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각사 (무선) 웅진지식하우스 일문학선집 시리즈 3
미시마 유키오 지음, 허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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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소설은 절대적인 미에 관한 이야기 입니다. 그런데 나는 절대적인 미라고 읽기 보다는 절대적인 가치라는 개념을 두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절대적인 가치가 존재한다면 절대적인 가치란 무엇일까?", 


"절대적인 어떤 가치가 나의 새로운 인식을 끝없이 방해하고, 집요하게 내 새로운 인식의 발목을 잡고 나를 지배하고 있을 때, 그리하여 그 절대라는 존재 내지 가치가 나의 새로운 세상과의 만남과 나 자신만의 삶을 방해하고있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절대적인 가치가 스스로 아름다움을 드러내기 위해서 나를 추함으로 규정하거나 만들어 버릴때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일본 교토에 위치한 금각사와 그 주변의 배경에 대한 절재된 유려한 문체로 묘사된 소설 <금각사>는 그 자체로 아름답고, 아름다움에 관한 소설이지만, 주인공 미조구치의 금각사에 대한 방화는 결국 '절대적인 것에 대한 고민과 반항이지 않는가? '하는 생각을 들게 합니다.


소설의 주인공 미조구치와 그의 친구 가시와기는 이 소설에서 이야기하는 절대적인 가치라는 것이 과연 존재하는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 합니다. 


그리고, 절대적인 가치라는 것이 내가 스스로의 인식에 의해 의미를 부여하고 인정한 가치가 아니라, 타인이나 집단(공동체)에 의해 부여되고 집단적인 무의식과 무비판으로 가치를 수용하여 내 삶을 지배하고(나는 지배당하고), 피폐하게 만들고 있다는 점을 발견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인식에 대하여 가시와기와 미조구치는 대응하는 방식에서 차이를 보입니다.


먼저, 가시와기는 소위 절대적인 가치가 지배하는 이 세상은 원래 부조리한 것이니, 이와 같은 사실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견디라고, 절대적인 가치는 결코 근절될 수 없고 맞서는 것은 결국 허무한 결과만 낳을 뿐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러나, 미조구치는 오랜 방황 끝에 결심합니다. 인식만으로는 부조리한 삶을 견딜수 없다고, 광기나 죽음만이 세계를 변모시킬수 있다고 생각하고, 이제까지 자신을 지배해온 절대적인 가치에 과감하게 도전합니다.


그 도전의 결과, 미조구치는 바로 금각사를 불질러 버립니다. 


그런데, 결말이 정말 끝내줍니다. 


"호주머니를 뒤지니 단도와 수건에 싸인 칼모틴 병이 나왔다. 그것을 계곡 사이를 향해 던져버렸다. 다른 호주머니의 담배가 손에 닿았다. 나는 담배를 피웠다. 일을 하나 끝내고 담배를 한 모금 피우는 사람이 흔히 그렇게 생각하듯이, 살아야지, 하고 나는 생각했다." 


미조구치는 절대적인 가치를 불질러 버리고 자살(수면제와 칼로)하려 했으나, 자신의 의지로 자살을 내동댕이 쳐 버립니다. 그리고, '절대적인 가치중 미'라는 악당을 하나 해치운 미조구치는 여유롭게 담배를 피우며 생각합니다. "살아야지!"라고, 

저는 금각사와 함께 장렬하게 산화할 줄 예상했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멋있습니다. 언젠가 무모하게 죽음이라는 명사로 사라져 버릴 존재일 지라도 반항 자체가 의미있는것 같습니다.


미조구치는 자신의 뚜렸한 의지로 당당하게 자살을 포기하고, 또 다시 등장할지 모를(아니 반드시 등장하고야 마는) 다른 종류의 절대적 가치인 부조리에 기꺼이 맞서 싸울것을 다짐합니다. 


그런데, 이 소설 이후에 작가의 세계관이 바뀌어서 극단적인 우국화 경향을 보이고 결국에 할복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점과 이 소설 곳곳에서 보이는 다소 퇴폐적인 묘사가 눈에 거슬리기는 합니다.


하지만, 유려한 문체로 서술된 금각사의 아름다움(미)에 대한 묘사와 아름다움의 이면에 흐르는 절대적인 가치(미)의 존재가 개별자를 황폐하게 추로 전락시켜 버리는 부조리에 맞서 소극적인 인식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이고 지속적인 반항으로 마무리하는 이 소설은 하나의 미학이나 철학적인 의미로서는 오래 기억될 것 같습니다.


이제까지 주말에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기 위해 침대와 쇼파를 뒹굴거림으로 절대 사수하며 읽은 결과물인지라 지극히 개인적인 오독에 불과할 수도 있습니다. 


이 소설은 언젠가 꼭 다시 한번 정좌를 틀고, 꼼꼼하게 읽어 보고 싶다는 강한 유혹을 남겨 주는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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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0-09-01 19: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종이책으로 읽었을 땐 잘 몰랐는데
최근에 팟캐스트를 통해 본문을 듣고 다시 읽을 책이라고 생각했었어요.

막시무스 2020-09-01 20:02   좋아요 2 | URL
저도 이 책 읽은 계기가 오래전에 김영하 작가님 팻캐 들으면서 꼭 한번 봐야지 생각했던것을 늦게나마 실천 한겁니다!ㅎ

하나 2020-09-02 09: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금각사 이번 판본 표지 엄청 예쁘네요! 소설의 느낌이 잘 전달되는 거 같아요. 저도 한 권 더 가져야겠어요! 반항심이 넘치는 시기라 :)

막시무스 2020-09-02 09:27   좋아요 1 | URL
친구수락 감사드려요! 반항DNA는 강한 존재의 증명이죠!ㅎ
즐거운 하루되십시요!ㅎ

하나 2020-09-02 09:29   좋아요 1 | URL
친구가 되어 주셔서 감사드려요! 그 말씀도 좋네요! 강한 존재의 증명. 막시무스님도 반항심 가득한 하루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