춥고 더운 우리 집
공선옥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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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것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나는, 이름을 알고 있는 작가들의 새 책이 반갑다. 좋아하는 다른 작가의 추천사를

보면서 더 빨리 마주하고 싶은 조급함에 서둘러 책을 읽고 내려놓았다.

요즘 미디어 속에 보이는 집은 예쁘고 좋고 있어보이고 따뜻하고, 심지어 살고 있는 사람들도 다 행복해보인다.

집을 찾아주는 프로그램이 많고, 시골 촌집을 젊은 사람들의 기호에 맞게 고쳐 소개하는 유튜브를 보면서 나도 그런 집 하나 갖고 싶다는 바람이 간절했다.

그런 집에서라면 '그들은 아름다운 집에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란 글귀가 썩 어울리지 않을까 싶었다.

이 책은 제목에서부터 애잔하다. 편안하고 안락하며 따스함까지 겸비한 집이 아니라, 춥고 덥다니.

p.31

집도 사람과 같다.

사람에게 인격이 있으며 집도 그와 같은 것이 있다.

집도 생각할 줄 안다.

집도 표정을 가지고 있다.

때는 집이 말도 한다.

집은 웃는다. 집은 울기도 한다.

나는 그 모든 것을 느낌으로 알았다.

내가 기억하는 우리 집에서 부모님은 아직도 살고 계신다.

섬에서 나고 자란 내게 집은 엄마의 오랜 바람이었다. 남의 집이 아닌 아빠의 이름으로 된 진짜 우리 집.

아마 내가 큰아이 나이정도가 되지 않았을까 싶은데, 아빠가 배를 타고 나가 생선을 잡아오면 엄마가 팔고, 그 돈으로

마련한 집이 우리의 첫 집이었다.

커다란 내 방이 생겨 혼자 자는 밤이 마냥 좋았던 나는, 내리는 비에 한두 방울씩 떨어지던 천장의 물기를 기억한다.

엄마와 나는 여기저기 새는 비에 조금은 울었던 것도 같고, 아빠는 한숨을 쉬었던 것 같은 그 날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났다. 좋으면서도 불안했던 날들에 대한 기억이.

p.47

하여간 나는, 광주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기 위해 고향, 시골을 떠났다.

떠난 뒤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것은 아직 생각지 못하고.

도시로 가는 것이 좋은 것 같기도 하고 좋지 않은 것 같기도 했다.

시골을 벗어난다는 것이 어떤 해방감을 주기도 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뭔가 불안했다.

불안하고도 싫지 않은 묘한 기분, 아, 나도 이제부터 도시 사람이 되는건가, 하는.

책 속에 나오는 도시는, 내게 배를 타고 섬을 떠나 마주하게 되는 육지였다.

여객선을 타고 도시에서 온 손님처럼 섬을 떠나오던 날 이후로 나는 고향에 쉽게 가지 못했다.

도시에서 기숙사가 내 첫 집이었고, 그 뒤로 자취방이 나의 새로운 집이 되었다.

이제는 결혼을 하고 아이들과 함께사는 새로운 진짜 나의집이 생긴 것만 같아서 섬에 가지 않게 되었다.

책을 읽으면서 그립지만 이제는 기억에서 멀어진 나의집이 떠올랐다.

마음이 가라앉았다가 웃음이 났다가 내 공간이 생겼던 첫 날의 설렘이 기억났다.

내 것, 나만의 것, 그 욕심이 생겼던 그날이 좋았다.

사고싶은 것을 사고 허기를 채워도 그때만큼은 아닌 것 같아 아쉬운 순간들이 많지만.

p.214

내가 기억하는 내 가족의 최초 모습은 어느 여름날 아침에

식구들이 평상에 둘러앉아 밥을 먹고 있는 것이었다.

'밥이나 집이나 한가지로'란 소제목을 보며 깊게 공감했다.

익숙해서 그런가보다 했던 날들이 나이가 들면서 종종 그리워진다.

삶에 활기가 넘쳤던 젊은 엄마와 아빠가 그렇고, 아빠가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 잡아온 생선으로 차려낸

소박한 밥상이 그랬다. 내 아이들만큼 해사하게 웃을 수 있었던 어린 나와 내 동생이 그렇고.

책을 읽으면서 섬에 있는 우리 집이 자꾸만 떠올랐다.

이제는 몸의 여기저기가 아파 병원진료때문에 섬에서 육지로 나올 수 밖에 없는 부모님은 1년에 몇 번씩

자식들의 집으로 오신다. 나와 동생은 자연스럽게 섬에 있는 우리 집을 찾는 횟수가 줄게 되고, 특히 나는

몇 년 동안 가보질 못했다. 이제는 익숙해진 도시생활이 며칠간의 우리 집 생활을 불편하게 여기게 되었다.

우리 집에서 내 방이 처음 생겼다는 이유만으로 행복해하던 어린 아이는 이제, 방이 작고 불편하다는 생각을 가진

어른이 되었다. 부모님이 건강때문에 섬 생활을 정리하고 나오시게 되면 사라지게 될지도 모르는 우리 집을

생각하니 갑자기 너무 외로워졌다. 비가 새고, 방이 몇개 되지 않았던, 작고 불편했던 우리 집을 다시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어렸던 내가 통째로 사라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섬의 창고 지붕 위에 올라가 아무렇게나 앉아 바다를 바라보며 아빠가 탄 배를 찾던 시간이, 활어회를 파느라

집에 오지 못한 부모님을 기다리던 어두운 밤이.

어떤 형태로든 집은 여전히 각자에게 남아있다. 춥고 더웠던, 작고 초라했던 우리 집에서 함께 한 시간이

그리워진다. 지긋지긋하고 벗어나고 싶었던 날들이, 지금의 내가 혼자 있는 시간을 견딜 수 있게 해준 것이라

믿는다. 나를 조금 더 단단하게 해주지 않았나 하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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