기를 해주긴 했지만, 나는 그 사연에 과연 얼마만큼의 신빙성이 있는지 확신을 가질 수 없었다. 결국 이야기일 뿐이었다. 그녀의 이야기가 어느 정도 사실에 기반한다고 하더라도 세월의 흐름에 따라 기억의 왜곡과 조작을 피할 수 없을 터였다." (p220~p.221)

 

리아민은 헌법을 개정해가면서 자신의 장기 집권 계획을 차례차례 진행시켜가던 중 드론에 의해 피습을 당한다. 다행히 리아민은 목숨은 건졌지만 한동안 병원에 입원했던 까닭에 전기를 완성할 만큼 충분한 정보를 확보하지 못했던 박상호는 인터뷰 대신 글로 써서 자신에게 제공해줄 것을 요구했다. 리아민이 보낸 글은 가관이 아니었다. 결국 박상호는 자신의 생각했던 대로 글을 써 내려간다. 말하자면 리아민의 전기가 아닌 리아민을 소재로 한 소설을 쓰게 된 것이다. 이를 읽어본 정율리는 그에게 다시 쓰는 게 좋겠다고 충고하지만 박상호는 이를 거절하고 두 사람은 끝내 결별하고 만다.

 

"그리고 대중들이 진실만을 원할 것 같아? 절대 아니야. 아무도 그런 건 원치 않아. 우리가 원하는 건 이 나라를 통치하는 지도자의 틀에 걸맞은 하나의 이미지일 뿐이야." (p.250)

 

박상호가 쓴 전기는 결국 리아민에 의해 최종적으로 거절된다. 그리고 한 달 열흘이라는 촉박한 기한 내에 다시 쓸 것을 요구한다. 박상호가 이를 거절하면서 사건의 전말이 서서히 드러나게 된다. 리아민의 전기 작가로 자신이 선택된 배경이 밝혀지고 박상호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리아민과 그의 수하들에 의해 마련된 애초 계획에 의해 일이 진행된다.

 

"가당치 않은 뜻을 존중해주었더니 오히려 두려움을 느끼는 미친 세상이 바로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었다. 어찌 보면 수석비서관의 생각이 맞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진한 예술가 박상호로 사는 것이 이 기묘한 세상을 보다 잘 살아갈 수 있는 방편이 될 수도 있었다." (p.319)

 

소설에 등장하는 리아민과 최세희의 삶이 현실에서 있을 것 같지 않은 황당한 이야기들로 구성되었다는 걸 작가 스스로도 모르지는 않았을 터, 그렇다면 작가는 왜 그런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들로 소설의 상당 부분을 채웠을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단순히 읽는 재미를 위해 그렇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권력과 부를 쫓는 미치광이들 틈바구니에서 우리의 삶을 영위하고 있다는 걸 때때로 잊고 있는지도 모른다. 작가의 생각도 거기에 있지 않았을까. 과장되고 허무맹랑해 보이는 인물을 설정함으로써 우리가 사는 세상을 다시 한번 되돌아 볼 것을 주문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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