춥고 더운 우리 집
공선옥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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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것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나는, 이름을 알고 있는 작가들의 새 책이 반갑다. 좋아하는 다른 작가의 추천사를

보면서 더 빨리 마주하고 싶은 조급함에 서둘러 책을 읽고 내려놓았다.

요즘 미디어 속에 보이는 집은 예쁘고 좋고 있어보이고 따뜻하고, 심지어 살고 있는 사람들도 다 행복해보인다.

집을 찾아주는 프로그램이 많고, 시골 촌집을 젊은 사람들의 기호에 맞게 고쳐 소개하는 유튜브를 보면서 나도 그런 집 하나 갖고 싶다는 바람이 간절했다.

그런 집에서라면 '그들은 아름다운 집에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란 글귀가 썩 어울리지 않을까 싶었다.

이 책은 제목에서부터 애잔하다. 편안하고 안락하며 따스함까지 겸비한 집이 아니라, 춥고 덥다니.

p.31

집도 사람과 같다.

사람에게 인격이 있으며 집도 그와 같은 것이 있다.

집도 생각할 줄 안다.

집도 표정을 가지고 있다.

때는 집이 말도 한다.

집은 웃는다. 집은 울기도 한다.

나는 그 모든 것을 느낌으로 알았다.

내가 기억하는 우리 집에서 부모님은 아직도 살고 계신다.

섬에서 나고 자란 내게 집은 엄마의 오랜 바람이었다. 남의 집이 아닌 아빠의 이름으로 된 진짜 우리 집.

아마 내가 큰아이 나이정도가 되지 않았을까 싶은데, 아빠가 배를 타고 나가 생선을 잡아오면 엄마가 팔고, 그 돈으로

마련한 집이 우리의 첫 집이었다.

커다란 내 방이 생겨 혼자 자는 밤이 마냥 좋았던 나는, 내리는 비에 한두 방울씩 떨어지던 천장의 물기를 기억한다.

엄마와 나는 여기저기 새는 비에 조금은 울었던 것도 같고, 아빠는 한숨을 쉬었던 것 같은 그 날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났다. 좋으면서도 불안했던 날들에 대한 기억이.

p.47

하여간 나는, 광주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기 위해 고향, 시골을 떠났다.

떠난 뒤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것은 아직 생각지 못하고.

도시로 가는 것이 좋은 것 같기도 하고 좋지 않은 것 같기도 했다.

시골을 벗어난다는 것이 어떤 해방감을 주기도 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뭔가 불안했다.

불안하고도 싫지 않은 묘한 기분, 아, 나도 이제부터 도시 사람이 되는건가, 하는.

책 속에 나오는 도시는, 내게 배를 타고 섬을 떠나 마주하게 되는 육지였다.

여객선을 타고 도시에서 온 손님처럼 섬을 떠나오던 날 이후로 나는 고향에 쉽게 가지 못했다.

도시에서 기숙사가 내 첫 집이었고, 그 뒤로 자취방이 나의 새로운 집이 되었다.

이제는 결혼을 하고 아이들과 함께사는 새로운 진짜 나의집이 생긴 것만 같아서 섬에 가지 않게 되었다.

책을 읽으면서 그립지만 이제는 기억에서 멀어진 나의집이 떠올랐다.

마음이 가라앉았다가 웃음이 났다가 내 공간이 생겼던 첫 날의 설렘이 기억났다.

내 것, 나만의 것, 그 욕심이 생겼던 그날이 좋았다.

사고싶은 것을 사고 허기를 채워도 그때만큼은 아닌 것 같아 아쉬운 순간들이 많지만.

p.214

내가 기억하는 내 가족의 최초 모습은 어느 여름날 아침에

식구들이 평상에 둘러앉아 밥을 먹고 있는 것이었다.

'밥이나 집이나 한가지로'란 소제목을 보며 깊게 공감했다.

익숙해서 그런가보다 했던 날들이 나이가 들면서 종종 그리워진다.

삶에 활기가 넘쳤던 젊은 엄마와 아빠가 그렇고, 아빠가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 잡아온 생선으로 차려낸

소박한 밥상이 그랬다. 내 아이들만큼 해사하게 웃을 수 있었던 어린 나와 내 동생이 그렇고.

책을 읽으면서 섬에 있는 우리 집이 자꾸만 떠올랐다.

이제는 몸의 여기저기가 아파 병원진료때문에 섬에서 육지로 나올 수 밖에 없는 부모님은 1년에 몇 번씩

자식들의 집으로 오신다. 나와 동생은 자연스럽게 섬에 있는 우리 집을 찾는 횟수가 줄게 되고, 특히 나는

몇 년 동안 가보질 못했다. 이제는 익숙해진 도시생활이 며칠간의 우리 집 생활을 불편하게 여기게 되었다.

우리 집에서 내 방이 처음 생겼다는 이유만으로 행복해하던 어린 아이는 이제, 방이 작고 불편하다는 생각을 가진

어른이 되었다. 부모님이 건강때문에 섬 생활을 정리하고 나오시게 되면 사라지게 될지도 모르는 우리 집을

생각하니 갑자기 너무 외로워졌다. 비가 새고, 방이 몇개 되지 않았던, 작고 불편했던 우리 집을 다시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어렸던 내가 통째로 사라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섬의 창고 지붕 위에 올라가 아무렇게나 앉아 바다를 바라보며 아빠가 탄 배를 찾던 시간이, 활어회를 파느라

집에 오지 못한 부모님을 기다리던 어두운 밤이.

어떤 형태로든 집은 여전히 각자에게 남아있다. 춥고 더웠던, 작고 초라했던 우리 집에서 함께 한 시간이

그리워진다. 지긋지긋하고 벗어나고 싶었던 날들이, 지금의 내가 혼자 있는 시간을 견딜 수 있게 해준 것이라

믿는다. 나를 조금 더 단단하게 해주지 않았나 하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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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고 싶다는 농담 - 허지웅 에세이
허지웅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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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지웅 작가의 새로운 책이 출간됐다.

예전에 방송에서 열심히 청소하던 모습이 인상깊었던, 말 잘하고 담백하지만 날카로운 글을 쓰는 허지웅.

그가 갑작스레 암 투병소식을 전하며 기억에서 차츰 잊혀져 갔는데 얼마 전에 방송에서 완쾌소식으로 마주하니

오래 전 연락이 끊긴 친구를 만난 듯한 마음에 반가웠다.

그가 의미심장한 제목의 책 '살고 싶다는 농담'으로 다시금 글을 쓰고 방송을 하니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앞섰다.

우리의 삶은 남들만큼 비범하고, 남들의 삶은 우리만큼 초라한다.

한 줄에 담긴 삶의 메세지는 죽음의 문턱까지 가 본 저자의 진심이자, 사실이다.

나도 엄마로, 아줌마로, 아내로 10년을 넘게 살았고 40대를 바라보니 주변에서 아픈 사람들의 소식이 많이 들린다.

아이 친구의 엄마로 건너건너 알게 된 사람의 갑작스런 투병소식과 남편의 회사 지인들, 양가 어른들 지인 분들의 암 진단 이야기까지.

누군가는 완쾌가 되었다는 반가운 소식도 전해지지만 끝내 안 좋은 소식을 듣게 되는 경우도 많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내가, 우리가족이, 아프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먼저 앞서게 되고 안타깝고 서러운 그들의 삶을 되새겨 보게 된다.

흔히들 건강이 최고라고 말하지만 막상 산다는 게 건강만 앞세우기는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몸이 건강하지 못하면 사랑하는 아이를

내 손으로 돌 볼 수도 없고, 많은 돈을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죽음의 문턱과 싸워야 하는데 말이다.

남들보다 초라해보이는 내 하루, 나보다 훨씬 좋아보이는 남들의 삶도 결국에는 거기서 거기일텐데, 자각하기란 역시 쉽지가 않다.

결론에 사로잡혀 있으면 정말 중요한 것들이 사소해진다.

결론에 매달려 있으면 속과 결이 복잡한 현실을 억지로 단순하게

조작해서 자기 결론에 끼워 맞추게 된다.

세상은 원래 이러저러하다는 거창한 결론에 심취하면 전혀 그와

관계없는 상황들을 마음대로 조각내어 이러저러한 결론에 오려 붙인 뒤,

보아라 세상은 이렇게 이러저러하다는 선언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생각은 정작 소중한 것들을 하찮게 보게 만든다.

이와 같은 생각은 삶을 망친다.

살고 싶다는 농담 p.23

나도 결론에만 사로잡히지 말고 결심을 하는 하루를 보내야겠다 싶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경제활동을 하고 싶어했던 전업맘이었지만 책을 읽을 수 있는 약간의 여유에 대한 고마움은 잊고 지냈다.

아이들이 필요로 할 때 곁에 있어줄 수 있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생각해 하찮게 느끼기도 했고,

스스로를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사람으로 몰아부치기도 했었다.

하지만 다 부질없다는 것을 최근에 깨달았고 직시했다.

당분간은 나는 많은 결심을 하면서 결론내지 않고 천천히 고민해 볼 생각이다.

시간이 많이 지난 후 제일 그리워 할 순간은 바로 지금,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었던 시간이라는 것을 이제는 조금 알 것도 같다.

내가 할 수 있는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만큼을 사는 것이 가장 의미있는 인생같다.

자기 삶이 애틋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누구나 자신이 오해받는다고 생각한다. 사실이다.

누군가에 관한 평가는 정확한 기준과 기록에 의해 좌우되지 않는다.

평가하는 사람의 기분에 따라 결정된다. 맞다. 정말 불공평하다. 하지만 그게 현실이다.

이와 같은 현실을 두고 누군가는 자신을 향한 평가로부터 스스로를 분리시킨다.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죽을힘을 다해 그걸 해낸다. 그리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묵묵히 한다. 반면 누군가는 끝내 평가로부터 헤어나지 못하고 자신과 주변을 파괴한다.

살고 싶다는 농담 p.141

어디선가 읽었던 책의 내용 중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슬픔과 고통과 고민이 가장 크다고 생각한단다.

내가 처한 현실, 문제가 다른 사람들의 상황보다 훨씬 심각하고 위태롭게 받아들인다고.

위의 문장을 읽고 또 읽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묵묵히 하는'사람들은 현실 앞에서 중심을 잘 잡을 수 있다고 받아들였다.

타인의 시선보다 내가 나를 제대로 바라 볼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내공을 기를 수 있어야 한다고도.

언젠가 모두에게 다가 올 '죽음'이라는 문턱 앞에 마주섰을 저자의 심정이 상상조차 되지 않지만 적어도 한가지는 알 것 같았다.

내 행복은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그러므로 간절히 바라오니 피해 의식과 결별하고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기로 결심하라는 것.

무엇보다 등 떠밀려 아무런 선택권이 없었다는 듯이 살아가는 게 아닌 자기 의지에 따라

살기로 결정하고 당장 지금 이 순간부터 자신의 시간을 살아내라는 것.

오직 그것만이 우리 삶에 균형과 평온을 가져올 것이다.

살고 싶다는 농담 p.274

저자는 스스로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했다.

앞으로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마음으로 살아갈 생각이라고.

'이 순간부터 자신의 시간을 살아내라는 것'이란 짧은 글에 담겨져 있는 메세지가 오늘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지면 좋겠다.

나도 자기 주문처럼, 어떤 방식으로든 내 인생은 스스로 나아가야 하고 타인의 시선에 흔들리지 말라고 오늘도 나를

위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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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오묘한 심리학 -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고, 그 누구도 말해주지 않는
김소희 지음 / 센세이션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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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이 보이지 않던 육아가 조금은 느슨해진 느낌을 받았던 결혼 10년 차, 큰 아이가 9살이 되던 해 둘째 아이가 태어났다. 다시 시작된 작은 아이를 키우는 일은, 단순히 잠을 푹 잘 수 없는 것을 넘어서 내가 사라지는 것만 같은 불안한 기운이 잦아들기도 했다.

저자는 공무원이라는 안정적인 직업을 가진 세 아이의 엄마다. 나는 전업주부라 직업이 있는 저자와는 막연히 다른 점이 많을 것이라 생각했다. 아이를 키우는 방식이나 대하는 자세는 다를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아이를 키우며 불현듯 찾아오는 공허함은 엄마로 오늘을 사는 누구에게나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것이었다.

결혼을 해서 행복하든 행복하지 않든,

이혼을 했든, 영원히 결혼하지 않든

그런 배경의 이름표는 중요하지 않다.

결국 내가 행복해야 누구와 함께해도 행복할 수 없다.

오직 나를 사랑할 수 있을 때 남도 사랑할 수 있다.

엄마의 오묘한심리학 p.97

내가 나를 다독여주고 사랑해 주는 일, 사실 쉽지 않다.

엄마가 되기 전의 나도 그랬고, 엄마가 되어서도 그런 것 같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 내가 행복할 수 있는 일이 뭔지 고민하는 시간을 많이 갖지 못했던 것도 큰 것 같다.

경쟁하며 보낸 10대, 득과 실을 따져가며 입사해 직장 생활을 해야 했던 20대, 엄마로 또 다른 삶을 살고 있는 30대에도 나는 여전히 내가 잘할 수 있는 일과 행복해질 수 있는 일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다.

아이에게 공부만 강요하는 엄마로 살지 않겠다는 다짐, 내 아이만큼은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적어도 그것 하나쯤은 마음에 담을 수 있기를 바랐는데 나도 현실이라는 핑계 앞에서 무너지고 만다. 소리 지르지 않고 친구같이 다정한 엄마는 책이나 드라마, 영화 같은 곳에서만 존재하는 비현실적인 것만 같이 느껴지고.

저자는 내 아이는 나처럼 다 늦게 꿈을 찾는다며 힘들어하지 않게 품 안에 있을 때 단단해지고 성장하는 모습을 보길 원한다고 했다. 두렵지만 스스로 세상 밖으로 나가겠다고 다짐하게 되는 순간이 오면 뒤에서 응원할 수 있는 든든한 엄마가 되고 싶다.


우리는 모두 자신에게 주어진 과제를 해결하며 살아가기도 바쁘다.

내가 아닌 사람이 나를 대신해 살아줄 수 없듯이

자기 자신조차도 정의할 수 없는 복잡 미묘한, 미로 같은 속마음을

꿰뚫어 보고 대신 어루만져 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내 감정은 오로지 내가 책임져야 한다.

그것이 행복이든 불행이든! p.177


어떤 이유 때문인지 몸도 마음도 유난히 지치는 날들이 있다. 아이의 입장에서는 평소와 같이 행동했을 뿐인데 내 목소리가 격해질 때가 있다. 내 마음은 내 것, 기복이 심한 내 감정도 스스로 다독여야 하는데 아이들에게 화를 표출할 때가 많았다. 뒤돌아서서 반성해보기도 하지만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짧은 책 속 구절을 읽다가 마지막 문장에서 멈칫했다. '내 감정은 오로지 내가 책임져야 한다.'라는 부분에서.

아이들은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다. 울고 웃으며 자신의 감정을 순간순간 보여주고 풀기도 하는데 나는 아이들보다 못한 것만 같았다. 엄마도 공부가 필요하다 싶었다. 내 마음을 천천히 살펴보는 여유와 탐구의 시간에 대한 공부 말이다.

자신을 위해 옷을 고르고, 책을 구입하고, 커피를 사서 마시면서 스스로를 다독이는 일.

아이들이 아닌 나만을 위해 구입하는 모든 것들과 나만의 시간은 '엄마'라는 이름표에는 어울리지 않는다고만 생각하고 살았다. 그러는 동안 내가 상하고 외로워지는 것도 모르고.

저자는 드라마 작가라는 꿈에 도전하고 있다고 한다. 지치지 말고 상하지 말고 꿈에 한 발씩 다가설 수 있기를 엄마라는 이름으로 진심으로 응원한다. 나 또한 마음에 담아둔 나만의 꿈을 이루기 위해 매일 일기를 써 볼 참이다.

별 볼일 없는 내 하루가 훗날 허송세월이었다 한들, 후회하지 않기 위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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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머니 이야기 세트 (큰활자본/전용박스 + 2020 벽걸이 달력 포함) - 전4권 - 송년 에디션
김은성 지음 / 애니북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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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함께 앉아 티비를 보다가 우연히 알게 된 책, 내 어머니 이야기.

어떤 책일지 궁금하기도 하고 기대되는 마음으로 찾아보니 만화작가가 자신의 어머니의 이야기를 만화로 오랜 시간 그려낸 책이었다. 책에 한 여성의 평생을 나열해놓은 것을 넘어, 나와 내 아이가 책으로 만났던 역사를 몸소 살아내 오신 이야기가 담겨있었다. 이제 학교에서 역사를 배우고, 만화로 역사를 만나는 아이와 꼭 함께 읽고 싶었던 책이었는데 송년 에디션 큰활자본으로 마주하게 됐다.

책은 총 네 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책 전체가 만화로 되어 있고 쉽게 술술 읽힌다기보다는 생소한 이북 단어도 있고 얽히고설킨 친인척 관계도 있어서 잠깐씩 휴식하며 생각하며 읽으니 좋았다.

책을 받고 어른인 나보다 열 살 초등학생 딸아이가 먼저 읽기 시작했는데 지금과는 사뭇 다른 시대적 배경과, 책에서만 봤던 전쟁이며 피난의 흔적들을 마주하면서 내가 느낀 이상으로 아이도 많은 걸 새롭게 알게 된 눈치였다.

책의 처음은 내 어머니의 어머니 이야기로 시작한다. 딸을 내리 낳아서 미움을 받았지만 별난 시아버님의 갖은 시집살이를 묵묵하게 견디고 병수발까지 해낸 우리네 어머님들의 헌신적인 이야기. 어머니는 음식이면 음식, 자식들 뒷바리지면 뒷바라지, 일이면 일, 어른들 모시는 것에 있어서도 한치의 부족함 없이 맡은 바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사셨다. 때로는 이야기를 듣고 있는 내가 마음이 먹먹해지는 부분도 많았지만 '그때는 다 그렇게 살았어.'라고 종종 말하던 나의 엄마의 말처럼 다들 그렇게 열심히 살았더라.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엄마가 된 지 십 년이 되었지만 아직도 어설프고 부족한 부분이 많은데 어느 하나 풍족한 게 없었던 예전의 날들을 어떻게 견디며 살아왔는지 책 속의 어머니들의 삶이 대단하고 위대해 보였다.

대궐 같은 새집 짓고 마을 사람들의 부러움 받으며 가족들과 평온한 일상을 보내던 이야기, 학교에 가서 친구들과 공부하고 놀이하며 지낸 시간들, 갑작스러운 일본의 전쟁으로 동네 청년들이 군인으로 징병되어 가고, 여자들은 서둘러 시집가던 날들, 그 속에서 작가의 어머니도 열아홉 나이에 떠밀리듯 결혼을 하게 된다. 어느 교수가 정신대를 자발적으로 간 거라는 망언을 했는데 책 속의 어머니가 보고 듣은 시간은 모든 진실을 말해주고 있었다.

부모님이 너무 좋아서 오래오래 부모님 곁에 있고 싶었던, 공부를 더 하고 싶었던 열아홉의 소녀는 한 아이의 엄마가 된다. 갑작스레 아이가 죽고 낳게 된 둘째 아이가 얼마나 애틋했을지 책을 보는 내 마음도 다시 찾아온 귀한 생명이 고맙고 예쁘기만 했다.

일본의 토지 수탈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는데 일제 식민지라는 말이 어떤 것인지 실감이 났다. 내 이름 대신 일본 이름을 쓰게 하고 오래전부터 경작해오던 땅을 빼앗고 일본에 머리를 조아리면 잘 살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눈 밖에 나 힘겹게 살아가는 이야기들. 어느 바른말 잘하는 방송에서 독립군 자손들은 대대손손 힘겹고 가난하게 살지만 친일파 자손들은 부와 명예를 안고 로열패밀리의 삶을 살고 있다더니 그때도 지금과 다른게 없었다. 작가의 어머니 댁도 산을 빼앗길 위기에 처하지만 몇 번의 재판으로 지킬 수 있었다. 하지만 재판 때문에 빚을 지고 사는 일이 많이 어려워지기도 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망해 광복이 되었지만 전쟁으로 가족이 흩어지고 정든 곳을 떠나 피난을 가던 길이 책 속에서 생생하게 그려진다. 몇 해 전 흥행했던 영화 국제시장에서 봤던 내용들이 책에서도 이어졌다. 갓난아이를 안고 부모님과 헤어져 낯선 곳에서 힘겹게 지내는 시간들.

작가의 어머니로부터 전해 듣는 이야기들이 '그런 시간이 있었습니다' 가 아니라 '그런 시간을 살았습니다'라는 메시지라서 마음이 먹먹했던 페이지도 많았다.

책은 내 얘기를 하기 위해서 엄마 얘기를 해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는 작가의 이야기처럼, 작가의 일상과 젊은 날들을 그려내며 마무리된다. 물론 어머님의 이야기는 이어지고.

팔십 대 어머니의 일생을 사십 대 딸이 십 년이란 시간 동안 각자의 시간을 살아내고 기록하고 마무리 한 네 권의 책을 보면서 참 많이도 웃었고 생각했고 배웠고 알게 됐다.

내가 알지 못하는 시간을 살아온 엄마로써 인생의 선배이기도 하고, 역사 속에서 힘든 날들을 살아낸 위인이기도 하고, 평범한 일상을 누리고자 했던 우리네 이웃이기도 하고, 사랑받고 싶은 여자이기도 했던 어머니.

한국사 공부를 할 때 알게 된 최태성 선생님이, 이 책은 우리 모두가 하나의 역사고 우리 모두가 현대사라는 것을 보여준 정말 위대한 작품이라고 칭했다. 또 이 책은 단순히 어머니의 삶을 그린 만화라고 할 수 없으며 역사적 문화적 가치가 크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책과 마주하면서 나 역시 그 말들에 수없이 동의했다.

내게 주어진 하루를, 순간을 열심히 살아오신 어머니의 삶이 이렇게 책으로 발간되어 내 앞에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 요즘 엄마로 사는 시간 앞에서 조급해지고 주눅이 들 때가 많았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반성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고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다짐도 해보았다.

김영하 작가가 세상에서 사라져서 안 될 책으로 소개했는데 이 책을 읽다 보면 많은 사람들이 읽고 또 읽어서 꾸준히 화제가 되었으면 한다.

#내어머니이야기

#송년에디션

#큰활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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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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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는 10년전 나의 겨울을 따뜻하고 또 먹먹하게 만들어줬던 책으로 기억된다. 오래되어 책 속 이야기가 기억에서 사라져 다시 읽었다.

다시 시작된 육아로 책을 읽어도 짧은 글로 나눠진 에세이나 시집만 종종 보게 됐었는데 오랜만에 소설책을 마주하니 너무 좋았다. 앞의 이야기를 애써 마음에 담아두었다가 뒷 이야기와 조합해보기도 하고 더 앞의 단락을 찾아서 보기도 하고, 아이들이 모두 잠든 밤 끝까지 읽으려고 감기는 눈꺼풀을 붙잡아보기도 하고.

책 속에는 크게 여섯명의 인물들이 나온다. 정윤, 단이, 명서, 미루, 미래, 윤교수

정윤과 단이는 고향친구이고 명서와 미루도 오랜 벗이다. 미래는 미루의 언니, 윤교수는 정윤과 명서의 미래같은 사람이자 스승이다. 소설은 어느 시대를 딱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짐작이 가는 날들이 이어진다. 그 사이에 명서와 정윤이라는 두 청춘의 남녀가 있고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와 맞물려 전개된다. 명서의 친구 미루와 정윤이 친구가 되고, 가까워지지만 미래의 죽음으로 두 청춘은 이별을 하게 된다. 오랜 시간이 지나 병상에 있는 스승의 소식을 전하기 위해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기 전까지. 정윤도 고향친구인 단이를 군대에서 총기오발사고로 잃게 된다. 나도 그즈음 내게 사랑하는 사람과 이어준 고마운 사람을 잃게 되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던지라 그들의 마음에 깊은 공감과 슬픔을 감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이 책의 마지막이 어떻게 됐을지 궁금했고 읽기 두려워했던 것도 같다.

소설을 읽으면서 '오늘을 잊지말자'와 내'가 그쪽으로 갈께'라는 두 문장때문에 오래 먹먹했다.

이 소설에서 어쩌든 슬픔을 딛고 사랑 가까이 가보려고 하는 사람의 마음이 읽히기를, 비관보다는 낙관 쪽에 한쪽 손가락이 가 닿게 되기를, 그리하여 이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언젠가'라는 말에 실려 있는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의 꿈이 읽는 당신의 마음 속에 새벽빛으로 번지기를... [작가의 말 중에서]

인상 깊게 읽은 작가의 말이라, 신경숙작가님의 책을 읽게 된 이후로 책을 받아보면 늘 작가의 말에 어떤 글이 담겨있을지 살피게 됐다. 왜 그렇게 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책과 마주하는 내게는 '작가의 말'이 의미있게 다가왔던 것 같다.

책의 마지막에 '언젠가'를 상상하면서 해피엔딩이라고 혼자 읊조렸던 기억이 난다. 오랜만에 다시 마주하니 또 다른 느낌이었지만 여전히 좋았다.

같은 책을 책 속 주인공과 비슷한 나이에도 읽어보았고 책 속에서 처럼 8년의 시간이 지나 다시 만난 그들과 비슷한 나이에 또 마주하니 또 다른 부분이 보이기도 했다.

10년의 시간이 또 흐른뒤에 마주하면 어떤 마음일지 모르겠다. 오래오래 국문으로 쓰여진 대표 청춘소설로 읽히기를 바라는 저자의 바람처럼 그렇게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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