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체노동자 프랑스 여성작가 소설 6
클레르 갈루아 지음, 오명숙 옮김 / 열림원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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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읽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나는 한때 문이란, 열려 있거나 닫혀 있는 둘 중 하나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하이데거와 메를로-퐁티 같은 철학자들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느끼는 ‘접촉’이나 ‘경계’가 실은 완전히 이루어질 수 없는 개념적 이상이라 말한다. 물리적 세계도 마찬가지다. 문은 완전히 닫히지도, 완전히 열리지도 않는다. 늘 두 상태의 가능성이 공존하는 모호한 경계에 머무를 뿐이다.


어린 시절의 나는 사랑이든 관계든, 세상의 모든 것이 명확히 호명되고 경계 지어진 상태로 존재한다고 믿었다. 무언가가 변하거나, 모호한 채로 머무른다는 개념은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이를테면 A는 A여야 했고, A가 B나 C가 될 수 있다는 상상은 내게 전혀 허용되지 않은 영역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꽤나 상상력이 빈곤한 시선이었다.


소설은 크리스틴이 아침에 집을 나서서 밤에 코르뒤레에 도착하기까지, 단 하루 동안의 여정을 따라간다. 그러나 이 시간은 단순한 거리 이동이 아니다. 그것은 이제 더 이상 만질 수 없는 빅토르와의 작별을 향해 나아가는 시간이다.


크리스틴은 신경이 점점 마비되어가는 동성애자 빅토르를 사랑한다. 빅토르 역시 그녀를 아끼지만, 그의 욕망은 다른 방향을 향해 있다. 의사 테스트의 분석처럼, 그는 여성과의 사랑을 일종의 타락으로 인식하며 크리스틴과 거리를 둔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크리스틴은 그런 그에게 더욱 깊이 끌린다. 수많은 남자들과 관계를 맺으면서도, 그녀에게 ‘사랑’이라는 단어는 언제나 빅토르에게로만 귀착된다.


어긋나거나 경계를 벗어난 사랑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했던 그 답답함은, 어쩌면 아직도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경직되어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모든 감정에는 이름이 붙어야 하고, 모든 관계는 제자리에 있어야 한다고 믿었던 나는, 정의 내릴 수 없는 감정들과 모호한 관계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육체노동자』는 말하자면, 이해할 수 없는 경계 밖의 모호한 사랑의 변주곡이다. 사랑과 욕망, 질투와 결핍이 서로 얽혀 경계조차 흐릿해진 복잡한 감정의 풍경이 그려진다. 이 소설에서 사랑은 결코 단일한 정서가 아니다. 그것은 모순된 감정들이 공존하는 혼란스러운 상태이다. 크리스틴이 빅토르를 향해 품는 마음은 사랑과 배신, 집착과 거리두기, 갈망과 체념이 기묘하게 혼합된 형태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사랑이라 부르는 감정 역시 결코 하나로 정제된 무엇이 아닌 듯하다. 소설이나 아침 드라마처럼 극적인 서사가 없더라도, 사랑은 언제나 인간의 심리와 욕망, 결핍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다양한 얼굴로 나타난다. 누군가에게는 채울 수 없는 욕망의 얼굴로,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애매한 거리감과 끌림이 공존하는 감정으로 다가온다. 사랑은 정의하려는 순간, 그 본질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감정이다. 결국 우리는 그런 이름 붙이기 어려운 감정들과 함께 살아간다.


사랑은 때로 모순되고, 설명하기 어렵고, 규범에서 벗어나는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 모든 불완전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사랑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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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이 다른 마흔의 사소한 차이
클로이 지음 / 딥앤와이드(Deep&WIde)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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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쇼펜하우어는 『인생론』에서 인간의 행복이 세 가지 요소에 좌우된다고 보았다. ‘무엇을 소유하는가’(재산), ‘무엇을 나타내는가’(명성), 그리고무엇이 되는가’(인격). 이 가운데 그는 마지막 요소, 곧 개인의 인격과 정신의 품격을 가장 본질적인 가치로 여겼다.


『격이 다른 마흔의 사소한 차이』는 이 통찰을 삶의 구체적인 방식으로 풀어낸다. 흔히 마흔은 유혹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중심이 잡힌 시기로 여겨진다. 그러나 성숙함과 품격은 단지 나이의 숫자가 바뀌었다고 해서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삶을 대하는 태도와 내면의 깊이, 그리고 꾸준한 실천을 통해 비로소 형성된다.


이 책은 품격을 하나의기술로 제안한다. ‘에티켓이라는 단어는 프랑스어 etiquette에서 유래했으며, 루이 14세 시대 궁정에서 지켜야 할 규칙을 적어 놓은 작은 표식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그 기원 또한,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조화로운 공존을 위한 배려에서 출발한 것이다.


이처럼 품격 역시 타고난 자질이 아니라, 매일의 사소한 선택과 반복되는 습관을 통해 길러지는 역량이다. 인상과 말투, 표정, 행동, 관계 맺음 등 일상의 섬세한 지점에서 드러나는 태도들이 차곡차곡 쌓여, 결국 한 사람의 품격을 만든다.


저자는 15년간의 패션업계 경험을 통해, 진정한 우아함이란 명품 같은 외적 장식이 아니라 자신과 타인을 존중하는 작고 성실한 실천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른의 품격은 아무도 보지 않는 순간에 드러난다는 이 책의 핵심 메시지는, 쇼펜하우어가 강조한 내면의 풍요로움과 맞닿아 있다.


이 책은 마흔이라는 시기를, 충분한 경험 위에 여전히 성장할 수 있는 시기로 바라본다. 그리고 그 변화는 거창한 전환이 아닌, “생각보다 작고 우아한 변화를 통해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그 변화는 먼저 자신과의 관계를 돌아보는 데서 시작되고, 점차 타인을 향한 태도로 확장된다. 예컨대, 주변 사람에게 사소한 일에도 다정함을 건네는 습관, 그리고 그 마음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자세. 누군가에겐 스쳐가는 순간일지라도, 또 다른 누군가에겐 평생 기억될특별한 장면이 되기도 한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은 바로 그런 미묘한 차이에 있다.


실용성과 효율만으로 판단한다면 이러한 태도들은 사소하고 비효율적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한 사람의 진정한 품격은 바로 그런보이지 않는 선택들의 축적에서 비롯된다.


이 대목에서 나는 살짝 찔렸다. 새침하다는 말을 종종 들어온 나로서는 다정함이 타고난 성향이라 믿어왔다. 하지만 저자는 다정함 또한 매일의 작고 꾸준한 선택과 실천을 통해 충분히 길러질 수 있다고 말한다. 타고난 다정함은 없더라도, 의지와 노력으로 그런 사람이 되어갈 수 있다는 가능성은 내게 어떤 위안이 되었다.


결국 쇼펜하우어가 말한무엇이 되는가라는 물음은, 우리가 일상 속에서 어떤 태도를 선택하느냐에 관한 질문이기도 하다. 『격이 다른 마흔의 사소한 차이』는 이처럼 추상적인품격이라는 가치를, 무겁지 않게 구체적으로, 실천 가능한 삶의 지침으로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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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사랑한 젊은 작가들 - 젊은 작가들의 소설에서 찾은 스물다섯 가지 꽃 이야기
김민철 지음 / 한길사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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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읽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꽃은 나에게 아름다움이자 도취, 그리고 조용한 안식이었다. 매일 고속터미널 꽃 시장을 찾아 신선한 꽃을 고르고, 주문이 들어오면 정성껏 포장해 보내던 나날들. 주문은 많지 않았다. 다만, 꽃과 나만의 시간이었다. 향기와 색감, 꽃잎의 결까지 하나하나 들여다보며 마음을 기울이던 시간. 시드는 모습마저 매혹적인.


길을 걷다가도, 영화나 드라마 속 장면 어딘가에 꽃이 비치면 가슴이 설레였다. 시선은 자연스레 꽃에 머물렀고, 그 순간의 아름다움에 취해 잠시 현실을 잊곤 했다.


김민철 작가도 그런 시선으로 젊은 작가들의 문장 속 꽃을 바라본다. 『꽃을 사랑한 젊은 작가들』은 꽃이라는 매개를 통해 각 작가의 고유한 서정과 은유를 섬세하게 들여다 본다. 25편의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살짝 맛보는 재미에, 김민철 작가의 해설이 더해져 꽃과 식물을 바라보는 문학적 시선과 시대의 결을 함께 읽어내는 즐거움이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마음을 움직인 문장은 최은영 작가의 『밝은 밤』과 윤성희 작가의 『어느 밤』 속에 있었다.


“삼천아, 새비에는 지금 진달래가 한창이야. 개성도 그렇니. 너랑 같이 꽃을 뽑아다가 꿀을 먹던 게 생각나.(중략) 인제 나는 꽃을 봐도, 풀을 봐도 네 생각을 하는 사람이 됐어. 별을 봐도 달을 봐도 그걸 올려다보던 삼천이 네 얼굴이 떠올라.”

– 최은영, 『밝은 밤』


진달래는 그리 화려하거나 귀한 꽃은 아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그 꽃이 그리움이 되고, 지나간 시간을 다시 피워내는 추억의 이야기가 된다. 이 구절은 힘겨운 시절, 마음을 나눴던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로, 사소하고 흔한 꽃 한 송이가 관계와 시간을 얼마나 깊이 그려낼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윤성희 작가의 『어느 밤』에서는 한 노년의 여성이 밤 일탈로 훔쳐 탄 킥보드를 타다 넘어진 채 누워, 문득 딸과의 지난 시간을 떠올린다. 할머니와 훔친 킥보드라니 뭔가 시트콤 속 한 장면 같기도 하다.


“달을 보니 달맞이꽃이 생각났다. 시아버지 병문안을 갔다가 막차를 놓쳐 딸을 업고 집으로 돌아오던 날, 달맞이꽃이 참 환했다.(중략) 소꿉놀이를 좋아하던 딸은 달맞이꽃을 따다가 꽃밥을 지었고, 함께 달맞이꽃을 튀긴 적도 있었다. 여름방학 숙제였다. 엄마랑 요리하기.”

– 윤성희, 『날마다 만우절_어느 밤』


그녀는 힘든 형편 속에서도 딸을 미국 유학까지 보냈고, 이제는 그 딸이 자신의 칠순에 올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그녀의 기억 속 딸은 늘 달맞이꽃과 함께 존재한다. 길가에 무심히 피어 있는 꽃 한 송이가 두 사람의 이야기를 품고, 그 기억은 서로를 이어준다.


꽃은 단지 식물이 아니다. 꽃은 누군가의 얼굴이자, 함께한 계절이고, 마음속 어딘가에 조용히 피어나는 서사이다. 젊은 작가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꽃을 통해 인물의 내면과 관계의 깊이를 그려 보인다. 그 문장들 속에서 평범한 일상의 아름다움과 그리움의 순간을 조용히 만날 수 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누구나 가슴 속에 꽃 한 송이는 품고 살아간다는 것을. 자기만의 서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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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의 해변에서 - 아메리카 원주민, 대항해 시대의 또다른 주인공
캐럴라인 도즈 페넉 지음, 김희순 옮김 / 까치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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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책을 읽는 동안 레비나스가 떠올랐다. 그의 철학에서 타자는 내가 완전히 이해하거나 파악할 수 없는 ‘무한’이다. 이때의 무한이란, 나의 이해와 인식의 틀을 넘어서 존재하는 타자의 본질적 특성을 뜻한다. 타자는 결코 나의 것으로 환원되거나 소유될 수 없는, 고유하고도 초월적인 존재인 것이다.


콜롬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하자 마자 그곳의 주민들을 상품화 가능한 사물로 인식하고 대상화한 것은 상징적이다. 이후 유럽인들 역시 원주민의 타자성을 이해하지 못한 채, 자신들의 언어와 범주 속에 그들을 가두었다. 문명의 도구와 그럴듯한 외양을 갖추었지만, 그들은 타자의 얼굴이 조용히 던지는 “나를 해치지 말라”는 윤리적 요청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원주민은 ‘야만인’, ‘식인종’, ‘미개한 자’로 분류되었고, 그렇게 유럽인의 시선 안에서 하나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그들에게 원주민은 소유와 거래의 대상, 물건과 다름없는 존재였다.


놀라웠던 것은, 나 역시 그들에 대한 인식에서 유럽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점이다. 나도 그들을 이질적이고 기이한, 일종의 호기심의 대상으로만 바라보았던 것이다. 그들의 삶과 세계를 이해하려 하기보다는, 낯섦과 편견 속에 가둬두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야만의 해변에서』는 이처럼 유럽 중심의 역사 서술에 저항하며,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유럽을 어떻게 경험하고 해석했는지를 그들의 시선에서 복원해 나간다. 제목에서 드러나는 역설도 재미있다. 우리가 ‘야만인’이라 불렀던 이들이 유럽 땅에 도착했을 때, 오히려 그들의 눈에 비친 유럽이 ‘야만의 해변’이었던 것이다.


그들이 바라 본 유럽은 부유하고 신기한 곳이었지만, 동시에 불평등과 모순이 가득한 사회이기도 했다. 일부는 화려한 옷을 입고 궁전에서 잔치를 벌이는 한편, 거리에는 굶주린 거지들과 병든 이들이 방치되어 있었다. 특히 기독교 문명이 이러한 불평등을 묵인하는 모습은, 공동체 구성원을 돌보는 전통을 지녔던 원주민 사절단에게 깊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들에게 유럽은 화려하면서도 이해할 수 없는, 이질적인 세계였다.


책을 통해 나는 대항해 시대의 또 다른 주인공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은 단지 수동적인 식민지의 피해자가 아니라, 역사의 능동적 주체였다. 유럽 궁정을 방문한 틀락스칼라의 사절단, 스페인 왕 앞에서도 당당했던 마야의 족장, 낯선 땅 유럽에서 스스로의 가문을 일군 잉카의 공주. 그들은 통역사이자 중재자, 지식인으로서 두 세계를 오가며 자신들의 정체성을 지키고 협상해 나갔다.


레비나스는 타자를 하나의 범주로 환원하는 순간, 이미 타자에 대한 폭력이 시작된다고 말한다. 유럽인들은 원주민을 자신들의 이해 체계 안에 가두었고, 이는 곧 식민 지배의 시작이기도 했다. 『야만의 해변에서』는 그 폭력의 서사를 거슬러 올라가, 지워졌던 목소리와 시선을 복원하려는 시도이다. 이 책은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역사적 시선을 낯설게 만들고,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타자를 이해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이 될 수 있었다. 레비나스의 말처럼, 진정한 이해는 타자를 나의 틀 안에 가두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존재로 마주하는 데서 시작된다. 판단을 잠시 유보하고 타자의 얼굴을 응시할 때, 우리는 비로소 그들로부터 말을 건네받고, 응답할 수 있는 진정한 만남의 가능성에 다가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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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아스 (고대 그리스어 완역본) - 명화와 함께 읽는 현대지성 클래식 64
호메로스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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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읽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미드 『왕좌의 게임』 전쟁신을 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호메로스가 오늘날 살아 있었다면, 이처럼 스펙터클한 블록버스터를 쓰지 않았을까? 아니, 어쩌면 지금 우리가 열광하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거꾸로 호메로스에게서 출발한 것일지도 모른다.


스피노자는 『에티카』에서 “감정은 이성에 의해 억제되거나 제거될 수 없으며, 오직 더 강한 반대 감정에 의해서만 억제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인간을 추동하는 것은 차가운 이성이 아니라 뜨거운 감정이다.


트로이아 전쟁을 배경으로 한 『일리아스』는 7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대서사시다. 처음 책을 받아 들었을 때는 그 두께에 잠시 움찔했지만, 편안한 대화체와 강렬한 서사 덕분에 예상보다 수월하게 완독할 수 있었다.


이 거대한 서사는 단 하나의 감정, ‘분노’에서 출발한다.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감정 중 가장 원초적이고 파괴적인 그것. 서사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된다. “신이여, 노래하라, 펠레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의 분노를…” 아킬레우스의 분노는 단순한 개인의 감정을 넘어, 이야기 전체를 끌고 가는 추진력이자 전쟁의 흐름을 바꾸는 결정적 힘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처럼 복잡하고 불완전한 감정이 인간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리아스』 속 신들은 완전무결한 초월적 존재가 아니다. 제우스는 자신이 편애하는 인간의 편에 서고, 헤라는 트로이에 대한 증오로 깊이 개입하며, 아테나는 냉철함 속에서도 감정의 흐름에 따라 전투를 조율한다.


결국 『일리아스』는 인간과 신이 함께 만들어내는 거대한 감정의 분화구다. 호메로스는 이 작품을 통해 전쟁의 승패가 단지 무기나 전략의 문제가 아니라, 사랑과 증오, 욕망과 자존심 같은 보이지 않는 내면의 충돌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감정의 불길은 인간의 마음을 넘어 신들의 세계까지 요동치게 할 만큼 강렬하다.


이 지점에서 고대 그리스인의 독특한 세계관을 엿볼 수 있다. 그들에게 신은 흠 없는 존재가 아니었다. 오히려 인간처럼 감정에 흔들리고 격정에 휘둘리는 존재였다. 차이가 있다면 불멸성과 힘의 크기 정도였을 뿐이다. 감정에 따라 변덕스럽게 움직이는 신들의 모습이 왜인지 친숙하고 만만하게 느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신을 인간과 다르지 않게 바라보는 이러한 관점은 인간 내면의 정념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고대 그리스인들은 감정을 억압하거나 배제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을 문학, 신화, 철학의 영역으로 끌어올리며 자연스럽게 수용했다.


초반부에 디오메데스가 아프로디테를 공격하며 엄포를 놓는 장면은, 『일리아스』에서 가장 놀라웠던 대목 중 하나였다. 유한한 인간이 불멸의 존재에 도전하는 이 상상력은 고대 그리스인들이 지녔던 정신적 강인함과 상징적 저항의 태도를 보여준다. 감정이야말로 인간을 한계를 넘어 행동하게 만드는 에너지라는 점에서, 이 장면은 하나의 압축된 상징처럼 다가온다.


이 서사에서 느껴지는 긴장감은 단지 전쟁의 파괴력 때문만이 아니다. 인간이 신의 권위에 맞서 싸우는 용기, 그리고 그 감정의 정당성 때문이다. 호메로스는 인간의 분노와 용기를 서사의 중심으로 끌어낸다. 감정을 절제해야 할 정념이 아닌 창조적 에너지로 바라본 고대 그리스의 시각이 분명히 드러난다. 감정을 억제하고 통제하도록 학습된 현대인의 시각에서 보면, 이는 낯설지만 동시에 매혹적인 세계관이다.


우리는 흔히 분노, 질투, 욕망 같은 감정을 억제해야 할 대상으로 여긴다. 그러나 『일리아스』는 이러한 정념들이야말로 인간을 움직이는 원동력임을 보여준다. 아킬레우스의 분노는 파괴적이지만, 동시에 그를 최고의 전사로 만든 원천이다. 감정은 통제해야 할 위험 요소가 아니라 인간 존재의 핵심이며, 때로는 신의 권위조차 뒤흔드는 근원적인 힘이다.


현대 사회는 이성과 논리를 우위에 두며 감정을 열등한 것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호메로스의 서사는 정반대의 메시지를 전한다. 감정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본질적 요소이며, 인간을 춤추게 하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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