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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자유에 이르는 길 - 김익한 교수의 읽고 쓰는 실천 인문학
김익한 지음 / 김영사 / 2025년 9월
평점 :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읽고 작성했습니다.
하루 24시간을 돌아보면, 온전히 자유로운 시간은 과연 얼마나 될까. 회사나 가족을 위한 시간을 제외하고 나만을 위한 시간을 헤아려보면, 아마 몇 시간도 채 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 몇 시간조차도 따지고 보면 여전히 무언가에 종속되어 있을지 모른다.
철학에서 오래도록 탐구해온 근본 가치는 진리와 정의, 그리고 근대 이후 더욱 두드러진 자유라고 할 수 있다. 자유는 인간 존재의 본질과 직결된다.
지금 21세기에 자유롭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하고 되묻고 싶을 것이다.
보카치오가 쓴 『데카메론』은 아직 읽어보지 못했지만, 넷플릭스에서 방영 중인 드라마 『데카메론』을 시청하고 있다. 14세기 유럽은 흑사병으로 공포와 혼란에 잠긴다. 전염병이 이탈리아 전역으로 퍼지자, 이들은 레오나르도 자작의 초청을 받아 시골 저택으로 피신한다. 드라마는 원작처럼 열 명의 인물이 한 저택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틀을 변주하며, 귀족과 성직자, 하인과 농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인간 군상을 펼쳐 보인다.
작품 속 인물들은 저마다 다른 굴레에 묶여 있다. 귀족은 체면과 탐욕에 사로잡히고, 성직자는 위선을 드러낸다. 여성은 억압된 욕망을 교묘히 비틀어 드러내고, 남성은 여성뿐 아니라 남성을 향한 욕망까지 드러내며, 욕망이 얼마나 다층적인지 보여준다. 농민은 생존에 짓눌리고, 어떤 귀족은 병에 대한 두려움에 갇혀 산다. 보카치오는 이렇게 자유롭지 못한 인간의 모습을 해학적으로 그려낸다.
14세기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지만, 그 모습은 오늘날과 크게 다르지 않다. 명예와 재물, 권력과 성적 욕망에 매인 사람들, 교조적 교리에 집착하는 사람들, 죽음의 공포에 흔들리는 사람들까지. 『데카메론』이 보여주는 욕망은 시대를 넘어 지금 우리의 모습과 겹쳐진다. 우리는 여전히 욕망에 흔들리고 사회 구조에 사로잡혀 살아간다. 달라진 것은 시대와 배경일 뿐, 인간을 얽매는 굴레와 그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갈망은 변하지 않았다.
김익한 교수의 『철학, 자유에 이르는 길』은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그는 자유를 단지 개념으로만 말하지 않는다. 자유는 매일 훈련하고 성찰해야 하는 삶의 기술이다. 욕망과 사회 구조에 얽매여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데서 멈추지 말고, 그 안에서 어떻게 나의 시간을 회복하고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지를 묻는다.
책 속에서 저자는 밀, 푸코, 한병철, 누스바움 등 여러 사상가의 사유를 불러온다. 밀은 자유를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한, 자기 삶을 결정할 권리"라고 정의했다. 푸코가 말한 자기 돌봄은 "끊임없이 자신을 가꾸는 실천"으로서의 자유를 보여준다. 누스바움의 '역량' 개념은 자유를 추상적 이상이 아닌 구체적 선택의 기회로 재정의한다.
"나는 누구의 선택에 따라 살고 있는가?" 저자는 하루의 작은 기록, 나만의 역량 지도, 관계를 다시 바라보는 태도 같은 실천을 통해 자유를 회복하라고 권한다. 자유란 제도나 구조가 허락해주는 시간이 아니다. 그것은 스스로 사고하고 선택하며 책임지는 삶의 방식이다.
책과 함께 온 워크북을 따라 적다가 나 자신에게 실망이 밀려왔다. 7년 넘게 철학을 공부하며 삶에 붙이고자 했는데, 내면의 욕망은 여전히 바뀌지 않은 채 그대로였다. 수없이 듣고 읽고 다짐해왔음에도, 뼛속 깊이 붙은 허영심과 나르시시즘적 태도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 슬픔이 밀려왔다.
그 순간 철학적 성찰이 무력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허무에 빠지고 싶지는 않다. 오히려 이런 자각 자체가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바라보는 거울이 될 수 있으니 말이다.
니체의 말을 떠올린다. “인간은 극복되어야 할 무엇이다.” 자유는 완성된 상태가 아니라, 끊임없이 자신을 넘어서는 과정 속에서 만들어가는 것임을 다시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