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나도 그런 날이 있어 - 스물아홉과 서른 사이 서울에서 길을 찾다
권지현 지음 / 마호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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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의 문장, 혹은 제목에 끌려 마주하게 되는 책이 있다. 물론 내용은 실망한 적도 볓 번 있지만 묘하게 끌리는 그 무엇을 뿌리치기란 쉽지 않다.

<괜찮아, 나도 그런 날이 있어>란 책은 유독 와닿는 제목때문에 읽어보고 싶었는데 마침, 저물어가는 한해의 끝자락에서 선물을 받았더랬다.
제목만큼 큰 공감대를 형성하는 글귀들은 아직도 철부지 어른이란 꼬리표를 떼지 못한 내게 때론 자아 찾기에 힘써 주었고 한편으로는 위로와 용기를 부여해주기도 했던 듯 싶다.
너무 높은 이상은 아닐까, 배부른 외로움은 아니었을까, 세상 사람들과 나는 조금 다른 유전자를 가진 것은 아닌지에 대한 의문을 곱씹던 내게 '나도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고 솔직하게 말해주는 것이 내가 이 책 속에서 발견한 몇 가지의 매력이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지만 손가락에다 발가락까지 합세(?)해 나이를 표현해도 모자라는 시간들과 마주하다 보니 나이에 대한 뭔지모를 복잡함들이 하나 둘 마음에 자리를 잡는다.

바다의 비릿함이 익숙했던 아이였을 때는 빨리 스무살이 되어 바다 곁을 떠나 넓은 곳으로 가고 싶었었다.
나의 스무살은 누구보다 싱그럽고 빛나리라 기대했지만 시간이 지난 지금은 아쉽게도 특별한 기억이 없는 것 같다. 서른이 되면 당당한 사회인이 되어 있으리라 꿈꿨지만 지금의 나는 꿈꿔 온 모습과는 조금은 다른 삶을 살고 있다.
새로운 가족과 마주한, 엄마라는 이름 앞에서 하루를 사는 나의 책임감은 전보다 두배로 무게감을 더 해 갔지만 마음 속의 공허함은 두 배 이상으로 텅텅 비어버리고 말았다.
늘 그자리에 있는 건 나 뿐인 것만 같은 몹쓸 쓸쓸함을 더한 채.

나를 위해 할애하는 작은 여유조차 사치인 것만 같은 시간들과 마주하다 보면 마음 속에 품었던 꿈은 살짝 내려놓고만다. 가끔씩은 나를 잃어버린 것만 같은 허무한 기분이 나를 엄습해오지만 나는 꿈꾸기를 게을리하지 말아야겠다 또 한 번 다짐해보기로 한다.

예전에는 몰랐던, 시간에 쫓기는 요즘에서야 마음에 드는 책을 읽을 수 있음에 감사할 수 있게 됐다.
자주 만나지는 못해도 늦은 밤 전화로 소리내어 울어도 가만히 숨죽여 들어 줄 친구가 하나쯤은 있다는 것도 감사하고 우는 모습조차 사랑스러운 예쁜 딸과 때론 남보다 미운 남의 편인 남편에게서 소리없이 전해지는 든든함에 고맙고 평범하게 일상을 보낼 수 있는 나의 자리가 문득 감사하게만 느껴졌다.

삶을 살아내는 일들이 상처와 치유의 반복이고 위로와 용기를 얻게 하는 것은 아닐까, 책을 읽는 내내 수많은 생각들이 오갔다.
때론 아프지만 반드시 시간이 지나 아물게 되면 괜찮아진다는 것쯤은 나도 알기에 아파도 웃을 수 있는 희망을 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향기나는 좋은 벗들이 더 없이 고맙고 우울할 즈음 멋진 글귀가 담긴 책과 조우할 수 있어 나는 늘 괜.찮.은. 하루를 사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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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사웅 보름달문고 41
장주식 지음, 양상용 그림 / 문학동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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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93

몇 년간 이어진 전쟁의 한복판에서 벼농사를 짓던 농부의 모습

 

나는 전쟁을 기억하지 못한다.

단지, 전쟁의 기록을 보고 당시의 아픔을 마음에 새길 뿐이다.

내가 사는 오늘은 전쟁이란 단어가 낯설다. 물론 아직도 세계 어느 곳에서는 총과 피가 상장인 전쟁이 계속되고 있지만 내 눈과 마음에 담기엔 뭔가 와닿지 않는다.

그러나 한국은 오늘도 두 개의 코리아인 것이 현실이다.

세계지도에서 쉬이 찾아지지 않은 작은 영토가 두 개로 나뉜지도 벌써 반세기가 넘었다. 전쟁으로 인해 가족을 잃은 아픔은 시간이 흘러도 아물지 않았지만 우리는 서서히 전쟁의 기억을 잊어가고만 있다. 이따금씩 뉴스에서 들려오는 이산가족 만남 소식이 아직도 우리가 분단 국가 인 것을 각인시켜주긴 하지만_

 

<원사웅>은 전쟁이 배경이 되는 도서다.

책 속에서는 칠년이란 시간동안 전쟁이 이어졌다.

전쟁이란 이름 앞에서 호미를 들고 부지런히 밭을 일구던 농부의 손에는 활과 창이 쥐어졌고 농부에 의해 기름졌던 농토는 황무지로 변해만 갔다.

책의 말미에 전쟁이 끝나긴 했지만 누구를 위한 싸움이었는지, 누구를 위한 승리였는지에 대한 질문에는 선뜻 어떤 대답을 꺼내기가 어렵다.

욕심없이 땅을 일구고 자식을 키우고 나이 들어가기를 바랐던 평범한 이들은 전쟁으로 인해 귀한 목숨을 잃어야했다.

전쟁이 끝나고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도 전쟁의 기록에서 그들의 이름은 찾을 수 없었다. 이름없이 농부, 작은쇠, 큰쇠 등의 누군가로만 기억되고 기록될 뿐.

이름없이 가난한 사람으로만 기억되는 그들의 삶이 왠지 모르게 서글퍼졌다.

가진 자들에게는 여전히 많은 것이 남아 있었지만 그들은 가난과 목숨을 담보로 전쟁에 임해야만 했다.

예나 지금이나 물질적으로 풍요롭지 못한 가난한 사람들의 삶과 부유한 사람들의 삶의 차이는 여전한 것만 같았다.

제 몸 숨기기에만 급급한 벼슬아치와 가진 자들의 모습은 책으로 마주하기에도 불편한 진실인 것만 같아서.

 

조선통제사를 아비로 둔 사웅.

책 속의 사웅은 평범한 사람으로 조용히 주어진 삶을 살고자 했던 젊은이였다.

전쟁으로 인해 울부짖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아파할 줄 아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_

소리없이 가만히 아래로 흘러가는 삶을 살고자 했던 사웅의 바람이 이름없이 죽어간 많은 이들의 바람인 듯도 하여 헛헛함을 감출 수 없었다.

제 자리에서 묵묵하게 물 같은 삶을 살.아.갔.던. 이들의 일생이 빛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사람은 누구나 하늘에 별 하나씩은 갖고 있다고 하니 하늘에 별이 빛나는한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가난한 사람들이 바다에서 검은 물살을 가르며 품었던 희망이 밤하늘 가득 빛날 수 있기를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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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당연필도 주소가 있다 문학동네 동시집 16
신현득 지음, 전미화 그림 / 문학동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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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것의 소중함을 알게 해주는 책_

 

동시집과 마주할 때면 유난히도 글에 온기가 느껴진다.

특별히 화려한 문장이 있다거나 곱게 쓴 문체가 아닌데도 꾸미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매력이 고스란히 묻어난다고나 할까.

동시집은 어린이들을 위한 책이라고만 치부해왔는데 아직 완벽한 어른이 되지 못한 내게 따뜻하게 다가온다.

 

<몽당 연필도 주소가 있다>를 마주하다 나이에 상관없이 할머니에게 늘 큰 강아지, 작은 강아지로 불리우는 손자들을 만났다.

부모에게는 자식이 나이를 먹어도 항상 어리게만 보인다는 말이 떠올라 입가에 미소가 번져지기도 했다.

또한 책 속에서 닳고 닳은 보잘 것 없는 몽당 연필과도 인사를 나눴다.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흔하고 작은 것들을 있는 그대로 표현해도 충분히 소중하고 아름다운 글이 되고 마음에 와닿을 수 있다는 것이 새삼스러웠다.

엉덩이와 무릎이 닳고 구멍난 양말을 엄마의 솜씨껏 기워 입히던, 운동화나 고무신도 기워 신기를 반복하던 시절, 호랑이와 도깨비 이야기를 맛깔나게 들려주시던 할아버지가 있는 풍경...

지금은 쉬이 찾기 어려워서 아련한 시간들이 책 속에 있다.

어린이들에게는 쉽게 접하지 못하는 풍경을 상상하게 하고 어른들에게는 지나간 시간을 돌아보게 하는 것, 모든 시간이 한 편의 동시 속 글로 남아 있는 것 같았다.

 

 

모든 사물은 자기가 맡은 일을 잘하고 있으므로

사랑을 받을 권리가 있기도 합니다.

그러한 눈으로 보면 이 한 권의 책은 사랑을 노래한 시집입니다.

                                                                 -작가의 말 중에서-

 

다른 생김새 다른 생각, 말을 구사하는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오늘도 숨쉬고 살아가듯, 이름 붙여진 사물이나 혹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완벽하게 자신의 의무를 다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동시집을 읽는 내 손도 바빠지고 내 마음도 뜨거워졌다.

글 속에서 느껴지던 온기가 꽤 오래동안 지속될 것 같다.

 

 

p. 56

기운 옷 -이것도 할아버지 어렸을 적 얘기

 

 

옷은 엉덩이, 무릎이 먼저 닳았지

소매 끝, 팔꿈치가 다음이었어. 이걸

 

바늘로 박음질로 기워 입다가

드르르륵, 빨리 깁는 재봉틀이 나왔지

 

우릴 가르치는 선생님도

칠판에 쓰시느라 돌아설 때면

바자 뒤쪽에

달팽이꼴로 기운 실 자국

 

선생님도 기워 입는데

우리야 어때?

 

예쁘게 기운 옷은 자랑이었지

어머니의 솜씨 자랑

 

양말도 예쁘게 신고  다녔지

고무신도 운동화도 기워 신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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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r. 버돗의 선물 - 한정판 스페셜 기프트 세트 (스태들러 색연필 세트 + 그림엽서 + 케이스)
테드 겁 지음, 공경희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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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리는 가지지 못한 것을 소망하며 산다.
때로는 돈을 바라보면서, 혹은 명예를 추구하면서 조금 더 갖기 위해 하루를 살고 내일을 살아간다.

성공이란 이름 앞에서 남들보다 빠르고 가까이 나아가기를 열망한다.
주어진 삶에 쉽게 만족하는 사람이 없듯, 내가 가진 것을 선뜻 나눠주는 삶을 산다는 것은 영화나 소설 속 이야기처럼 더욱 어렵다.
객관적으로 볼 때 많이 갖고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필요이상의 선행을 베풀지 않는 것이 내가 사는 오늘의 모습이다.

누군가에게 조금이지만 삶의 일부를 나눠주는 것, 그것은 어떤 의미가 될까?
누군가에게 희망이 되는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생애는 얼마나 값질까?
쉽게 좇아갈 수 없기에 가치 있는 삶을 사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충분히 설레고 또 매력적이다.
쉽지 않은 것임을 알기에 낯설지만 그런 사실과 마주한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미소가 지어진다.
‘희망’의 가치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의 위로가 되기 때문임을 알기에.

<MR. 버돗의 선물>은 희망을 노래하는 책이다.
책은 2008년 지은이가 조부의 가방을 발견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낡은 가방 한쪽에 자리한 수많은 편지와 편지를 보내는 이들에게 10달러를 보내주겠다는 1933년의 신문기사는 버돗의 모든 이야기가 밝혀지는 시발점이 된다.
누구나 궁핍했고 힘들었던 대공황시절, 자신의 현실만 바라보기도 벅찼을 법 한 시간, 선행의 손길을 내민 그의 이야기는 진정한 선물의 가치를 발휘한다.

버돗, 그는 누구일까?
그는 왜 이웃들에게 얼마의 돈을 선물하고자 했던 것일까?
책 속에는 버돗의 존재를 찾아 가는 과정에서 선행을 베풀게 된 동기와 버돗의 도움을 받은 사람들과 후손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아무런 대가없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던 가난한 시대의 작은 희망씨앗, 그의 삶이 내 안으로 서서히 스며들었다. 
 

유년시절의 기억은 우리 삶에서 꽤 오랜 시간을 머무른다고 한다.
버돗은 그런 의미에서 행복한 유년시절을 경험하지 못했다. 그가 기억하는 어린 시절은 고국으로부터 침입자로 내몰렸던 서럽고 가슴 아픈 시간이었다.
대공황으로 인해 절망 끝으로 치닫는 캔턴의 일상이 그에게 아픈 과거를 떠올리게 했다.
버돗의 또 다른 이름인 샘스톤은 어디에서나 가난하고 약한 유대인이자 이방인이었다.
그는 미국이란 나라에서 사회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지기를 바랐다. 고국에서 갖지 못했던 소속감을 새로운 곳에서 갖고 싶었던 것이다.
어둡고 좁은 시간을 견뎌내 온 그는 시련 앞에서 좌절해가는 외롭고 가난한 이웃의 아픔을 결코 타인의 몫이라고만 치부할 수는 없었다.
그들의 눈물 앞에서 자신이 마음속에 품고 있었던 희망을 선물하기로 한 버돗은 작은 기적을 선물하기에 이른다.
수많은 사람들이 버돗의 도움을 기다리며 편지를 썼다.
가장들은 파산 후 자신의 속내를 담아 다시 일어서리라는 용기를 마음에 품고 편지를 보내왔다. 아이들의 옷과 신발을 크리스마스선물로 주고 싶다던 모정어린 엄마의 편지도, 굶주림을 피하고 싶은 어린아이의 절규어린 도움의 목소리를 담은 편지도 있었다.
버돗은 힘든 이웃들의 편지에 계획했던 두 배 수의 사람들에게 5달러를 선물했다.
그가 보낸 5달러는 배고픈 자에게는 비어 있던 식탁 위에 풍족하게 먹을 빵이 올라오게 했고, 추위에 지친 이들에게는 따뜻한 땔감이 되었다. 또 가난에 지쳐 미소를 잃은 아이들에게는 희망과 함께 옷과 인형, 신발이 되어 주었다.

나는 버돗과 그의 이웃들이 5달러로 인해 지을 수 있었던 미소를 상상했다. 선물은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모두 행복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보면서.

1933년을 산 이웃들에게는 5달러가 선물이었다면, 나는 나눔의 마음이 담긴 따스한 이 책을 선물 받았다.
자신의 아픔만 우선시하면서 타인의 고통에는 자꾸만 무뎌지는 내게 버돗의 이야기는 희망 그 이상을 말하고 있다.

나누고 싶은 마음을 갖는 것은 쉽지만 그 마음을 실천하기란 어렵다.
버돗의 용기 있는 선택에 내 마음도 조금씩 용기를 얻어 가는 것만 같았다.
삶을 좀 더 열심히 살아가야겠다는 용기, 쉽게 포기하지 말자는 용기, 나보다 어려운 사람들을 뒤돌아볼 수 있는 용기까지도.
스산하게 불어오는 겨울바람 뒤에는 어딘가에 따듯한 온기가 자리하고 있음을 버돗의 이야기를 마주하며 마음속 깊은 곳에 담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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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편지하지 않다 - 제14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장은진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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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소박한 떨림_

 

 

마음이 스산해졌다.

추운 날씨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음 한구석에 단단히 찬 바람이 새어든 것만 같다. 약간의 외로움을 채워 줄 무언가가 필요할 즈음, 문득 누군가에게 편지가 쓰고 싶어졌다.

어떤이들은 편지쓰기가 촌스럽고 번거로운 일이라고 했지만 나는 내 손끝에서 머릿속을 떠나는 수많은 문장들의 울림이 좋다.

 

책 <아무도 편지하지 않다>는 예전부터 읽어보리라 다짐했던 책이었다.

어디선가 지나치듯 본 '이 책을 읽고나면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 싶어질 것이다.'는 문장 때문에_

역시 이 책을 읽고 나니, 나도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 싶어졌다. 그리고 편지를 쓴 시간보다 더 오랜 시간을 기다려서라도 답장을 받고 싶어졌다.

 

책 속에는 집이란 공간에만 있으면 발작을 일으키는 한 남자와 그의 곁을 지키는 개 와조가 있다.

그는 누군가의 편지를 배달하던 집배원이었고, 와조는 그가 조부라 부르는 사람의 안내견이었다.

와조가 조부를 잃고 사고로 시력까지 잃게 됐을 때, 그는 직장을 관뒀으며 숨이 차오르는 공간인 집을 떠나 끝이 없는 여행길에 오르게 된다.

그는 낯선 여행지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이름대신 번호로 그들을 기억했다.

그의 일과는 매일밤 모텔에 투숙해 끊임없이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 매일 아침 친구에게 편지가 왔냐는 물음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었다.

편지여행자, 그에게 맞는 이름인 셈이었다. 그는 때로는 가족에게, 혹은 여행지에서 만났던 누군가에게 편지로 소통했다.

그의 편지는 때로는 절박했고 때론 통쾌했고 때론 서글펐던 것 같다.

 

내가 책을 읽는내내 궁금했던 것은 그가 답장을 받았냐는 것이었지만 친구에게서 돌아오는 대답은 항상 '아무도 편지하지 않았다.'였다.

왜 사람들은 그의 편지에 답장을 해주지 않았던 걸까.

누군가는 그 사이에 사고를 당했을 수도 있고, 편지받는 것을 싫어할 수도, 딱 한 번 만난 사람으로 부터 온 편지를 대수롭지않게 받아들였을 수도 있고, 글을 읽고 쓰지 못하는 사람일 수도 있었겠지만 나는 그와 함께 답장을 기다렸다.

하지만 그가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마음먹은 순간까지도 그에게는 답장이 오지 않았다.

자신에게 답장이 오면 여행을 그만두기로 한 그는 와조 때문에 집으로 돌아간다. 

와조는 오랜여행의 시간만큼 세월의 나이를 훌쩍 지나쳐버려 더이상 여행을 하기에는 힘들었고, 그는 와조의 마지막을 편하게 해주고싶었다.

집에 돌아온 와조는 편안해보였지만 그는 숨이 차올랐고 어지러웠다. 집 앞에 세워둔 작은 우편함에는 여전히 누군가로 부터 배달되어 온 편지가 없었고, 가족의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남들에게는 안락하고 지극히 일상적인 시간을 보내는 집이 왜 그에게는 이렇듯 힘든 공간이었을까? 답장에만 신경을 곤두세워서인지 나는 이런 의문을 책의 말미에서야 가져보았다. 그리고 곧 해답을 얻었다.

조부의 장례식을 치르던 날, 함께 떠나버린 가족의 빈자리가 그를 거리로, 여행길로 내몰았던 것이다. 갑작스레 가족의 얼굴이, 목소리가, 웃음이 눈 앞에서 사라져버린 텅빈 공간에서 그는 생을 포기하고 싶을 만큼 외로웠을테니 충분히 이해가 갔다.

빈집에서 수도 없이 떨어졌을 욕실의 물방울과 시계 바늘 소리가 그에게는 더없이 낯설고 두려웠을 거란 것도...

그의 외로움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었을 때, 그를 지탱해주던 와조가 죽는다.

그리고 절망의 끝에선 그에게 마치 희망처럼 수많은 답장들이 배달되어 온다.

3년이란 시간동안 그의 이름으로 배달되어 온 답장들은, 그의 삶을 견딜 수 있게 만든다.

 

 

편지를 받을 사람이 있고 또 답장을 보내줄 사람이 있다면,

생은 견딜 수 있는 것이다.

그게 단 한 사람뿐이라 하더라도.

 

나는 글 한 줄의 힘을 믿는 사람이지만 이 책을 통해 다시한번 새롭게 마음에 담아보았다.

내 마음을 전할 목적의 편지가, 문장이 누군가에게 생의 희망을 심어줄 수 있다는 것을, 잃어버린 웃음을 전해줄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오늘은 나도 누군가에게서 오는 편지가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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