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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함께 앉아 티비를 보다가 우연히 알게 된 책, 내 어머니 이야기.
어떤 책일지 궁금하기도 하고 기대되는 마음으로 찾아보니 만화작가가 자신의 어머니의 이야기를 만화로 오랜 시간 그려낸 책이었다. 책에 한 여성의 평생을 나열해놓은 것을 넘어, 나와 내 아이가 책으로 만났던 역사를 몸소 살아내 오신 이야기가 담겨있었다. 이제 학교에서 역사를 배우고, 만화로 역사를 만나는 아이와 꼭 함께 읽고 싶었던 책이었는데 송년 에디션 큰활자본으로 마주하게 됐다.
책은 총 네 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책 전체가 만화로 되어 있고 쉽게 술술 읽힌다기보다는 생소한 이북 단어도 있고 얽히고설킨 친인척 관계도 있어서 잠깐씩 휴식하며 생각하며 읽으니 좋았다.
책을 받고 어른인 나보다 열 살 초등학생 딸아이가 먼저 읽기 시작했는데 지금과는 사뭇 다른 시대적 배경과, 책에서만 봤던 전쟁이며 피난의 흔적들을 마주하면서 내가 느낀 이상으로 아이도 많은 걸 새롭게 알게 된 눈치였다.
책의 처음은 내 어머니의 어머니 이야기로 시작한다. 딸을 내리 낳아서 미움을 받았지만 별난 시아버님의 갖은 시집살이를 묵묵하게 견디고 병수발까지 해낸 우리네 어머님들의 헌신적인 이야기. 어머니는 음식이면 음식, 자식들 뒷바리지면 뒷바라지, 일이면 일, 어른들 모시는 것에 있어서도 한치의 부족함 없이 맡은 바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사셨다. 때로는 이야기를 듣고 있는 내가 마음이 먹먹해지는 부분도 많았지만 '그때는 다 그렇게 살았어.'라고 종종 말하던 나의 엄마의 말처럼 다들 그렇게 열심히 살았더라.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엄마가 된 지 십 년이 되었지만 아직도 어설프고 부족한 부분이 많은데 어느 하나 풍족한 게 없었던 예전의 날들을 어떻게 견디며 살아왔는지 책 속의 어머니들의 삶이 대단하고 위대해 보였다.
대궐 같은 새집 짓고 마을 사람들의 부러움 받으며 가족들과 평온한 일상을 보내던 이야기, 학교에 가서 친구들과 공부하고 놀이하며 지낸 시간들, 갑작스러운 일본의 전쟁으로 동네 청년들이 군인으로 징병되어 가고, 여자들은 서둘러 시집가던 날들, 그 속에서 작가의 어머니도 열아홉 나이에 떠밀리듯 결혼을 하게 된다. 어느 교수가 정신대를 자발적으로 간 거라는 망언을 했는데 책 속의 어머니가 보고 듣은 시간은 모든 진실을 말해주고 있었다.
부모님이 너무 좋아서 오래오래 부모님 곁에 있고 싶었던, 공부를 더 하고 싶었던 열아홉의 소녀는 한 아이의 엄마가 된다. 갑작스레 아이가 죽고 낳게 된 둘째 아이가 얼마나 애틋했을지 책을 보는 내 마음도 다시 찾아온 귀한 생명이 고맙고 예쁘기만 했다.
일본의 토지 수탈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는데 일제 식민지라는 말이 어떤 것인지 실감이 났다. 내 이름 대신 일본 이름을 쓰게 하고 오래전부터 경작해오던 땅을 빼앗고 일본에 머리를 조아리면 잘 살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눈 밖에 나 힘겹게 살아가는 이야기들. 어느 바른말 잘하는 방송에서 독립군 자손들은 대대손손 힘겹고 가난하게 살지만 친일파 자손들은 부와 명예를 안고 로열패밀리의 삶을 살고 있다더니 그때도 지금과 다른게 없었다. 작가의 어머니 댁도 산을 빼앗길 위기에 처하지만 몇 번의 재판으로 지킬 수 있었다. 하지만 재판 때문에 빚을 지고 사는 일이 많이 어려워지기도 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망해 광복이 되었지만 전쟁으로 가족이 흩어지고 정든 곳을 떠나 피난을 가던 길이 책 속에서 생생하게 그려진다. 몇 해 전 흥행했던 영화 국제시장에서 봤던 내용들이 책에서도 이어졌다. 갓난아이를 안고 부모님과 헤어져 낯선 곳에서 힘겹게 지내는 시간들.
작가의 어머니로부터 전해 듣는 이야기들이 '그런 시간이 있었습니다' 가 아니라 '그런 시간을 살았습니다'라는 메시지라서 마음이 먹먹했던 페이지도 많았다.
책은 내 얘기를 하기 위해서 엄마 얘기를 해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는 작가의 이야기처럼, 작가의 일상과 젊은 날들을 그려내며 마무리된다. 물론 어머님의 이야기는 이어지고.
팔십 대 어머니의 일생을 사십 대 딸이 십 년이란 시간 동안 각자의 시간을 살아내고 기록하고 마무리 한 네 권의 책을 보면서 참 많이도 웃었고 생각했고 배웠고 알게 됐다.
내가 알지 못하는 시간을 살아온 엄마로써 인생의 선배이기도 하고, 역사 속에서 힘든 날들을 살아낸 위인이기도 하고, 평범한 일상을 누리고자 했던 우리네 이웃이기도 하고, 사랑받고 싶은 여자이기도 했던 어머니.
한국사 공부를 할 때 알게 된 최태성 선생님이, 이 책은 우리 모두가 하나의 역사고 우리 모두가 현대사라는 것을 보여준 정말 위대한 작품이라고 칭했다. 또 이 책은 단순히 어머니의 삶을 그린 만화라고 할 수 없으며 역사적 문화적 가치가 크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책과 마주하면서 나 역시 그 말들에 수없이 동의했다.
내게 주어진 하루를, 순간을 열심히 살아오신 어머니의 삶이 이렇게 책으로 발간되어 내 앞에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 요즘 엄마로 사는 시간 앞에서 조급해지고 주눅이 들 때가 많았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반성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고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다짐도 해보았다.
김영하 작가가 세상에서 사라져서 안 될 책으로 소개했는데 이 책을 읽다 보면 많은 사람들이 읽고 또 읽어서 꾸준히 화제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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