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결의 법칙 - 장벽을 허물고 관계를 변화시키는 마인드셋
데이비드 롭슨 지음, 김수진 옮김 / 까치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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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읽고 작성했습니다.


영화 〈김씨 표류기〉에는 섬과 방이라는 공간에 고립된 두 김씨가 등장한다. 한 사람은 죽으려다 살아남아 한강의 밤섬에서 원초적인 생존을 이어가고, 다른 한 사람은 세상과 단절한 채 방 안에서 모니터를 통해서만 삶을 이어간다. 은둔형 외톨이로 지내는 정려원은 세상과 직접 소통하는 대신 아바타로 대신하고 망원경으로 밖을 관찰한다.


그러던 중 우연히 밤섬에서 기묘하게 살아가는 김씨(정재영)를 발견하게 된다. 처음에는 단순한 구경에 불과했지만, 점차 그의 생존 방식을 지켜보며 호기심과 공감을 느낀다. 결국 그녀는 페트병에 메시지를 담아 강물에 흘려보내며, 고립된 두 사람은 서로의 현실을 공유하기 시작한다.


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인 공유현실(shared reality)이란 타인과 같은 세계를 경험하고 있다는 감각을 뜻한다. 이는 단순히 대화를 나누는 차원을 넘어, 같은 것을 보고 느끼며 우리가 같은 현실 속에 있다는 인식을 나누는 순간이다.


영화 〈김씨 표류기〉에서 두 김씨는 섬과 방이라는 물리적 거리를 두고 있지만, 망원경과 페트병 편지를 매개로 서로의 삶을 바라보고 공감하면서 하나의 현실을 공유하기 시작한다. 고립과 외로움이라는 동일한 조건 속에서 작은 도움을 주고받으며 두 사람은 서서히 삶의 의지를 회복하고 변화를 맞이한다.


책은 “혼자가 편한 당신에게도 연결은 필요하다”라고 말한다. 사실 그런 외침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이미 휴대폰이나 인터넷을 통해 끊임없이 어딘가에 접속한다. 그것은 직접적인 관계는 아닐지라도, 타인과 연결되고 싶어 하는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켜 준다. 더 나아가 실제 연구들은 인간관계가 삶의 질과 건강, 나아가 생명과도 직결된다는 사실을 꾸준히 밝혀 왔다.


데이비드 롭슨은 『연결의 법칙』에서 우리가 관계를 주저하게 만드는 심리적 장벽과 잘못된 직관을 짚어내며, 그것을 넘어설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한다. 작은 대화, 사소한 공감, 진심 어린 칭찬과 같은 일상의 행동이 어떻게 우리의 관계를 바꾸고, 결국 우리 자신을 변화시키는 힘이 되는지를 보여준다.


13가지 연결의 법칙 중 마지막 부분에서 특히 마음이 움직였다.

“현재 여러분의 인생에서 한 발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 연락하라. 그들이 여전히 마음 한편을 차지한다는 사실을 알려라.”


한때 안부 리스트에 빼곡히 이름을 올렸던 친구와 지인들, 코로나 이후로 만남이 뜸해지고 이런저런 이유로 자연스럽게 연락이 줄어든 이들이 떠올랐다. 앞선 12가지 법칙보다도 이 문장이 더 크게 다가온 것은, 그동안 소중히 여겨왔던 이들과의 거리를 다시금 생각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연결은 새로운 인연을 만드는 일만이 아니라, 이미 맺어진 관계를 다시 돌아보고 이어가는 데에서도 의미를 갖는다. 결국 새로운 관계든, 소원해진 관계든 한 발 나아갈 용기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영화 속 두 김씨처럼 각자의 공간에서 표류하는 것이 아니라, 다정한 말과 응답으로 소통할 때 관계는 더욱 아름다워지고 우리의 삶은 한층 더 깊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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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내 여행자-되기 둘이서 3
백가경.황유지 지음 / 열린책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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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읽고 작성했습니다.


유타주 피쉬레이크 국유림에는 신비로운 나무숲이 있다. 판도(Pando)라 불리는 이곳에는 43헥타르에 걸쳐 4만여 그루의 아스펜나무가 자란다. 언뜻 보면 제각각인 나무들 같지만, 사실은 모두 하나의 뿌리에서 뻗어 나온 거대한 단일 생명체다.


이 숲은 들뢰즈가 말한 ‘리좀(rhizome)’의 살아 있는 모델과도 같다. 위아래의 질서 없이 사방으로 뻗어 나가고, 어느 지점에서든 새로 움트며, 한쪽이 잘려도 다른 곳에서 다시 돋아난다. 중심도 끝도 없는 이 자유로운 연결의 구조가 바로 리좀의 형상이다.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경쟁 속에서 길러지며, 누군가를 이겨야만 더 높이 설 수 있다고 배운다. 물론 친구와 철봉에서 오래 매달리기를 하거나 자전거로 속도를 다투는 일은 즐거운 경쟁을 통해 서로의 한계를 넓히고 성장하게 한다. 그러나 공부로 시작되는 입시전쟁과 취업전쟁은 어린 시절의 ‘우리’를 ‘나’라는 고립된 주체로 바꿔 놓는다. 공동체적 연대는 희미해지고, 개인의 생존만이 우선시되는 생존 모드로 바뀐다.


하지만 아스펜나무의 뿌리가 땅속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듯, 우리는 결코 외따로 서 있는 존재가 아니다. 누군가의 희생과 수고 위에서 오늘을 살아가며, 우리의 삶은 보이지 않는 맥락 속에서 서로 이어져 있다.


『관내 여행자-되기』에서 두 작가는 ‘관’이라는 키워드로 공간과 사람, 기억과 현재를 잇는다. 그렇게 ‘관’은 타인의 삶을 이해하는 길이 된다.


인천의 성냥공장 여공들, 동일방직의 여성 노동자들, 의정부 뺏벌의 성매매 여성들, 세월호와 이태원 참사의 희생자들. 이들이 찾아간 곳곳에는 사회가 외면하거나 망각하려 했던 이름들이 있다.

불편하다거나 연민의 시선으로만 바라보던 이들, 혹은 빨리 잊으라 재촉하는 목소리를 뒤로하고 꺼내진 그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질문을 건넨다.


두 작가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각각의 공간은 개별적인 과거의 비극이 아니라 현재의 이야기이며, 서로 구조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게 된다.


인천 성냥공장의 어린 여공들이 겪었던 열악한 노동 환경은 오늘날의 비정규직 문제와 성별 임금 격차로 이어진다. 의정부 뺏벌의 성매매 여성들의 이야기는 지금도 경제적 취약성에 내몰린 여성들의 현실 속에서 되풀이된다. 사회는 여전히 그 책임을 개인의 선택으로 돌리거나, 그들의 존재를 가려 보이지 않게 함으로써 구조적 문제를 감추고 불편한 진실을 외면한다.


세월호와 이태원 참사는 더욱 직접적으로 현재와 가깝다. “정부 부처, 서울시, 용산구, 경찰 관계자, 해밀톤의 누구도 처벌받지 않았다”는 황유지의 기록은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무책임이 어떻게 반복되는지를 드러낸다.


다행히 이번 정부 들어 대통령과 정부가 유가족들에게 고개 숙여 사과하는 모습은 매우 늦었지만, 동시에 감동적인 장면이기도 했다. 사과와 성찰이 첫걸음이 될 수 있으나, 그 진정성과 책임의 이행은 우리가 끝까지 지켜보아야 할 문제이기도 하다.


결국 『관내 여행자-되기』가 보여주는 것은 고립된 ‘나’의 서사가 아니라, 서로 맞물려 있는 ‘우리’의 이야기다. 아스펜나무의 뿌리가 보이지 않는 땅속에서 얽혀 있듯, 우리의 삶 또한 보이지 않는 연대 속에서 지탱된다. 그것은 들뢰즈가 말한 리좀처럼, 끊어낼 수 없는 연결망 속에서 이어져 있음을 보여준다.


이 연결의 감각은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묻는다. 경쟁과 고립의 논리 속에서 ‘나’만을 지키려는 태도를 넘어, 타자를 향해 열린 마음으로 서는 일. 그 마음에서부터 공동체는 다시 살아나고, 아픔을 포용하는 힘 또한 길러지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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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이 철학을 마주할 때 - 다가올 모든 계절을 끌어안는 22가지 지혜
안광복 지음 / 다산초당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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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읽고 작성했습니다.


인생이 한 권의 책이라면, 청소년기까지는 도입부이고 중년은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 클라이맥스를 향해가는 지점일 수도 있고, 이미 클라이맥스를 지나가는 구간일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분명한 것은 삶의 무게가 더욱 묵직해지는 시기라는 점이다. 책임져야 할 것들이 많아지고, 앞날의 선택지는 점점 좁아진다.


철학만큼 세상에 무용해 보이는 학문이 있을까. 세상은 늘 실용적이고 당장 득이 되는 것을 하라고 요구한다. 그러나 어느 날 문득 ‘나는 왜 존재하는가’, ‘잘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이 목끝까지 차오를 때, 결국 우리를 붙잡아 주는 것은 실용이 아니라 사유의 힘이다.


이 책에서 제안하는 스물두 가지 삶의 태도 가운데 특히 마음에 남은 것은 ‘지성’과 ‘초연’이다.

몽테뉴는 법원 판사로서 경력을 쌓아가던 38세에 과감히 자리를 내려놓고 고향 집 서재로 돌아갔다. 그런데 문득 의문이 든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것들이 과연 진정한 학문의 탐구였을까. 주입식 암기와 학원에서 선생님이 짚어주는 대로 외우기에 급급했던, 그저 기계적인 반복이 아니었을까.


그럼에도 공부는 대개 학교 졸업과 함께 멈춰 버린다. 앎을 호기심과 열정으로 탐구해 본 경험이 부족했기에, 학문은 지겹고 지루한 것으로 치부되곤 한다. 그러나 몽테뉴는 중년으로 접어드는 나이에 자신만의 서재에서 오히려 삶을 성찰하는 공부를 시작했다. 그는 책 속에서, 또 자신과의 대화 속에서 지혜를 길어 올리며 삶의 무게를 견뎌낼 힘을 찾았다.


몽테뉴가 서재에서 지적 성찰을 구했다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극한의 상황에서 철학을 실천했다. 로마 제국의 5현제였던 그는 독서와 명상을 즐기던 철학자이자 황제였다. 최전방 막사에서 『명상록』을 집필하며, 때로는 적군의 공격으로 직접 전장에 나서야 하는 위기 속에서도 사유를 놓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58세, 다뉴브 전선의 군영에서 병사하기까지, 그는 생애의 마지막 순간까지 전장에 머문 황제였다.


그런 그는 어떤 마음으로 전장에 임했을까.

“너의 마음을 괴롭히는 어떤 일에 부딪히면 이를 불행으로 여기지 마라. 이를 슬기롭게 이겨내는 것을 행복으로 여겨라.”


이 말이 더욱 와닿는 이유는 그것이 단순한 교훈이 아니라, 삶과 죽음의 현장에서 길어 올린 생생한 언어이기 때문이다. 그는 고통을 푸념하지 않고, 오히려 극복하는 과정을 기쁨으로 받아들이라 말했다.


“해야 할 일은 하되, 벌어질 일은 벌어지게 두라.” 그는 오직 ‘지금 이 순간’의 자기 역할에 충실했다. 최선을 다해 싸우되, 결과는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영역임을 알았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묵묵히, 그러나 성실히 최선을 다하는 것뿐임을 그는 삶으로 보여주었다.


최근 이런저런 일로 마음이 시끄러웠던 나 역시 그의 태도에서 위안과 용기를 얻었다. 중년기에 접어들며 누구나 예상치 못한 시련을 마주하지만, 아우렐리우스의 태도는 단순한 위로를 넘어 실질적인 삶의 지침이 된다. 중년으로서뿐만 아니라 한 명의 인간으로서 삶을 대하는 태도를 다시금 돌아보게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니체가 『도덕의 계보』에서 말한 ‘귀족적인 것’이 떠오른다. 그것은 단순히 신분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고통과 무게를 당당히 감내하면서도 새로운 가치를 창조해내는 태도, 곧 스스로를 지배할 수 있는 힘을 의미한다. 고귀함은 자기를 긍정하는 힘, 위험 앞에서 물러서지 않는 용기, 원한에 갇히지 않는 관대함, 그리고 자기만의 길을 창조하는 정신에서 비롯된다. 꼼수나 속임수로 남을 속여 얻는 승리는 결코 귀족적인 것이 아니다.


몽테뉴의 성찰, 아우렐리우스의 초연함, 니체의 긍정은 서로 다른 길처럼 보이지만 결국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중년의 철학은 그러한 고귀함을 향해 나아가는 지표이자, 스스로를 더 나은 인간으로 빚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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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마음은 설명되지 않는다 - 우울증 걸린 런던 정신과 의사의 마음 소생 일지
벤지 워터하우스 지음, 김희정 옮김 / 어크로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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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읽고 작성했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투명하게 드러난다면 어떨까? 두려움, 미움, 수치심, 사랑으로 달뜬 마음, 분노 등이 해파리의 내장처럼 비쳐 보인다면 아마도 편의점에 자가비 하나 사러 가는 일조차 힘들 것이다. 그만큼 감정과 생각을 드러낸다는 것은 쉽지 않다. 아무리 가까운 사람 앞일지라도 그렇다. 그렇기에 우리는 종종 아무렇지 않은 척 감정을 적당히 숨기고 살아간다.


방송에 등장하는 유명한 정신과 의사들은 한결같이 삶의 비밀을 아는 듯 여유롭고, 연출된 미소로 무장한 채 사람들을 대한다. TV 프로그램 속에서 환자나 출연자의 마음을 단번에 읽어내고 조언을 건네는 그들의 모습은 마치 전능에 가까운 존재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완벽해 보이는 그들도 결국은 우리와 같은 사람임을, 런던의 정신과 의사 벤지 워터하우스는 자신의 고백을 통해 보여준다. 실제로 정신과 의사들이 정신 질환을 앓거나 약물 남용, 심지어 자살에 이르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그는 말한다.


NHS 정신과 수련의로 일한 10년을 담은 이 책은, 환자를 돌보던 의사가 스스로 우울증 환자가 되어 고통과 치유의 길을 동시에 걸어간 기록이다. 영국 시골의 목가적인 환경에서 아동기를 보냈으니 행복했을 것이라는 엄마의 주장과 달리, 그는 안정적이지 못했던 가정사를 내면 깊숙이 감추며 살아야 했다.


책 초반부에는 유머러스한 문장과 드라마 같은 환자들의 이야기가 이어져 마치 한 편의 시트콤을 보는 듯했다. 실제로 책장을 넘기며 “풋” 하고 여러 번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그러나 동시에 지나치게 농담으로 상황을 표현하는 방식이 다소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언젠가 ‘가면우울증’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겉으로는 웃으며 일상을 살아가지만, 내면에는 깊은 슬픔과 불안이 자리한 상태를 뜻한다.


벤지 역시 농담으로 자신의 감정을 숨기며 방어했다. 그러나 상담을 시작하면서 그는 유머 뒤에 감춰진 방어를 거두고, 한 인간으로서 또 전공의로서의 고민과 부모와의 갈등을 솔직히 드러내기 시작한다. 그 순간부터 책 속 문장들의 결도 달라진다. 그는 자신의 문제를 직시하며 쉽게 풀리지 않는 부모와의 오래된 상처와 억눌린 기억을 되짚고, 그 과정에서 마음의 균열과 화해의 가능성을 찾아간다. 이 여정이 지극히 인간적이기에 위로와 공감을 느낄 수 있었다.


제목이 말하듯 인간의 마음은 병명이나 코드, 숫자와 분류만으로는 결코 설명될 수 없다. 이해할 수 없는 불가해한 마음의 영역이 있으며,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단순한 이분법 너머에는 고유한 삶을 살아가는 한 인간이 있다. 그리고 그 인간은 저마다의 상처와 고통을 품은 채, 그저 살아남기 위해 애쓰고 있음을 런던의 정신과 의사 벤지를 통해 깨달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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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묻고 의학이 답하다 - 의학의 새로운 도약을 불러온 질병 관점의 대전환과 인류의 미래 묻고 답하다 7
전주홍 지음 / 지상의책(갈매나무)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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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읽고 작성했습니다.


중세를 배경으로 한 영화에서는 병을 고치기 위해 사제가 기도를 올리거나 구마 의식을 행하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병자를 치료하기 위해 핀셋으로 거머리를 하나씩 붙이는 모습도 낯설지 않다. 지금으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방법이지만, 당시에는 엄연한 의학적 상식이었다.


그리스에서 자연철학자들의 물음은 단 하나였다. "만물의 근원은 무엇인가(아르케, archē)?"라는 질문이었다.


자연철학이 등장하기 전까지 세계는 알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이자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만물의 근원이 신이라고 여겨졌던 시절, 인간은 재앙을 피하기 위해 신의 노여움을 달래며 제의와 기도를 올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자연철학자들은 신화적 설명에서 벗어나 세계를 지배하는 보편적 원리와 질서를 찾으려 했다.


자연철학이 신화적 설명을 넘어 합리적 원리를 추구했듯, 의학 또한 질병을 단순히 신의 벌로 보던 관점에서 벗어나 원인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전주홍 교수는 『역사가 묻고 의학이 답하다』에서 이러한 관점의 전환이야말로 의학의 역사를 이끌어온 핵심 동력이라고 말한다.


"관점은 생각과 행동의 방향을 결정하고 지배합니다. 질병이 신의 벌이라는 관점에서 치료는 오만과 불경을 뉘우치고 신에게 기도와 제사로 참회와 용서를 구하는 형태로 나타납니다."


실제로 병을 신의 징벌로 보는지, 체액의 불균형이나 장기의 손상으로 보는지, 혹은 분자의 이상이나 유전정보의 오류로 이해하는지에 따라 치료 방식과 의학의 방향은 전혀 달라졌다. 신화적·주술적 관점은 자연철학자들의 등장과 함께 '체액병리학'으로 옮겨갔다. 네 체액의 균형이 깨질 때 병이 생긴다고 본 '4체액설'은 히포크라테스와 갈레노스의 권위에 힘입어 중세까지 정설로 받아들여졌다.


체액의 균형을 맞추려 행해진 사혈 치료 때문에 신부전증을 앓던 모차르트는 과도한 피를 뽑은 끝에 세상을 떠났고, 조지 워싱턴 또한 같은 부작용으로 목숨을 잃었다. 지금은 믿기 어렵지만, 당시에는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 치료법이었다.


그러나 의학의 역사는 멈추지 않았다. 해부학은 병의 원인을 체액이 아닌 장기에서 찾도록 하며 근대 의학의 길을 열었고, 현미경의 발명은 세포와 분자의 미시세계를 관찰할 수 있게 했다. 분자의학은 질병을 분자 단위에서 진단·치료할 길을 열었고, 오늘날 정밀의학은 유전 정보와 생활 환경을 반영해 개인 맞춤 치료로 나아가고 있다.


전주홍 교수가 강조하듯, 의학의 역사는 몇 가지 위대한 발견이 아니라 관점의 전환이 이끈 긴 여정이다. 신의 벌에서 체액, 장기, 분자, 정보로 이어지는 패러다임의 변화는 우리가 질병을 어떻게 이해하고 다루어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새롭게 묻게 한다.


헤겔이 "철학은 시대의 딸"이라 말했듯, 의학 또한 시대의 변화 속에서 발전해 온 지식이다. 당시에는 당연하게 여겨졌던 상식들 역시 끊임없이 수정되고 새롭게 발전해 왔음을 이 책은 보여준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믿는 상식이 결코 절대적 진리가 아님을 일깨우며, 더 나은 해답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의심하고 질문하는 태도가 필요함을 생각하게 한다.


덧 : 이 책은 역사 속에서 의학과 인문학을 아우르며 인간이 세계를 이해하고 해석해 온 방식을 쉽게 살펴볼 수 있게 해준다. 추천사에서 언급했듯이 청소년들이 한 번쯤 읽어보면 좋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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