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밤, 나는 당신 안에 머물다 - 그리며 사랑하며, 김병종의 그림묵상
김병종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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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이 오지 않는 새벽이면 손에 잡히는 대로 책을 꺼내든다.

상상만이 존재하는 판타지 소설일 때도 있고, 삽화나 사진이 가득한 에세이집일 때도 있다. 비슷한 이름의 인물들이 등장하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이야기가 펼쳐지는 소설일 때도 있고 어렵게 느껴지기는 하지만 읽고 나면 뭔가 큰 것이 남아 있는 것 같은 고전도...

오늘 밤 나는 그림이 가득한 에세이집 한권을 집어 들었다.

제목도 끌리고, 표지, 무엇보다도 김병종이라는 작가의 이름이 좋았다.

짧은 기억 속에서 내가 그를 알게 된 건 <화첩기행>이란 책을 통해서였다.

나는 그 책을 통해 낯선 도시를 만났고, 평소 다르게만 생각했던 예술가들의 삶을 똑바로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오늘밤, 나는 당신 안에 머물다>란 책은 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전해주는 것 같다.

책은 어릴 적 아무런 감흥 없이 마주했던 고향 바다의 물빛이 문득 그립다는 생각을 하게 했고, 깊은 밤 달빛을 마주하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알게 했다.




나는 그리운 곳, 돌아가지 못하는 시절을 그림으로 그릴 수 있음을 하나님께 감사한다. 다른 재주는 없어도 이것 하나 타고난 것에 감사한다. 사랑의 물감을 개고 설렘의 붓질을 하여 작은 내 나름의 세상을 하나씩 만들어갈 수 있음에 감사한다.

그의 말처럼 그가 가진 재능은 그림을 그리며 살 수 있는 삶일 것이다. 글 중간 중간에 자리한 그가 그린 그림은 바쁜 일상 속에서 잊고 지냈던 풍경들인 것만 같다. 이웃들의 미소도 보이는 것 같고 낯선 곳의 바다도, 눈망울이 큰 아이의 웃음소리도 들리는 것만 같다.

그는 살면서 참으로 감사하게 되는 것 중의 하나가 우리나라의 푸른 산과 맑은 물이라고 했다. 책 속에서는 그런 그의 마음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자연에 대한 끝없는 경이와 찬양, 그가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그런 것은 아닐지 생각해보게 했다. 




그의 여행길에서 만난 다양한 정원은 내 눈을 푸르게 한다.

한 방울의 물소리가 고요를 깨는 일본의 정원이나 거대한 인구만큼 규모가 큰 중국의 정원은 늘 새로운 곳에 호기심을 부리는 내게 좋은 선물이 되었다.

책을 읽다보면 지은이가 ‘그분’이라 칭하는 신을 자주 만난다. 종교가 없는 내게 그의 ‘그분’은 다소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나는 ‘그분’의 얼굴을 통해 가족, 오랜 벗, 연인의 모습을 그려본다. 항상 고맙지만 쉽게 또 무뎌지는 그런 존재들.

나는 한 권의 책을 통해 1년을 기다려 열흘 정도 예쁜 모습을 간직하고 지는 벚꽃을 또다시 기다리는 후의 봄날처럼, 잊고 지낸 오래된 풍경들을 떠올렸다.

그가 책 속에서 속삭이는 달콤한 이야기는 내 안의 숨은 감성을 자극한다.

문득, 흐릿하고 피로한 내 눈이 맑고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가진 어린 아이의 눈으로 돌아 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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