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서 만나면 그렇게 호인일 수가 없는 사람이 가족들에게는 유독 독재자처럼 군림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말하자면 주변 지인들에게는 예의도 바르고 인심도 후하며, 세심한 배려와 통 큰 씀씀이로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이라는 평을 듣지만 안에서는 마치 폭군처럼 돌변하는 그런 사람 말이다. 주로 사회에서 겪은 울분과 열등감을 자신보다 약한 존재인 아내와 아이들에게 화풀이하는 식이다. 이러한 화풀이는 가정 폭력으로 발전하기도 하고 때로는 비극적 결말로 끝을 맺는 경우도 있다. 비극도 그런 비극이 없다. 그러나 가정 내 폭력이나 데이트 폭력과 같은 지속적이면서도 일방적인 폭력에 대해 언론이든 경찰이든 그 결과에만 주목할 뿐 근본적인 원인과 대책은 크게 관심이 없는 듯하다.

 

이런 행동에 대한 심리학적 분석은 주로 자존감과 연결 지어 말하곤 한다. 물론 맞는 말이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 밖에서 있었던 수모나 부당한 대우로 인한 모멸감 또는 울분을 그저 꾹꾹 눌러 참기만 하다가 집에 들어와서는 애꿎은 사람들에게 화풀이를 하는 식이니 말이다. 그런 찌질하고 못난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명심보감>의 준례 편(遵禮篇)에 보면 가족·친척 간이나 직장에서도 예의가 중요하며 심지어 전쟁을 할 때도 예의가 있음을 강조하였던 바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그런 무례한 짓을 저지른다는 게 일반인의 시선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가정 폭력이나 데이트 폭력을 일삼는 사람들은 예의가 없거나 정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결과만 놓고 보면 그렇게 판단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사람들 개개인의 인내심에 대해 생각하곤 한다. 감정을 억제하는 인내심이라는 게 물을 가둬 둔 저수지와 같아서 한 번 터지면 걷잡을 수가 없는 것이다. 어찌 보면 그들은 예의가 없는 게 아니라 인내심이 없을 뿐이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순간순간 화도 나고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을 정도의 치욕을 겪기도 하지만 그때마다 벌컥벌컥 화를 낼 수 없는 것처럼 아무리 허물없는 사이인 가족이나 연인 간에도 절제와 인내가 필요한 법이다. 그리고 한 번 뚫린 인내의 벽은 다음에도 역시 쉽게 뚫리고 만다. 데이트 폭력 방지를 위한 종합대책의 일환으로 '삼진 아웃제'를 도입한다는 대검찰청의 발표에 피식 웃음이 터졌다. 폭력은 한 번 이 어렵지 두 번 세 번은 아주 쉽기 때문이다. 한 번 뚫린 인내의 벽을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을 절제하기 위한 인내력 향상 프로그램이 필요할 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피해자와의 격리가 우선이겠지만 말이다. 감정을 절제하지 못하는 자는 이미 인간으로서의 자격을 상실한 것이나 다름없다. 가벼운 폭력도 결코 우습게 볼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삼진 아웃'이 아니라 '일벌백계'가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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