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해리 세트 - 전2권
공지영 지음 / 해냄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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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코스트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을 기억하는지요. 살면서 단 한 번도 법을 어긴 적이 없고 언제 어디서나 최선을 다했던 남자, 그는 8개월간 지속된 지루한 재판 내내 칸트의 도덕 철학을 들먹이며 자신은 '명령받은 대로, 의무에 따라 행동했을 뿐, 비열한 동기나 악행이라는 의식이 없었다'며 무죄를 주장했습니다. 그를 감정했던 정신과 의사들조차 그의 정신상태가 정상이라고 말했었지요. 그러나 한나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이란 개념을 통해 아돌프 아이히만은 유죄라고 말합니다. 아이히만은 일상생활에서 아주 근면한 인간이고 무능하지도 어리석지도 않았지만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결코 깨닫지 못했으며, 그로 하여금 그 시대의 엄청난 범죄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되게 한 것은 순전히 '생각의 무능성(thoughtlessness)' 때문이었다'고 한나 아렌트는 쓰고 있습니다.

 

한나 아렌트의 이러한 주장은 어쩌면 전쟁과 같은 극단적 위험에서만 한시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됩니다. 전쟁도 없고, 테러도 없는 평화의 시대에 그렇다면 그 많던 악은 다 어디로 숨어든 것일까요. 평화는 모든 사람의 인간성마저 순하게 정화한다고는 말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절대 그럴 리가 없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어쩌면 선한 얼굴로 위장한 수많은 아이히만의 망령을 우리 곁에 무작정 방치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단지 바쁘다는 이유로 말입니다.

 

공지영 작가의 신작 소설 <해리>는 우리 안에 존재하는 아돌프 아이히만의 망령을 다시 떠올리게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소설을 읽는 우리에게 불편한 진실로 다가올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지요. 소설의 배경이 '무진'인 것도 그런 맥락이 아닐까 싶습니다. 선을 가장한 악인 앞에서 우리는 마치 안갯속을 헤매는 것처럼 그의 진심을 전혀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지요. <도가니>의 배경이 '무진'이었던 것처럼 <해리>를 쓰면서도 작가는 도무지 알 수 없는 게 인간의 마음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소설은 주인공 '한이나'가 암 수술을 앞둔 엄마의 병간호를 하기 위해 그녀의 고향인 무진을 방문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한 인터넷 사이트 뉴스텐의 기자였던 이나는 자신의 엄마가 입원한 무진 카톨릭대학병원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는 최별라를 우연히 만나 사연을 듣게 됩니다. 사연인 즉 백진우 신부로 인해 그녀의 딸이 목숨을 잃었다는 것이었습니다. 한이나가 고등학교 1학년이었을 때 가슴에 손을 넣었던 백진우 신부에 대한 끔찍한 기억을 떠올리며 이나는 이 사건을 끝까지 캐보리라 작정합니다.

 

이야기는 이제 입으로는 온갖 사회정의를 부르짖으면서도 어린 소녀와 젊은 여성들에게 성폭력을 일삼고, 장애인 봉사 단체를 축재의 수단으로 삼는 백진우 신부와 그의 곁을 지키는 '이해리'에게로 옮겨갑니다. 고등학교 시절 유난히 이나를 따르던 해리는 불우한 성장 과정을 내세워 동정심을 불러일으키고, 자신의 외모에 강박적으로 집착하던 학생이었습니다. 그러나 성인이 된 해리는장애인 센터장이라는 직함에 걸맞지 않게 짧은 미니스커트에 목이 깊게 파인 티셔츠를 입고 무진에서는 방귀 꽤나 뀐다는 사람들을 두루 만나고 다니는 지역 유지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 수단이 되었던 것이 다름 아닌 봉침이었습니다. 은밀한 곳에 봉침을 놓아줌으로써 지역의 권력자들을 자신의 손아귀에 넣었던 것이지요.

 

한편 백진우와 이해리는 두 사람은 모두 자신의 SNS를 적극적으로 활용함으로써 선하고 가련한 이미지를 만들어갑니다. '어금니 아빠' 이영학이 그랬던 것처럼 다수의 많은 사람들이 접속하는 SNS 공간은 자신의 가공된 이미지를 팔아 언제든 돈을 모을 수 있는 더없이 좋은 공간이었습니다.

 

"그들은 독약을 먹고 있어요. 그게 독약인 줄도 모르고, 안 죽네, 맛있네, 이러고 있다고요. 그들이 쥐약이 든 빵을 계속 먹고 있는데, 왜 화가 나요? 안타깝지요, 그 사람들이요." (2권, P.169)

 

자유시장경제의 논리에 따르자면 백진우와 이해리는 최고의 장사꾼이자 가장 영리한 사업가가 아닐 수 없습니다.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성과를 내니까 말이죠. 그러나 소설을 읽으면 읽을수록 분노가 치미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어쩌면 선한 얼굴을 한 악인을 주변에서 자주 목격을 하면서도 단지 내 일이 아니라는 이유로, 바쁘다는 이유로 못 본 체 지나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그렇게 악인의 활동 영역을 무한정 넓혀주었던 것은 아닌지요.

 

"부탁이 있어."

남우가 돌아서려다 말고 이나를 바라보았다.

"약속해줘. 최소한 명백하게 악을 목격하게 된다면 모른 척하지 말아줘."

이나와 남우의 눈이 아주 길게 마주쳤다. 먼저 시선을 돌린 것은 남우였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남우가 알 거라고 생각했다. (1권 p.277~p.278)

 

온종일 비가 내렸습니다. 안개도 없이 희끄무레한 하늘은 하늘과 땅의 경계를 흐릿하게 하고, 공지영 작가의 <해리>를 읽었던 나는 선과 악의 경계마저 희미해지는 듯했습니다. 소설을 읽는 내내 '악의 평범성'을 주장했던 한나 아렌트를 떠올렸습니다. 주인공 '한이나'는 어쩌면 작가가 역사 속에서 작심하고 끄집어낸 한나 아렌트의 분신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단지 바쁘다는 이유로,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는 변명으로 우리는 시나브로 각자의 마음속에 아돌프 아이히만의 망령을 키우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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