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희 씨의 하루 일과는 베란다의 화분에 물을 주는 것으로 시작된다고 했다. 잠에서 깨자마자 쪼르르 베란다로 달려가서는 그녀만의 전용 물뿌리개인 작은 플라스틱 용기에 물을 받아 줄지어 놓인 화분에 능숙한 손길로 물을 준다는 것이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그 일만큼은 거르는 법이 없다고 했다. 화분마다 듬뿍듬뿍 충분히 물을 준 후 용무를 마친 물뿌리개를 처음 있던 장소에 되돌려놓음으로써 하루를 시작하는 그녀의 첫 임무가 완성된다는 것이다.

 

아침을 먹고, 세수를 하고, 머리띠와 원피스 그리고 앙증맞은 샌들로 한껏 멋을 낸 경희 씨는 서둘러 놀이터로 나온다. 햇빛이 강해지기 전에 그네를 한 번이라도 더 타려면 서둘러야 한다. 오전의 놀이터는 높은 아파트 건물에 가려 그늘이 진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요즘과 같은 여름철에는 그네를 몇 번 타지도 못했는데 해는 어느새 머리 꼭대기에서 강한 햇살을 쏟아내곤 한다.

 

나는 매일 아침 그네에 앉아 있는 경희 씨와 인사를 한다. 그녀는 아파트 같은 동, 같은 층에 사는 이웃이다. 경희 씨는 올해 네 살이 되었다. 꼬마 숙녀인 경희 씨의 부친은 초등학교 선생님이다. 그래서인지 예의가 바르다. 이따금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칠 때면 "안녕하세요?" 하면서 배꼽인사를 한다. 그네를 좋아하는 경희 씨는 계절에 상관없이 아침마다 그네를 탄다. 그네를 타는 경희 씨의 표정은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해 보인다. 보고 있는 나도 행복해진다. 말하자면 나는 경희 씨로 인해 행복한 하루를 보장받는 셈이다.

 

낮 동안 경희 씨는 무엇을 하며 보내는지 나로서는 알 길이 없다. 저녁을 먹고 산책을 하다 보면 아주 가끔 그네에 앉아 있는 경희 씨를 볼 때가 있다. 그때 경희 씨의 표정은 아침과는 사뭇 다르다. 가로등 밑에서 제법 진지한 표정으로 그네를 탄다. 뭔가 골똘히 생각에 잠긴 듯 보일 때도 있다. 누구에게나 경희 씨처럼 세상이 온통 행복해 보이는 철부지 네 살이었던 때가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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