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문장들 청춘의 문장들
김연수 지음 / 마음산책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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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이란 말은 ‘열정’이란 말과 닮았다. 그래서인지 내게 ‘청춘’이란 말은 자꾸만 들어도 좋은 단어다. 하지만 좋은 것은 잃기 쉽다. 잊거나 잃거나.
젊음은 인식 할 수 없는 찰나처럼 빨리지나가 버린다. 한 번씩 스무 살의 내 모습을 떠올릴 때면 나이가 들었다는 것을 조심스럽게 실감하게 된다. 
 

<청춘의 문장들>은 <세계의 끝 여자친구>란 책으로 좋아하게 된 김연수 작가의 젊은 날을 사로잡은 문장이 담긴 책이다. 나는 이 책을 통해서 작가의 어린 시절 이야기와 작가를 꿈꾸던 시절의 모습들을 알게 됐다. 그리고 내가 알지 못했던 책과 문장들을 살펴볼 수 있었다. 방황하던 작가의 젊은 날을 함께 해 준 문장들을 통해서 나 또한 잊고 지냈던 치기어린 내 모습들을 발견하게 된 것 같다.

내가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가장 좋아했던 글귀는 <날씨가 너무 좋아요>란 에세이 집 속에 있던 글이었다.
"세상사는 일이 고달프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한 사흘 감기나 앓았으면 싶을 때가 있다.
이불 푹 뒤집어쓰고 아무 생각 없이 끙끙 앓는 기분도 괜찮은 법이다.
앓고 난 뒤에 조금쯤 퀭하니 커진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살아 있는 일이 그래도 행복한 거라는 기특한 생각이 드는 것이다."

반짝반짝 빛나는 미래만을 상상했던 내게 현실은 어두침침한 구름 속 같았다. 내가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됐을 때, 나는 세상 밖으로 나가는 것이 두려웠다.
평범하게 산다는 것이 두려웠고 끝까지 꿈을 꾸는 사람으로 남고 싶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나는 많이 어렸고, 아는 것이 적었고, 세상을 참 몰랐던 것 같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만났던 몇 명의 고마운 사람들 덕분에 조금씩 어른이 될 준비를 시작했다. 그리고 읽었던 얼마 되지 않은 책 속에서 만났던 문장들, 나도 모르게 힘을 준 글귀들이 있었다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면서 새로이 알게 됐다. 

인생이란 취하고 또 취해 자고 일어났는데도 아직 해가 지지 않는 여름날 같은 것. 꿈꾸다 깨어나면 또 여기, 한 발자국도 벗어날 수 없는 곳. p.164

어디에선가 김연수 작가에게 왜 소설가가 되었냐는 질문에 대한 답을 들었던 적이 있었다. 그는 한 번도 글 쓰는 것에 재주가 있다는 것은 생각해보지 못했었다고 말했다.
다만 시간이 많아서 글을 썼고 자신이 쓴 글이 하나의 소설로 완성이 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큰 힘이 되었다고 했다.

책 속에서 스무 살의 그는 천문학과를 꿈꾸던 평범한 학생이었다. 하지만 입시에서 떨어지고 재수를 결심했을 때 우연히 한 시인을 만나게 된다. 3년 정도 그와 함께 지내면서 여러 곳을 여행했고 수많은 광경과 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그가 배우게 된 가장 큰 것은 자신이 어떤 사람일 수 있는지를 알게 된 것이라고 했다.
자신 안에도 많은 빛이 숨어 있다는 것, 지금은 그 빛의 일부만이 반짝이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알게 된 것이라고. 
 

꽃 시절이 모두 지나고 나면 봄빛이 사라졌음을 알게 된다. 천만 조각 흩날리고 낙화도 바닥나면 우리가 살았던 곳이 과연 어디였는지 깨닫게 된다. 청춘은 그렇게 한두 조각 꽃잎을 떨구면서 가버렸다, 이미 져버린 꽃을 다시 살릴 수만 있다면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p.132 

<청춘의 문장들>속 작가의 이야기는 ‘젊음’이란 이름을 가졌던 사람, 가지게 될 사람 누구나 겪었을, 또 겪어야 할 이야기 같았다.  

방황하고 혼란스러워하면서도 무언가를 통해 힘을 얻게 되는 것. 그래서 사람들은 괴롭다고 하면서도 오늘을 살고 내일을 꿈꾸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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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공감
안은영 지음 / 해냄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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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따금씩 나는 내가 ‘여자’란 사실이 새삼스럽다. 이렇게 ‘여자’라는 제목이 떡하니 붙여진 책들을 보고 있자면 더욱 그런 느낌이 든다. 하지만 읽다보면 책을 넘기는 속도가 평균보다 훨씬 빨라지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여자공감.

어떤 내용의 ‘여자’이야기가 펼쳐질까?

<여자생활백서>라는 책으로 나 같은 평범한 ‘여자’들의 마음을 훤히 뚫어보는 것만 같은 책 속 지은이의 또 다른 책은 왠지 친숙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나는 어떤 난관에 봉착하게 되면 조언자가 있었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인지, 사람에 데인 상처는 어떻게 치유해야 할지...

책을 읽는 내내 언니에게 즐거운 잔소리를 듣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문득, 독서의 즐거움 중에서 내가 ‘여자’이기에 공유할 수 있는 매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내가 읽는 대부분의 책은 소설이다.

대체로 책 속 여주인공들은 억울하고 약하게 시대의 비극 상을 대변하기도 하고, 사랑을 갈구하며 신데렐라를 꿈꾸기도 한다. 아니면 홀로서기를 통해 당당히 성공하는 커리어우먼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여자공감>은 주인공이 ‘나’같은 ‘여자’다.

매일 아침이면 떠지지 않는 눈에 애써 힘을 주고 같은 자리로 출근해 오늘을 사는 여자.

사람에게 상처받기도 하고, 자신의 능력에 부딪치면서 좌절하는 모습은 평범하게 사는 ‘나’의 모습과도 많이 닮아 있다. 그래서 쉽게 공감이 가고, 편안하게 그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고 맞장구 칠 수가 있었던 것 같다. 




책 속 ‘나’는 수많은 ‘네’게 조언해주고 꼬집고 재잘거린다.

때론 인생 선배, 사랑에 아파 본 친한 언니, 내 투정을 고스란히 짊어지는 친구가 되기도 하고, 아주 사소한 이유로 나를 부러워하는 동생이 되기도 한다.

완벽한 모범 답안은 없지만 좌충우돌 ‘나’의 경험은 ‘네’게 희망을 선물하고 용기를 심어주기엔 부족함이 없다.

많은 사람들이 잠들어 있는 새벽, 깨어있는 시간을 활용하는 법, 외로운 순간을 헤쳐 나가는 경험...

그녀의 속삭임을 통해 잠이 오지 않는 나의 새벽도 문득 그녀처럼 오래된 영화를 보면서 홀로 식사를 해보는 것은 어떨까 생각했다.

어쩌면 그 짧은 시간이 내게 희망을 주고 외로움을 달랠 수 있는 독백이 되지는 않을까.

누구에게나 삶은 설레면서도 두렵다.

자신의 행동, 걷는 길에 대해 무한한 확신을 갖기는 어렵다. 하지만 일상 속 고민들은 스스로가 건강한 삶을 살고 있다는 하나의 ‘증거’다.




좋은 사람이 많아야 할 필요는 없다. 한 사람이어도 충분하다. 중요한 것은 그로 인해 얻는 네 확신이다. 너를 지탱하는 힘은 너를 바라보는 네 ‘좋은 사람’의 온기, 격려, 애정이라는 걸 잊지 마. 네가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인지 어떤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면 앞으로 조금 더 책임 있게 인간관계를 엮어나가도록 해. 시간은 충분해. 네가 좋아하는, 너를 좋아해주길 바라는 그들은 네가 따뜻하고 든든한 인간으로 성장하도록 너를 기다려줄 의향이 충분히 있단다.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이 된다는 것, 앞으로 네가 10년을 두고 고심해야 할 주제야. 잊지 마.




나는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다. 낯선 사람, 낯선 풍경은 외롭고, 혼자 있는 시간에는 세상이 텅 비어있는 것만 같은 느낌을 자주 받곤 했다.

깊은 밤 전화를 걸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픈 사람들의 숫자는 나이를 먹을수록 자꾸 줄어드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문득 책을 읽으면서 한 사람이라도 내 편이 있다면 적어도 외로운 사람은 아니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조금은 위안이 되었고, 잠시나마 외롭지 않을 수 있었다.




끝없는 인생의 길 위에 여자라서 공감할 수 있는 그녀의 목소리가 좋았다.

나를 잃어버린 듯 살고 있는 하루를, 이 책을 통해 다시 찾은 것만 같은 그런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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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밤, 나는 당신 안에 머물다 - 그리며 사랑하며, 김병종의 그림묵상
김병종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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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이 오지 않는 새벽이면 손에 잡히는 대로 책을 꺼내든다.

상상만이 존재하는 판타지 소설일 때도 있고, 삽화나 사진이 가득한 에세이집일 때도 있다. 비슷한 이름의 인물들이 등장하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이야기가 펼쳐지는 소설일 때도 있고 어렵게 느껴지기는 하지만 읽고 나면 뭔가 큰 것이 남아 있는 것 같은 고전도...

오늘 밤 나는 그림이 가득한 에세이집 한권을 집어 들었다.

제목도 끌리고, 표지, 무엇보다도 김병종이라는 작가의 이름이 좋았다.

짧은 기억 속에서 내가 그를 알게 된 건 <화첩기행>이란 책을 통해서였다.

나는 그 책을 통해 낯선 도시를 만났고, 평소 다르게만 생각했던 예술가들의 삶을 똑바로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오늘밤, 나는 당신 안에 머물다>란 책은 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전해주는 것 같다.

책은 어릴 적 아무런 감흥 없이 마주했던 고향 바다의 물빛이 문득 그립다는 생각을 하게 했고, 깊은 밤 달빛을 마주하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알게 했다.




나는 그리운 곳, 돌아가지 못하는 시절을 그림으로 그릴 수 있음을 하나님께 감사한다. 다른 재주는 없어도 이것 하나 타고난 것에 감사한다. 사랑의 물감을 개고 설렘의 붓질을 하여 작은 내 나름의 세상을 하나씩 만들어갈 수 있음에 감사한다.

그의 말처럼 그가 가진 재능은 그림을 그리며 살 수 있는 삶일 것이다. 글 중간 중간에 자리한 그가 그린 그림은 바쁜 일상 속에서 잊고 지냈던 풍경들인 것만 같다. 이웃들의 미소도 보이는 것 같고 낯선 곳의 바다도, 눈망울이 큰 아이의 웃음소리도 들리는 것만 같다.

그는 살면서 참으로 감사하게 되는 것 중의 하나가 우리나라의 푸른 산과 맑은 물이라고 했다. 책 속에서는 그런 그의 마음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자연에 대한 끝없는 경이와 찬양, 그가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그런 것은 아닐지 생각해보게 했다. 




그의 여행길에서 만난 다양한 정원은 내 눈을 푸르게 한다.

한 방울의 물소리가 고요를 깨는 일본의 정원이나 거대한 인구만큼 규모가 큰 중국의 정원은 늘 새로운 곳에 호기심을 부리는 내게 좋은 선물이 되었다.

책을 읽다보면 지은이가 ‘그분’이라 칭하는 신을 자주 만난다. 종교가 없는 내게 그의 ‘그분’은 다소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나는 ‘그분’의 얼굴을 통해 가족, 오랜 벗, 연인의 모습을 그려본다. 항상 고맙지만 쉽게 또 무뎌지는 그런 존재들.

나는 한 권의 책을 통해 1년을 기다려 열흘 정도 예쁜 모습을 간직하고 지는 벚꽃을 또다시 기다리는 후의 봄날처럼, 잊고 지낸 오래된 풍경들을 떠올렸다.

그가 책 속에서 속삭이는 달콤한 이야기는 내 안의 숨은 감성을 자극한다.

문득, 흐릿하고 피로한 내 눈이 맑고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가진 어린 아이의 눈으로 돌아 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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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콜드 머시 톰슨 시리즈 1
파트리샤 브릭스 지음, 최용준 옮김 / 시공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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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의 제왕>이란 영화를 통해 ‘판타지’가 주는 스릴, 공포, 감흥의 매력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 이후, 어떤 책이나 영화로도 그때의 감흥을 이어 가기란 쉽지 않았다.

<문콜드>역시 별 기대 없이 마주한 것 같다.

얼마 전 봤던 <뉴문>이란 영화와 겹쳐지는 소재 때문인지 영화 속에 나오는 알파, 늑대인간, 뱀파이어 등의 단어가 생소하지 않았다.

소설을 읽을 때는 중심인물들의 동선이 머릿속으로 그려지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 책을 읽는 내내 눈앞에서 주인공들의 모습들이 그려졌다.

다부진 성격답게 강인한 눈매를 지녔을 것 같은 머시는 멸종상태의 워커다.

그녀는 평범한 인간으로도, 늑대로도 살 수 없는 자신의 삶 속에서 많이 흔들렸지만 결국은 중심을 잡고 꿋꿋하게 살아간다.

늑대인간 무리의 우두머리인 알파 아담은 위협적이지만 왠지 모를 인간미가 느껴지기도 했다. 딸 제시를 누구보다도 사랑하며 이웃사촌인 머시를 늑대인간 무리로부터 보호해주기도 한다.




책의 스토리는 ‘판타지’라는 장르에 맞게 빠르게 흘러간다.

누군가의 죽음, 흔들리는 자신의 정체성 발견, 가족의 실종 등의 소재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결코 평범한 삶을 살 수 없었던 인간이 아닌 또 다른 무리들.

그들은 ‘조화로운 삶’을 살기를 꿈꿨지만 갑작스레 닥친 제시의 실종이란 화두 위에서 모든 것이 변해간다.

쉽게 생각할 수 없었던 소재들로 만들어진 <문콜드>에도 ‘사랑’이란 포인트가 있었다.

남과는 다른 스스로를 사랑하는 법, 나와는 다른 남을 사랑하는 법을 말이다.




처음 책과 마주했을 때의 느낌과 책을 덮는 마지막 순간의 느낌은 확연히 달랐던 것 같다.

<문콜드>는 이전에 읽었던 책들과는 비교할 수 없이 이색적이고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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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한도 - 천 년의 믿음, 그림으로 태어나다 키워드 한국문화 1
박철상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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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께서는 ‘겨울이 되어서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고 하였다. 소나무와 잣나무는 사시사철 시들지 않는다. 겨울이 되기 전에도 소나무와 잣나무이고, 겨울이 된 뒤에도 여전히 소나무와 잣나무인데, 공자께서는 특별히 겨울이 된 뒤의 상황을 들어 이야기한 것이다.


<세한도> 속 그들이 주고받는 마음들이 값지게 다가오는 이유는 사람의 가치가 얼마나 크고 빛나는 것인지, 얼마 안 되는 생의 날을 살아오면서 터득했기 때문일 것이다.



모든 것이 잠들어 있을 것 같은 겨울에서야 비로소 소나무와 잣나무의 생명력에 대해 알게 됐다는 공자의 글을 통해, 추사는 ‘벗’에 대해 생각했다.
추사에게 ‘벗’은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그 이상의 존재인 것만 같다.

<세한도>는 낯설지만 부담스럽지 않게 다가온다.
자신을 믿어주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은 시대에 옛 선인들이 마음을 나누는 모습은 진정한 ‘벗’을 생각하게 한다.

역사적으로 굴곡이 많은 우리나라의 선인들은 고단하고 외로운 삶을 살아간 것 같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제주도로 유배를 떠난 외로운 시간들을 보냈던 추사 김정희 역시 그랬다.
항상 주변에 가득했던 사람들은 8년이란 유배의 긴 시간 동안 하나 둘 멀어져만 갔고 끝내는 몇 남아있지 않았다. 권력 앞에서 친하다고 생각했던 벗들과 그를 숭배했던 동료들 역시 등을 돌렸다.
영원히 화려한 자태를 뽐낼 것만 같던 꽃들도 따뜻한 봄이 지나 겨울이 되면 시들고 마는 것처럼, 사람의 마음 역시 흘러가는 시간을 따라 멀어져만 갔다.
추운 겨울에서야 비로소 푸르게 자라는 소나무의 절개를 이해할 수 있었다는 공자의 말처럼 추사는 외로운 시간과 마주했을 때야 비로소 그의 곁을 지키는 ‘벗’을 찾아낸다.
길고 외로운 유배의 시간을 보내는 추사의 곁에 한결같은 마음으로 자리한 사람은 역관 이상적이었다.
그는 추사에게 어렵게 구한 서적을 선물해주기도 하고, 청나라의 이야기를 전하며 추사의 삶에 활력을 불어 넣어주었다.

추사는 자신의 자리가 확고하고 지인들이 많았을 때는 이상적의 선행에 대해 아무런 감흥이 없었지만 많은 사람이 떠나고 난 후에야 이상적의 고마운 마음을 헤아린다. 그리고 직접 <세한도>를 그려 끝까지 의리를 지킨 제자에게 고마운 마음을 담아 선물했다.

겉으로 드러나는 아름다움이 아닌, 생각을 거듭해야 찾을 수 있는 아름다움을 그림을 통해 선물하고자 했던 그의 마음은 그래서 더 귀하게 다가온다.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지고, 진심이 통하는 사람을 만나기 쉽지 않은 세상이다.
물론 마음을 헤아려주는 고마운 벗들이 내 주위에도 있기는 하지만 사람 때문에 웃고 운다는 말이 맞다. 고마워서 웃고, 감사해서 울고, 아파서 울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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