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그녀들의 도시 - 독서 여행자 곽아람의 문학 기행
곽아람 지음 / 아트북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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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읽고 작성했습니다.


어린 시절 이불 속에서 읽던 세계명작 동화들은 현실과는 또 다른 차원에서 실재하는 세계였다. 책 속 이야기는 내 머릿속에서 생생히 되살아나 단순한 활자를 넘어 하나의 완전한 세계로 존재했다. 그래서 무서운 이야기를 읽은 날에는 꿈속에서도 쫓기듯 달아나야 했고, 주인공의 비극에 가슴 아파하며 눈물을 흘리다 잠든 날도 적지 않았다. 그렇게 문학이란 두 세계가 공존할 수 있도록 해주는 장치였다.


곽아람의 『나와 그녀들의 도시』는 그런 책 속 세계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믿음을 확인하기 위한 기록이다. 저자는 안식년 동안 뉴욕을 거점으로 삼아, 『빨강 머리 앤』의 프린스에드워드 아일랜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애틀랜타, 『작은 아씨들』의 콩코드 등 아메리카 문학작품의 배경이 된 장소들을 직접 찾아갔다.


그것은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문학이 현실 속에서 어떻게 숨 쉬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진지한 여정이었다. 진지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는 것은 저자가 편안한 렌터카 여행자가 아니라, 지인의 차를 얻어 타거나 버스와 같은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때로는 불편한 여정을 감수했기 때문이다.


"2D로 그려왔던 그 세계가 3D로 실존한다는 것을 확인하는 과정은 내게 소중했다. 책 속 세계가 실재한다는 건 문학이 단지 허구만은 아니라는 것, 문학이 말하는 인간의 위대함과 선의, 그리고 낭만이 실재한다는 것과 동의어였다."


이 책을 읽으며 나 또한 언젠가 꼭 가보고 싶은 장소들을 떠올렸다. 지금 당장 비행기 티켓을 끊을 수 있다면, 나는 사르트르가 자주 글을 쓰던 파리의 '까페 드 플로르'로 향할 것이다. 깨어 글을 쓰기 위해 각성제 코리드란을 하루에 한 갑씩 씹어 먹으며 집필을 이어갔던 그의 흔적을 그곳에서 느껴보고 싶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한 곳, 내가 가보고 싶은 장소가 있다. 프로이트가 여러 차례 로마를 방문하며 해석하고자 했던 미켈란젤로의 〈모세상〉이 있는 성 베드로 빈콜리 성당이다. 그는 신으로부터 받은 십계명 돌판을 왼팔에 안고 있는 모세의 모습을 마주하며, 억눌린 분노와 절제의 의미를 탐구하고자 여러 번 그곳을 찾았다고 한다.


조각 속 모세는 금방이라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듯 온몸의 근육이 팽팽히 긴장되어 있고, 눈빛은 분노와 결의로 차 있다. 미켈란젤로는 그 순간을 영원히 붙잡아 두었고, 프로이트는 그 안에서 인간 내면의 갈등과 절제의 근원을 이해하려 했다.


결국 곽아람의 여행과 내가 꿈꾸는 여행은 같은 지점을 향한다. 문학과 예술이 단순한 허상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인간적 가치들이 여전히 현실 어딘가에서 맥동하고 있음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다. 『나와 그녀들의 도시』는 그런 확인의 여정이 얼마나 소중하고 의미 있는지를 보여준다. 문학과 예술이 추상이 아닌,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으로 확장될 수 있음을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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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자유에 이르는 길 - 김익한 교수의 읽고 쓰는 실천 인문학
김익한 지음 / 김영사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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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읽고 작성했습니다.


하루 24시간을 돌아보면, 온전히 자유로운 시간은 과연 얼마나 될까. 회사나 가족을 위한 시간을 제외하고 나만을 위한 시간을 헤아려보면, 아마 몇 시간도 채 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 몇 시간조차도 따지고 보면 여전히 무언가에 종속되어 있을지 모른다.


철학에서 오래도록 탐구해온 근본 가치는 진리와 정의, 그리고 근대 이후 더욱 두드러진 자유라고 할 수 있다. 자유는 인간 존재의 본질과 직결된다.


지금 21세기에 자유롭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하고 되묻고 싶을 것이다.

보카치오가 쓴 『데카메론』은 아직 읽어보지 못했지만, 넷플릭스에서 방영 중인 드라마 『데카메론』을 시청하고 있다. 14세기 유럽은 흑사병으로 공포와 혼란에 잠긴다. 전염병이 이탈리아 전역으로 퍼지자, 이들은 레오나르도 자작의 초청을 받아 시골 저택으로 피신한다. 드라마는 원작처럼 열 명의 인물이 한 저택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틀을 변주하며, 귀족과 성직자, 하인과 농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인간 군상을 펼쳐 보인다.


작품 속 인물들은 저마다 다른 굴레에 묶여 있다. 귀족은 체면과 탐욕에 사로잡히고, 성직자는 위선을 드러낸다. 여성은 억압된 욕망을 교묘히 비틀어 드러내고, 남성은 여성뿐 아니라 남성을 향한 욕망까지 드러내며, 욕망이 얼마나 다층적인지 보여준다. 농민은 생존에 짓눌리고, 어떤 귀족은 병에 대한 두려움에 갇혀 산다. 보카치오는 이렇게 자유롭지 못한 인간의 모습을 해학적으로 그려낸다.


14세기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지만, 그 모습은 오늘날과 크게 다르지 않다. 명예와 재물, 권력과 성적 욕망에 매인 사람들, 교조적 교리에 집착하는 사람들, 죽음의 공포에 흔들리는 사람들까지. 『데카메론』이 보여주는 욕망은 시대를 넘어 지금 우리의 모습과 겹쳐진다. 우리는 여전히 욕망에 흔들리고 사회 구조에 사로잡혀 살아간다. 달라진 것은 시대와 배경일 뿐, 인간을 얽매는 굴레와 그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갈망은 변하지 않았다.


김익한 교수의 『철학, 자유에 이르는 길』은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그는 자유를 단지 개념으로만 말하지 않는다. 자유는 매일 훈련하고 성찰해야 하는 삶의 기술이다. 욕망과 사회 구조에 얽매여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데서 멈추지 말고, 그 안에서 어떻게 나의 시간을 회복하고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지를 묻는다.


책 속에서 저자는 밀, 푸코, 한병철, 누스바움 등 여러 사상가의 사유를 불러온다. 밀은 자유를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한, 자기 삶을 결정할 권리"라고 정의했다. 푸코가 말한 자기 돌봄은 "끊임없이 자신을 가꾸는 실천"으로서의 자유를 보여준다. 누스바움의 '역량' 개념은 자유를 추상적 이상이 아닌 구체적 선택의 기회로 재정의한다.


"나는 누구의 선택에 따라 살고 있는가?" 저자는 하루의 작은 기록, 나만의 역량 지도, 관계를 다시 바라보는 태도 같은 실천을 통해 자유를 회복하라고 권한다. 자유란 제도나 구조가 허락해주는 시간이 아니다. 그것은 스스로 사고하고 선택하며 책임지는 삶의 방식이다.


책과 함께 온 워크북을 따라 적다가 나 자신에게 실망이 밀려왔다. 7년 넘게 철학을 공부하며 삶에 붙이고자 했는데, 내면의 욕망은 여전히 바뀌지 않은 채 그대로였다. 수없이 듣고 읽고 다짐해왔음에도, 뼛속 깊이 붙은 허영심과 나르시시즘적 태도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 슬픔이 밀려왔다.


그 순간 철학적 성찰이 무력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허무에 빠지고 싶지는 않다. 오히려 이런 자각 자체가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바라보는 거울이 될 수 있으니 말이다. 

니체의 말을 떠올린다. “인간은 극복되어야 할 무엇이다.” 자유는 완성된 상태가 아니라, 끊임없이 자신을 넘어서는 과정 속에서 만들어가는 것임을 다시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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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결의 법칙 - 장벽을 허물고 관계를 변화시키는 마인드셋
데이비드 롭슨 지음, 김수진 옮김 / 까치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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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읽고 작성했습니다.


영화 〈김씨 표류기〉에는 섬과 방이라는 공간에 고립된 두 김씨가 등장한다. 한 사람은 죽으려다 살아남아 한강의 밤섬에서 원초적인 생존을 이어가고, 다른 한 사람은 세상과 단절한 채 방 안에서 모니터를 통해서만 삶을 이어간다. 은둔형 외톨이로 지내는 정려원은 세상과 직접 소통하는 대신 아바타로 대신하고 망원경으로 밖을 관찰한다.


그러던 중 우연히 밤섬에서 기묘하게 살아가는 김씨(정재영)를 발견하게 된다. 처음에는 단순한 구경에 불과했지만, 점차 그의 생존 방식을 지켜보며 호기심과 공감을 느낀다. 결국 그녀는 페트병에 메시지를 담아 강물에 흘려보내며, 고립된 두 사람은 서로의 현실을 공유하기 시작한다.


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인 공유현실(shared reality)이란 타인과 같은 세계를 경험하고 있다는 감각을 뜻한다. 이는 단순히 대화를 나누는 차원을 넘어, 같은 것을 보고 느끼며 우리가 같은 현실 속에 있다는 인식을 나누는 순간이다.


영화 〈김씨 표류기〉에서 두 김씨는 섬과 방이라는 물리적 거리를 두고 있지만, 망원경과 페트병 편지를 매개로 서로의 삶을 바라보고 공감하면서 하나의 현실을 공유하기 시작한다. 고립과 외로움이라는 동일한 조건 속에서 작은 도움을 주고받으며 두 사람은 서서히 삶의 의지를 회복하고 변화를 맞이한다.


책은 “혼자가 편한 당신에게도 연결은 필요하다”라고 말한다. 사실 그런 외침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이미 휴대폰이나 인터넷을 통해 끊임없이 어딘가에 접속한다. 그것은 직접적인 관계는 아닐지라도, 타인과 연결되고 싶어 하는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켜 준다. 더 나아가 실제 연구들은 인간관계가 삶의 질과 건강, 나아가 생명과도 직결된다는 사실을 꾸준히 밝혀 왔다.


데이비드 롭슨은 『연결의 법칙』에서 우리가 관계를 주저하게 만드는 심리적 장벽과 잘못된 직관을 짚어내며, 그것을 넘어설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한다. 작은 대화, 사소한 공감, 진심 어린 칭찬과 같은 일상의 행동이 어떻게 우리의 관계를 바꾸고, 결국 우리 자신을 변화시키는 힘이 되는지를 보여준다.


13가지 연결의 법칙 중 마지막 부분에서 특히 마음이 움직였다.

“현재 여러분의 인생에서 한 발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 연락하라. 그들이 여전히 마음 한편을 차지한다는 사실을 알려라.”


한때 안부 리스트에 빼곡히 이름을 올렸던 친구와 지인들, 코로나 이후로 만남이 뜸해지고 이런저런 이유로 자연스럽게 연락이 줄어든 이들이 떠올랐다. 앞선 12가지 법칙보다도 이 문장이 더 크게 다가온 것은, 그동안 소중히 여겨왔던 이들과의 거리를 다시금 생각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연결은 새로운 인연을 만드는 일만이 아니라, 이미 맺어진 관계를 다시 돌아보고 이어가는 데에서도 의미를 갖는다. 결국 새로운 관계든, 소원해진 관계든 한 발 나아갈 용기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영화 속 두 김씨처럼 각자의 공간에서 표류하는 것이 아니라, 다정한 말과 응답으로 소통할 때 관계는 더욱 아름다워지고 우리의 삶은 한층 더 깊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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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내 여행자-되기 둘이서 3
백가경.황유지 지음 / 열린책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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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읽고 작성했습니다.


유타주 피쉬레이크 국유림에는 신비로운 나무숲이 있다. 판도(Pando)라 불리는 이곳에는 43헥타르에 걸쳐 4만여 그루의 아스펜나무가 자란다. 언뜻 보면 제각각인 나무들 같지만, 사실은 모두 하나의 뿌리에서 뻗어 나온 거대한 단일 생명체다.


이 숲은 들뢰즈가 말한 ‘리좀(rhizome)’의 살아 있는 모델과도 같다. 위아래의 질서 없이 사방으로 뻗어 나가고, 어느 지점에서든 새로 움트며, 한쪽이 잘려도 다른 곳에서 다시 돋아난다. 중심도 끝도 없는 이 자유로운 연결의 구조가 바로 리좀의 형상이다.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경쟁 속에서 길러지며, 누군가를 이겨야만 더 높이 설 수 있다고 배운다. 물론 친구와 철봉에서 오래 매달리기를 하거나 자전거로 속도를 다투는 일은 즐거운 경쟁을 통해 서로의 한계를 넓히고 성장하게 한다. 그러나 공부로 시작되는 입시전쟁과 취업전쟁은 어린 시절의 ‘우리’를 ‘나’라는 고립된 주체로 바꿔 놓는다. 공동체적 연대는 희미해지고, 개인의 생존만이 우선시되는 생존 모드로 바뀐다.


하지만 아스펜나무의 뿌리가 땅속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듯, 우리는 결코 외따로 서 있는 존재가 아니다. 누군가의 희생과 수고 위에서 오늘을 살아가며, 우리의 삶은 보이지 않는 맥락 속에서 서로 이어져 있다.


『관내 여행자-되기』에서 두 작가는 ‘관’이라는 키워드로 공간과 사람, 기억과 현재를 잇는다. 그렇게 ‘관’은 타인의 삶을 이해하는 길이 된다.


인천의 성냥공장 여공들, 동일방직의 여성 노동자들, 의정부 뺏벌의 성매매 여성들, 세월호와 이태원 참사의 희생자들. 이들이 찾아간 곳곳에는 사회가 외면하거나 망각하려 했던 이름들이 있다.

불편하다거나 연민의 시선으로만 바라보던 이들, 혹은 빨리 잊으라 재촉하는 목소리를 뒤로하고 꺼내진 그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질문을 건넨다.


두 작가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각각의 공간은 개별적인 과거의 비극이 아니라 현재의 이야기이며, 서로 구조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게 된다.


인천 성냥공장의 어린 여공들이 겪었던 열악한 노동 환경은 오늘날의 비정규직 문제와 성별 임금 격차로 이어진다. 의정부 뺏벌의 성매매 여성들의 이야기는 지금도 경제적 취약성에 내몰린 여성들의 현실 속에서 되풀이된다. 사회는 여전히 그 책임을 개인의 선택으로 돌리거나, 그들의 존재를 가려 보이지 않게 함으로써 구조적 문제를 감추고 불편한 진실을 외면한다.


세월호와 이태원 참사는 더욱 직접적으로 현재와 가깝다. “정부 부처, 서울시, 용산구, 경찰 관계자, 해밀톤의 누구도 처벌받지 않았다”는 황유지의 기록은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무책임이 어떻게 반복되는지를 드러낸다.


다행히 이번 정부 들어 대통령과 정부가 유가족들에게 고개 숙여 사과하는 모습은 매우 늦었지만, 동시에 감동적인 장면이기도 했다. 사과와 성찰이 첫걸음이 될 수 있으나, 그 진정성과 책임의 이행은 우리가 끝까지 지켜보아야 할 문제이기도 하다.


결국 『관내 여행자-되기』가 보여주는 것은 고립된 ‘나’의 서사가 아니라, 서로 맞물려 있는 ‘우리’의 이야기다. 아스펜나무의 뿌리가 보이지 않는 땅속에서 얽혀 있듯, 우리의 삶 또한 보이지 않는 연대 속에서 지탱된다. 그것은 들뢰즈가 말한 리좀처럼, 끊어낼 수 없는 연결망 속에서 이어져 있음을 보여준다.


이 연결의 감각은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묻는다. 경쟁과 고립의 논리 속에서 ‘나’만을 지키려는 태도를 넘어, 타자를 향해 열린 마음으로 서는 일. 그 마음에서부터 공동체는 다시 살아나고, 아픔을 포용하는 힘 또한 길러지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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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이 철학을 마주할 때 - 다가올 모든 계절을 끌어안는 22가지 지혜
안광복 지음 / 다산초당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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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읽고 작성했습니다.


인생이 한 권의 책이라면, 청소년기까지는 도입부이고 중년은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 클라이맥스를 향해가는 지점일 수도 있고, 이미 클라이맥스를 지나가는 구간일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분명한 것은 삶의 무게가 더욱 묵직해지는 시기라는 점이다. 책임져야 할 것들이 많아지고, 앞날의 선택지는 점점 좁아진다.


철학만큼 세상에 무용해 보이는 학문이 있을까. 세상은 늘 실용적이고 당장 득이 되는 것을 하라고 요구한다. 그러나 어느 날 문득 ‘나는 왜 존재하는가’, ‘잘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이 목끝까지 차오를 때, 결국 우리를 붙잡아 주는 것은 실용이 아니라 사유의 힘이다.


이 책에서 제안하는 스물두 가지 삶의 태도 가운데 특히 마음에 남은 것은 ‘지성’과 ‘초연’이다.

몽테뉴는 법원 판사로서 경력을 쌓아가던 38세에 과감히 자리를 내려놓고 고향 집 서재로 돌아갔다. 그런데 문득 의문이 든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것들이 과연 진정한 학문의 탐구였을까. 주입식 암기와 학원에서 선생님이 짚어주는 대로 외우기에 급급했던, 그저 기계적인 반복이 아니었을까.


그럼에도 공부는 대개 학교 졸업과 함께 멈춰 버린다. 앎을 호기심과 열정으로 탐구해 본 경험이 부족했기에, 학문은 지겹고 지루한 것으로 치부되곤 한다. 그러나 몽테뉴는 중년으로 접어드는 나이에 자신만의 서재에서 오히려 삶을 성찰하는 공부를 시작했다. 그는 책 속에서, 또 자신과의 대화 속에서 지혜를 길어 올리며 삶의 무게를 견뎌낼 힘을 찾았다.


몽테뉴가 서재에서 지적 성찰을 구했다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극한의 상황에서 철학을 실천했다. 로마 제국의 5현제였던 그는 독서와 명상을 즐기던 철학자이자 황제였다. 최전방 막사에서 『명상록』을 집필하며, 때로는 적군의 공격으로 직접 전장에 나서야 하는 위기 속에서도 사유를 놓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58세, 다뉴브 전선의 군영에서 병사하기까지, 그는 생애의 마지막 순간까지 전장에 머문 황제였다.


그런 그는 어떤 마음으로 전장에 임했을까.

“너의 마음을 괴롭히는 어떤 일에 부딪히면 이를 불행으로 여기지 마라. 이를 슬기롭게 이겨내는 것을 행복으로 여겨라.”


이 말이 더욱 와닿는 이유는 그것이 단순한 교훈이 아니라, 삶과 죽음의 현장에서 길어 올린 생생한 언어이기 때문이다. 그는 고통을 푸념하지 않고, 오히려 극복하는 과정을 기쁨으로 받아들이라 말했다.


“해야 할 일은 하되, 벌어질 일은 벌어지게 두라.” 그는 오직 ‘지금 이 순간’의 자기 역할에 충실했다. 최선을 다해 싸우되, 결과는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영역임을 알았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묵묵히, 그러나 성실히 최선을 다하는 것뿐임을 그는 삶으로 보여주었다.


최근 이런저런 일로 마음이 시끄러웠던 나 역시 그의 태도에서 위안과 용기를 얻었다. 중년기에 접어들며 누구나 예상치 못한 시련을 마주하지만, 아우렐리우스의 태도는 단순한 위로를 넘어 실질적인 삶의 지침이 된다. 중년으로서뿐만 아니라 한 명의 인간으로서 삶을 대하는 태도를 다시금 돌아보게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니체가 『도덕의 계보』에서 말한 ‘귀족적인 것’이 떠오른다. 그것은 단순히 신분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고통과 무게를 당당히 감내하면서도 새로운 가치를 창조해내는 태도, 곧 스스로를 지배할 수 있는 힘을 의미한다. 고귀함은 자기를 긍정하는 힘, 위험 앞에서 물러서지 않는 용기, 원한에 갇히지 않는 관대함, 그리고 자기만의 길을 창조하는 정신에서 비롯된다. 꼼수나 속임수로 남을 속여 얻는 승리는 결코 귀족적인 것이 아니다.


몽테뉴의 성찰, 아우렐리우스의 초연함, 니체의 긍정은 서로 다른 길처럼 보이지만 결국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중년의 철학은 그러한 고귀함을 향해 나아가는 지표이자, 스스로를 더 나은 인간으로 빚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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