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자주 걷던 길을 우연히 다시 걸어볼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묘한 기분에 휩싸이곤 한다. 반가운 것도 같고, 조금 서글픈 느낌인 것도 같고, 때로는 낯선 느낌이 들기도 한다. 어제는 오후에 있었던 약속 때문에 몇 년 전에 살았던 마을을 우연히 들르게 되었다. 봄바람이 강하게 불었고 오후의 햇살은 따가웠다. 만나기로 한 시간을 5분여 남겨두고 약속 장소에 도착했는데 전화가 걸려왔다. 급한 용무가 있어서 그러니 미안하지만 약속 시간을 30분만 늦추어 달라는 전화였다. 그러마, 대답하고 나니 마땅히 할 일이 없었다. 차를 몰아 등산로 입구의 한적한 골목에 세웠다. 그리고 가파른 산길을 무작정 걸어 올라갔다.

 

아침마다 그 길을 걷던 추억이 새록새록 되살아났다. 능선에 이르기 전에 위치한 커다란 묘와 능선을 따라 중간중간에 놓인 나무 벤치, 산 위에서 내려다 보이는 마을 풍경. 그런 모든 게 마치 어제 걸었던 길처럼 다정했다. 아까시나무와 상수리나무의 새순이 돋는 초록의 그 길은 그야말로 그리움이었다. 그리움을 밟으며 걷는 그 길에서 다정한 얘기를 나누며 걷는 두 명의 여성분과 힘겹게 걷고 있는 할아버지 한 분을 만났다. '나는 그때 무슨 생각을 하며 이 길을 걸었을까?' 몹시 궁금하기는 했지만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몇 년 전의 나를 다시 만날 수도 없지 않은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생각이 궁금하면 만나서 물어보면 그만이지만 과거의 나는 현재의 나와 엄연히 다른 사람이건만 넘을 수 없는 시간의 장벽으로 인해 만나고 싶어도 다시 만날 재간이 없다.

 

몇 걸음 걷지도 않은 듯한데 약속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바람이 불고 다정한 봄햇살이 어깨를 토닥였다. 나는 그때 무슨 생각을 하며 그 길을 걷고 또 걸었던 것일까. 만나기로 했던 지인과 차를 마시면서도 머릿속에서는 그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