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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주르, 뚜르 - 제11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 ㅣ 보름달문고 40
한윤섭 지음, 김진화 그림 / 문학동네 / 2010년 10월
평점 :
낯선 곳에 가면 나는 이방인이 된다.
그들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쳐다보지 않아도, 수근거리지 않아도 다른 언어를 쓰고 다른 생김새를 인지하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닐 테니.
그런 약간의 이질감 속에 놓여 있다 보면, 나는 철저하게 이방인이 되는 것이다.
<봉주르, 뚜르>에서 만난 ‘봉주’역시 이방인의 모습으로 프랑스 뚜르마을과 만난다.
사람들로 북적한 파리가 아닌 한적한 뚜르에서 봉주는 혼자만의 비밀을 갖게 된다.
봉주가 2층에 자리한 자신의 방 침대에 누워 뚜르의 밤풍경에 빠져들고 있을 때쯤, 파리에서는 본 적 없는 달빛과 마주한다.
흔하게 보던 별빛이 아니라 밝은 빛을 내리쬐는 달빛을.
봉주는 달이 비추는 빛을 따라가다 문득 자신의 방에 놓여 있는 책상 모서리에 적힌 글을 발견한다.
‘사랑하는 나의 조국, 사랑하는 나의 가족’ 그리고 ‘살아야한다’까지…….
집주인 듀랑 할아버지와 이웃들은 몇 십년간 이집에는 한국인이 산 적이 없다고들 하지만 봉주의 눈에 들어온 글귀는 분명히 한국어였다.
궁금증을 품은 채, 봉주는 뚜르에서의 일상에 적응해간다.
학교에서 만난 갈색으로 머리카락을 염색한 토시는 봉주와 같은 동양인이었다.
같은 반에 동양인 친구가 있다는 것이 새삼 기쁜 봉주의 마음과는 달리 토시는 무뚝뚝한 채로 봉주의 인사를 받는다.
봉주는 자신의 집에 살았던 일본이 가족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를 듣게 된다. 봉주와 비슷한 또래의 그 집 아이는 한국어를 아주 잘 했다는 것.
그러던 어느 날, 듀랑 할아버지에게서 예전에 살던 일본인 가족이 아직 뚜르에 살고 있으며 일본 음식점을 경영한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좁은 뚜르에서 그 곳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기에 봉주는 부모님과 그 곳, 자포네로 향한다.
이제 평온한 뚜르와는 어울리지 않는 절박한, 굳은 결심을 떠나 단호하기 까지 한 그 글을 쓴 사람을 만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 때문에 나 또한 봉주처럼 설레고 두근거렸다.
자포네에는 익숙한 얼굴, 토시가 있었다.
봉주는 어쩌면 토시가 한국어를 말하고 쓸 줄 아는 한국인일지도 모른다는 확신이 들었다.
자신도 모르게 큰 소리로 토시에게 그동안 궁금했던 질문들을 쏟아내는 봉주, 그리고 부정하던 토시의 눈에 비친 눈물.
자신의 한 마디 말이 토시의 마음에 상처를 입힌 것은 아닐지 어린 봉주의 마음도 아팠다.
토시는 봉주와 만난 이후 이틀째 학교에 나오지 않았고, 늦은 밤 봉주를 찾아온다.
둘은 달빛이 내리쬐는 어두운 밤, 프레방도에 공원을 거니며 봉주가 궁금해 하던 비밀을 나눈다.
토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람이라고 했다.
그것은 우리가 잘 아는 또 다른 한국의 반, 북한의 다른 이름이었다.
책 속에서 북한의 아이와 마주한다는 것은 봉주만큼 나를 당황스럽게 했다.
너무도 낯선, 왠지 모를 이질감 때문이었을까.
이어 토시는 봉주가 본 글은 삼촌이 쓴 것이라 했고 자신은 언젠가 뚜르를 훌쩍 떠나게 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봉주는 토시가 자신의 모든 비밀을 말해주었던 그 날 밤, ‘친구’라는 이름을 마음에 담았다.
토시와 친구가 되었다고 행복해했지만 그 날 이후 토시는 학교에 나오지 않았고 선생님으로부터 토시 가족이 다른 곳으로 떠났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아무런 흔적 없이 뚜르를 떠나버린 토시를 그리워하던 봉주에게 한통의 편지가 전해진다.
자신을 친구라고 말해줘서 고맙다며 이제는 토시도 그리운 아빠와 함께 살 수 있다는 기쁜 소식이 담겨있었다.
아이들의 헤어짐을 보면서 나는, 우리의 반쪽 역사를 떠올렸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흐릿해져버린 분단의 현실과 쉽게 와 닿지 못했던 분단의 고통을.
뚜르에서의 만남과 헤어짐을 보면서 분단된 지금의 우리 모습이 아이들에게는 소중한 친구를 떠나보내야 하는 큰 상처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봉주가 마주한 조국, 가족, 살아야한다는 글귀가 내 눈에 자꾸만 아련하게 되살아나는 느낌이다.
봉주와 토시가 책 속에서 더 이상 헤어짐을 반복하지 않기를.
친구가 됨과 동시에 이별하지 않아도 될 시간들을 그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